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지배한 2020년 세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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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의 국제 정세의 특징을 조셉 추나라가 짚어 본다. 조셉 추나라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자 혁명적 좌파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편집자이다. [ ]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넣은 것이다.
팬데믹 하에서 1년은 긴 시간이다.1 최초의 코로나19 희생자들이 나온 지 12개월하고도 조금 더 지났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세계 코로나 사망자는 150만 명에 이르렀고 북반구 겨울 동안 큰 폭으로 증가할 공산이 크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 악화에 시달렸고 때로는 “만성 코로나”라고 불리는 각종 당황스러운 증상에 오랫동안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 실직, 수입 감소를 겪고 심지어 사랑하는 이를 잃고 비통함에 젖기도 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정치를 지배했고 각종 시사 쟁점을 압도했으며 수십억 명의 일상 생활을 뒤바꿔 놓았다. 코로나19로 가득 찬 뉴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주요한 두 사건(지난 여름 세계적인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과 미국 대선)은 부분적 예외였을 뿐이다. 더욱이 둘 모두에 팬데믹이 끼친 영향이 깊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새해가 가까워지는 지금, 일각에서는 정상 시기의 외양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자라고 있다. 단지 백신 개발로 바이러스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넘어 팬데믹 이후의 정치 판세에서 중도가 복원되고 자본주의가 안정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포퓰리즘”(대중적 지지를 얻으려 하는 좌우의 급진 정치에 붙이는 딱지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경우가 흔하다)이 팬데믹이라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이전까지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주류 정치권의 복귀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2
이런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 것이다. 12월 초 현재, 트럼프의 맞수 바이든은 오바마 정권 시절 국내외에서 미국 기업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앞장섰던 신자유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내각을 꾸리고 있다. 영국에서는 도미닉 커밍스가 11월 보직에서 쫓겨났는데, 그는 보리스 존슨 정부 안에서 우익 포퓰리즘의 핵심 주창자로 지목된 인물이다. 커밍스의 협력자인 총리실 공보국장 리 케인도 함께 쫓겨났다. 키어 스타머는 노동당 대표로서 좌파 제러미 코빈을 대신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코빈주의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의도를 올 가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한편 독일에서는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중도 우파 정당 기민당의 지지율이 팬데믹 초기 30퍼센트에서 6월 40퍼센트로 올랐다. 같은 기간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지지율이 떨어졌다.3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아주 순항 중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1년 전 노란조끼 시위와 대규모 파업들을 버텨 냈고 국정 지지율이 49퍼센트까지 오르기도 했다. 가을이 되자 그는 지지율을 끌어올리려고 공식적 이슬람 혐오를 훨씬 강화하고 더 가혹한 치안 정책을 관철시키려 했다(거리에서 그에 대한 반대가 없지는 않았다.)4 스페인에서는 네 차례의 총선에도 정부가 구성되지 못하자 급진좌파 정당 포데모스가 스스로를 중도 좌파인 사회당(PSOE)에 얽어매기로 합의하고 연립정부에 참여해 많은 지지자들에게 배신감을 안겨 줬다. 심지어 만성적으로 불안정한 이탈리아에서도 중도 좌파인 민주당이 극우인 동맹당을 밀어내고 연정의 하위 파트너가 됐다. 이 연정은 오성운동이 주도하고 있고 변호사 출신인 주세페 콘테가 총리를 지내고 있으며, 2020년 4월에 콘테의 국정 지지율은 71퍼센트로 올랐다.
그러나 중도의 기반이 탄탄해지는 듯 보이는 것은 외견 상으로만 그럴 뿐이다. [정치] 양극화와 위기를 추동하는 힘이 더 깊기 때문에 이런 경향은 오래 유지되기 어려울 듯하다.
