서평 ⟪인종차별과 자본주의⟫:
인종차별의 원인과 해방 전략을 알기 위한 알짜배기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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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미국 경찰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짓눌러 사망케 한 일은 오늘날 우리가 끔찍하게도 인종차별적인 사회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플로이드의 죽음을 계기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는 광범한 대중 운동으로 분출했고, 기성 체제를 뒤흔들었다. 이 운동은 플로이드 사망 후 100일이 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계속 인종차별을 선동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이에 자극받은 인종차별적 극우와 파시스트들이 계속 날뛰고 있다. 경찰의 흑인 살해도 멈추지 않았다. 이런 끔찍한 인종차별을 도대체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유용한 답을 제시하는 책 《인종차별과 자본주의》(책갈피)가 출판됐다. 세계적 마르크스주의 석학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이 책을 썼다. 캘리니코스는 현재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인종차별 등 차별 문제를 다루는 데서 무능하다는 생각이 흔하다. 그러나 캘리니코스는 이런 생각이 오해이고, 오히려 마르크스주의가 인종차별을 이해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데서 최상의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캘리니코스는 이 책에서 인종차별의 근원이 무엇이고 어떻게 뿌리 뽑을 수 있을지를 유물론적 방법으로 다룬다. 특히 캘리니코스는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여러 전략들을 논쟁적으로 다루는데, 여기에는 급진적 인종차별 반대 전략의 일부인 흑인 민족주의가 제기한 주요 쟁점들도 포함돼 있다.
저자는, 흔히 “서로 전쟁을 벌이는 여러 인종” 간의 갈등이라는 식으로 묘사되는 인종차별이 실제로는 “착취적 사회구조에서 생겨나서 권력과 삶의 기회 면에서 체계적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차별이자 천대의 문제”(이하 인용 강조는 모두 저자의 것)임을 역설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은 정치적 투쟁에 놓여 있”고, “계급투쟁만이 피부색과 출신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노동자를 단결시켜서 노동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분석과 대안
캘리니코스는 인종차별이 자본주의 초기 체계적 노예노동 사용을 정당화하려고 17~18세기에 처음 개발된 것이고, 노예제가 폐지된 오늘날에도 자본주의의 물질적 조건 때문에 인종차별이 지속된다고 밝힌다.
“오늘날 인종차별은 일자리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노동자 집단들 사이에 조성된 분열에서 발생한다. 이런 경쟁은 노동력을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자본의 한없는 식욕 탓에 때때로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한 나라로 모이면서 더 심해진다. 그래서 인종차별은 노동자들이 서로 반목하게 하고 (피부색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용자에 맞서 효과적으로 투쟁하지 못하게 막는 기능을 한다.”
즉, 인종차별은 자본주의의 유지에 일조하고 그럼으로써 자본가 계급이 노동계급을 더 효과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돕는다.
반면, “인종차별이 작동하면 흑인이든 백인이든 노동자 전체의 이익”은 “훼손”된다. 왜냐하면 “인종차별이 노동계급을 분열시켜서 흑인 노동자는 물론이고 백인 노동자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백인 노동자가 인종차별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종차별에서 이득을 보기 때문이 아니고, 그저 “우월한 인종에 속한다는 가상의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오히려 백인이든 흑인이든 노동계급은 인종차별에 맞서는 데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학자 시맨스키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이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이런 분석은 대안과도 연결된다. 캘리니코스는 흑인 해방은 오로지 흑인 자신만이 성취할 수 있다고 보는 흑인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인종차별에 맞서는 데서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일반으로 말해, 계급투쟁의 수위가 높을수록, 노동자의 투쟁성·자신감·조직이 강할수록, 특정 운동에 참여하는 노동자 층이 다양할수록 인종차별이 노동자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약해진다.”
노동계급의 힘이 커지고 투쟁으로 권력자들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지면, “가상의 위안”에 기댈 가능성이 적어진다. 캘리니코스는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가 인종 간 장벽을 뛰어 넘어 결속하고, 이 과정에서 인종에 따른 분열이 깨졌던 여러 경험을 소개한다. 반대로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지배자들과 협력하고 노동계급을 배신해 노동계급의 처지가 악화됐을 때 인종차별이 강화됐음도 지적한다.
이 책은 짧지만 풍부하고 아주 명료하다. 쓰여진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놀랍게도 전혀 옛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의 원서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992년 여름호에 실린 동명의 논문(국역: ‘인종과 계급’, ⟪현대자본주의와 민족문제⟫, 갈무리, 1994)을 대폭 수정하고 증보해 1993년에 출판한 책이다. 그 과정에서 한 장이 수정되고 3개 장이 추가됐는데, 논문 국역본을 본 독자들도 완전히 새롭고 풍성해진 글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의 훌륭한 번역도 돋보인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새로 추가된 장 중에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반란을 다룬 장이 특히 흥미로울 만하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하며 한인 상점 약탈 문제를 주로 다뤘다(‘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에 대한 한국 언론의 태도도 이와 비슷했다). 그러나 이런 피상적이고 천박한 보도와 달리 캘리니코스는 반란의 진정한 성격, 로스앤젤레스 사회에서 한인 상인들이 차지한 지위, 반란의 강점과 약점 등을 분석하면서 여러 오해를 바로잡는다.
이 책이 소개하는 사례들은 주로 미국과 영국의 것들이지만 그 원리는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캘리니코스 자신도 머리말에서 “이 책에서 ‘흑인’이라는 단어를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겪는 사람들을 모두 지칭하는 말로 썼다”고 밝히며, 이 책의 분석을 차별받는 다른 집단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예컨대, 차별을 개인들의 태도와 의식의 문제로 접근하거나 차별받지 않는 집단은 계급과 상관없이 차별 유지에 이해관계가 있다거나, 차별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그 차별을 가장 잘 이해하고 맞설 수 있다고 보는 견해는 한국의 여성·성소수자 차별 반대 운동 내에서도 지배적이다. 이에 관해, 이 책에서 캘리니코스가 흑인 민족주의 전략을 다룬 부분에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종차별뿐 아니라 차별 문제 일반을 이해하고 차별에 맞서고자 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곱씹으며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