끝이 보인다?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 직면한 국가들은 자본주의 논리(끊임없는 이윤 창출과 경쟁적 축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국가들의 대응 방식이 똑같다거나 생명과 이윤이 정확히 길항 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적 해결책이 부재한 가운데, 방역이 가장 효과적이었던 나라들은 자국민에게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때로는 권위주의적 수단을 동원해) 시행하고 이후 검사 및 확진자 추적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나라들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초기에 경제 타격을 입었지만 V자형 회복 비슷한 것에 근접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하게 됐다.5
이런 경로를 따를 수 없었거나 그럴 의지가 없던 국가들의 경우, 경기 후퇴와 사망률 사이의 관계는 각종 요인(나라의 크기와 지리적 구조, 인구 구성,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태도, 확진자 증가에 대한 정부 대응의 신속성 등)에 따라 달라졌다. 이곳 영국은 특히 사태가 심각한 경우에 속한다. 영국 정부는 2020년 봄에 대응에 나섰지만 확진자가 빠르게 치솟아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이었다. 그러다 성급하게 외출제한령을 완화했으며, 이후 외출제한령을 재도입할지를 두고서 혼선을 빚고 검사 및 확진자 추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으며, 공중 보건 문제 대응을 민간 외주화에 의존한 결과, 사망자 수와 경기 후퇴가 특별히 심각했다. 미국의 경우, 팬데믹 대응은 매우 혼란스럽고 불균등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더 양호했다. 하지만 트럼프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 수치는 여전히 높은 데다 고용 증가와 경기 회복도 점차 약발이 다한다는 증거가 보이고 있다.
새로 개발된 백신이 이런 공포 드라마를 어느 정도까지 끝낼 수 있을까?
임상 시험은 놀랄 만큼 성공적이지만 백신을 개발하는 것과 바이러스를 무찌를 만큼 면역력을 획득하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상당한 간극이 있다. 경영 컨설턴트사 맥킨지는 미국에서 “팬데믹의 역학적 종식”은 2021년 가을 또는 겨울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6 이조차도 백신이 광범하게 보급된다는 가정 하에서다. 《랜싯》에 실린 최근 기사는, 백신이 접종자 80퍼센트에게 효과를 낸다고 가정하면 인구의 75~90퍼센트가 면역력을 획득해야 바이러스를 차단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여기에는 백신을 맞은 이들뿐 아니라 코로나19를 앓고서 회복돼 면역력을 갖게 된 이들도 포함된다. 또, 임상 시험 결과들을 보면 백신은 80퍼센트보다 높은 효과를 내는 듯하다. 그럼에도 《랜싯》 저자들이 말한 “백신에 대한 망설임”이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영국인들은 85퍼센트가 백신을 맞을 의향이 있는데 이 수치대로라면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데에 필요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과 미국에서는 이 수치가 67퍼센트로 떨어지고 프랑스에서는 59퍼센트에 불과하다.7
더욱이 팬데믹은 세계적 문제다. 백신을 판매하는 기업들은 전 세계 인구에게 필요한 만큼 공급할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지적 재산권을 양보하여 복제약 생산을 허용할 가능성은 적다.8 2020년 9월이 되자 세계 인구의 13퍼센트만을 차지하는 부유한 나라들이 향후 생산될 백신의 51퍼센트를 선점했다.9 이들 외에도 특히 인도처럼 국내에 백신을 대량 제조할 기반 시설을 갖춘 나라들은 백신에 접근할 수 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 외의 나라들, 최빈국은 물론이고 중진국이라 할지라도 급증하는 “백신 민족주의”의 패배자가 될 공산이 크다.10 백신 보급 문제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현재까지 임상 시험을 거친 백신들은 냉장 상태, 어떤 경우에는 영하 70도에서 보관해야 해서 저온 유통 체계가 필수적인데 많은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 세계보건기구는 지금도 저온 유통 체계의 미비로 해마다 150만 명이, 피할 수도 있었을 죽음을 맞이한다고 추산한다.11 여기에 더해 면역력의 지속성이라는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어쩌면 이 때문에 백신을 반복적으로 접종해야 할 수도 있다.12 이런 문제들 탓에 바이러스가 고착화될 수 있고 백신 접종이 가능한 국가에서도 다시 바이러스가 유행할 수 있다.
삼중 위기
팬데믹은 이전에 필자가 말한 “삼중 위기”의 한 측면일 뿐이다.13 팬데믹은 더 광범한 생태적, 경제적 혼란과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두 혼란은 각각 장기적 추세의 반영이고 이제는 서로를 강화하고 있다. 자본주의 장기 침체 국면은 단지 경제 위기를 반복적으로 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대신 취약한 생태계의 더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자본을 떠민다. 한편 생태학적 위기는 파괴적인 기상 패턴, 기아, 산불 등을 통해 갈수록 자본주의의 재생산 능력을 손상시킨다.
이번 팬데믹은 이 두 장기적 추세를 결합시켰다. 코로나19는 동물들 사이에서 인간 사회로 들어온 것인데, 자본이 자연을 침투하고 상품화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는 다시 장기 침체 속에서 새로운 경제 위기 국면을 촉발했다. 앞으로 우리는 이런 위기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불길한 조짐은 2020년 말 가금류 사이에서 퍼진 조류독감인데, 조류독감도 종간 장벽을 넘어 인간을 감염시키고 팬데믹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바이러스다.14
현재 국면의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기에 설령 팬데믹이 잦아들더라도 2020년의 경기 침체는 향후 수년 동안 이 체제에 상흔을 남길 것이다. 자본주의 장기 침체의 뿌리는 궁극적으로 1970년대에 시작돼 해소되지 않은 이윤율 위기에 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이 반복적으로 지적했듯이 이윤율을 높은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수익성이 낮은 자본을 대규모로 파괴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위험이 커질 때마다 국가와 그와 연계된 중앙은행이 개입해서 위기를 피하려 든다. 그 결과 기저에 깔린 문제의 해결이 미뤄지고 자본주의가 신용 확대에 더 의존하게 되고 금융이 더 취약해진다.15 2020년 국가와 중앙은행의 어마어마한 개입은 이런 서사의 일부였고 그 결과 다시금 뜨뜻미지근한 경제 성장을 한 차례 예고하겠지만 결국 그마저 새로운 위기에 꺾일 것이다. 또한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압력이 가해질 것이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정부가 지출을 줄이려는 첫 시도에 나서고 있다. 공공부문 임금을 동결하고, 긴축과 세금 인상으로 2024년까지 270억 파운드어치[40조 원]를 줄이려 한다.16 여기에 대규모 실직(특히 소매업에서)으로 인한 고통이 더해진다.
취약한 중도
이런 것이 국제 정치에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이제 다음과 같은 패턴이 자리를 잡았다. 자본주의가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기반시설을 유지하고 생활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수준보다도 더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노동계급이 팽창한다. 불평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지배계급은 권력을 지키고 더 많은 부를 쌓기 위해 갈수록 억압적 조치에 기대고, 유착과 부패가 갈수록 두드러진다. 그 결과 2019년에 일련의 대중적 분노가 폭발했다.17 팬데믹과 함께 잠시 가라앉았던 이 패턴은 2020년 가을이 되자 되살아났고, 벨라루스, 볼리비아, 나이지리아, 태국, 과테말라에서 시위가 터져 나왔다.18 이제 코로나19는 반란을 추동하는 요인이 됐다.
선진국에서는 정부들이 초기에 외출제한령과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내릴 때 종종 지지율이 오르곤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방역 실패는 지지율을 갉아먹는 효과를 냈다. 영국에서는 정부의 코로나 대처에 대한 신뢰도가 2020년 4월 69퍼센트에서 11월 말 38퍼센트로 추락했다. 응답자의 13퍼센트만이 정부 대처가 “혼란스럽고 일관되지 못했다”는 데에 이견을 보였다.19
국정 실패와 대중적 반발의 수준은 정부의 정치 성향(“중도”냐 “포퓰리스트”냐)과 단순하게 조응하지는 않는다. 《뉴 레프트 리뷰》 편집장 수전 왓킨스가 실례를 들어가며 보여 줬듯이 페루(중도 우파 정부), 스페인(중도 좌파가 이끄는 연정), 벨기에(자유주의 정당이 이끄는 연정) 정부들도 “포퓰리스트” 정부들 만큼이나 코로나19 대처에 실패했다.20 코로나19 대처 실패는 트럼프의 몰락에 기여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방역에 실패한] 브라질의 [극우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나 인도의 [강경 우파 총리] 나렌드라 모디가 곧 몰락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21
“포퓰리스트”들이 선거에서 패배한 경우에도, 바이든 같은 인물들이 펼칠 이런저런 형태의 신자유주의 통치로는 안정성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22 심각한 정치 양극화는 이전 세대 정치인들(빌 클린턴, 조지 부시, 토니 블레어, 데이빗 캐머런 등)이 발전시킨 신자유주의 컨센서스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다. 체제 위기가 훨씬 더 깊어진 현 국면에서 그 후예들이 다시 정치적 방향타를 잡는다고 해서 이런 경향을 역전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더 가속시킬 것이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미국에 관해 대선 직후에 이렇게 주장했다.
트럼프의 후계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현재 물망에 오른 이들은 톰 코튼, 조시 홀리, 니키 헤일리, 테드 크루즈다―은 복수심에 불타는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에게 앞다퉈 먹잇감을 던질 것이다. … 공화당원들 사이에 퍼진 ‘성난 군중’ 정서는 더 위험한 수준으로 반(反)민주적이고 폭발적이 될 것이다.23
영국에서는 설상가상으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가 더해진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영국과 유럽연합이 브렉시트 이후 서로 맺을 관계에 대해 합의에 도달할지는 불투명하다. 이런 결과는 부분적으로는 존슨 정부의 무능함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정치적 쟁점들도 작용했다. 집권 보수당 내 대처식 신자유주의 추종자들과 정부의 경제 개입을 추구하는 “주권주의자들” 사이의 긴장도 그중 하나다. 또, 기업가들이 우려하는 혼란을 피해야 한다는 염원과 [그런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존슨이 자신의 국수주의적 수사를 지키려고 하는 것 사이의 긴장도 있다. 한편 유럽연합은 영국이 자신들의 규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한사코 막으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유럽연합 내에도 런던을 유럽의 금융 허브 지위에서 끌어내리려 하는 프랑스의 마크롱 같은 자들과, 강력한 자국 제조업의 시장 확보를 더 우선시하는 독일의 메르켈 같은 자들 사이에 긴장이 있다.24
급진좌파
계속되는 정치 양극화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두 가지 도전을 제기한다. 첫째는 급진적 우익 세력에 맞서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치 지형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2020년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우익에 반격할 가능성을 보여 줬다. 이런 역동성을 이용해서,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반대하고 극우 네트워크의 성장을 가로막을 조직을 강화하려 해야 한다. 위기와 함께 국가에 의한 인종차별도 심각해지는데 이는 동시에 극우에게 자양분을 제공한다. 여기에도 반대해야 한다. 이번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실릴 페트로스 콘스탄티누 인터뷰의 핵심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이 인터뷰는 그리스 파시스트 조직인 황금새벽당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다룬다.
현재 위기가 제시하는 시험을 통과해 부상할 수 있는 사회주의 좌파를 건설할 방법을 찾는 것도 만만찮은 과제다. 수년 동안 급진화 물결이 거듭된 결과 사회주의 정치가 재부상했다. 이런 흐름은 그리스에서 시리자의 부상, 스페인의 포데모스, 미국의 버니 샌더스와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SA)의 부상, 영국에서 코빈이 노동당 지도권을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좌파 개혁주의 프로젝트로, 국가 권력을 [선거로] 획득해서 자본주의를 개혁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 체제가 용인하는 급진적 개혁의 한계, 선거주의의 현실에 부딪혔다.
시리자는 집권했지만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자본가 세력들에 직면하여, 그리스에 긴축을 부과하라는 요구에 굴복했고 이후 선거에서 패배했다. 포데모스는 분기탱천한 아웃사이더들의 정당에서 사회당의 연정 하위 파트너로 변신했다. 한때 지지자들에게 사회당을 직업 정치인 “카스트”의 일원으로 보고 경멸하라고 가르쳤던 그 당이 말이다. 미국에서는 샌더스와 그의 협력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등이 민주당 지도부의 포로 신세가 됐다. 민주당 지도부는 선거 성적이 상대적으로 초라하자 득달같이 이들을 비난했다.25
이곳 영국에서 노동당 좌파는 코빈이 2019년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한 이후 공격받고 있다. 노동당 대표 스타머는 한심한 보수당 총리 존슨을 상대할 때는 대단히 무능하지만 노동당 전 대표 코빈을 공격할 때는 훨씬 기고만장하다. 코빈은 한때 노동당 당원 자격을 정지당했다. 유대인 혐오의 심각성이 “당 안팎의 정적들에 의해 정치적 이유로 과장”됐다고 한 발언이 그 사유였다. 코빈의 발언은 그가 당대표일 때의 노동당을 조사한 ‘평등인권위원회’(EHRC) 보고서의 발표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 보고서는 [코빈이] 유대인 혐오자라는 비방의 최신 양태로, 이스라엘 비판을 [유대인 혐오로] 깎아내리고 국제주의 좌파(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를 지지하는 것은 그런 좌파를 가려내는 중요한 시금석의 하나다)를 약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26 막후 협상과 코빈의 추가적 후퇴로 코빈의 당권은 회복됐지만, 여전히 스타머는 코빈을 노동당 의원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결국 코빈은 무소속 의원으로 의회에 출석하게 됐다. 사태는 마치 [부조리하고 음울한] 카프카의 소설처럼 전개돼, 노동당 당원들은 당원 모임에서 코빈에 연대를 표하는 것은 고사하고 코빈을 언급만 해도 자격 정지 위협을 받고 있다.27
EHRC 보고서가 쳐 놓은 이런 함정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좌파가 팔레스타인 지지를 원칙적으로 방어하고, 시온주의[이스라엘의 건국 이데올로기] 반대를 유대인 혐오와 뒤섞는 것과 대결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노동당 좌파는 이런 대처를 발전시킬 수 없었고 많은 경우 당의 단결을 더 중시했다. 이것은 굴복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일례로 저널리스트 폴 메이슨은 EHRC 보고서에 대한 코빈의 반응을 비판했고 노동당과 감히 단절을 고민하는 사람은 모두 “네오 스탈린주의 종파”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28 다른 이들은 당에 남아서 싸울 것을 다짐하지만 그런 투쟁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지는 조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서서히 노동당에서 이탈하기 시작했고, 4~11월 사이에 (심지어 코빈의 당원 자격이 정지되기 전부터다) 약 5만 명이 탈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경험들이 함의하는 바는 선거 제도를 통한 국가 권력 획득을 우선시하는 노선은 일정 시점에 이르면 좌파의 성장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선거를 전술적으로 어떻게 이용하든 그 시도는 선거 바깥 영역에서 투쟁을 건설하는 데 종속돼야 한다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역설해야 한다. 코빈주의를 집어삼킨 이 재앙을 딛고 새로운 정당이 생겨난다면 그 당은 이런 관점을 견지해야만 노동당식 개혁주의가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29 더욱이 좌파를 혁신하는 데 필요한 투쟁들을 강화시키려면, 자본주의 한계 안에서 사회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궁극적으로는 체제 전체를 교체하려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중핵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 만큼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을 발전시키고 혁신하는 것은 깊어가는 위기에 대처하는 데서 핵심적이다.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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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를 보고 의견을 준 리처드 도널리, 가레스 젠킨스, 실라 맥그리거, 커밀라 로일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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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man, Gideon, 2020, “Coronavirus Can Kill Off Populism”, Financial Times (29 June). 다른 사례들로는 다음을 보라. Watkins, Susan, 2020, “Politics and Pandemics”, New Left Review II/125 (September/October), https://newleftreview.org/issues/ii125/articles/susan-watkins-politics-and-pandemics,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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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tegic Survey, 2020, “Europe”, volume 120, numb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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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let, Victor, and David Keohane, 2020, “Emmanuel Macron Seeks Quick Escape from Security Law Fiasco”, Financial Times (2 December). 최근 사건들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Orr, Judith, 2020, “France, Islamophobia and the Right: An Update”, International Socialism (26 November), http://isj.org.uk/france-islamophobia-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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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s, Michael, 2020, “Covid and the Trade Off”, Michael Roberts Blog (22 October),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20/10/22/covid-and-the-trade-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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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umilind, Sarun, Matt Craven, Jessica Lamb, Adam Sabow and Matt Wilson, 2020, “When Will the Covid-19 Pandemic End”, McKinsey Insights (23 November), www.mckinsey.com/industries/healthcare-systems-and-services/our-insights/when-will-the-covid-19-pandemic-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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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erson, Roy, Carolin Vegvari, James Truscott and Benjamin Collyer, 2020, “Challenges in Creating Herd Immunity to SARS-CoV-2 Infection by Mass Vaccination”, Lancet, volume 396, number 10263; World Economic Forum, 2020, “Three in Four Adults Globally Say They’d Get a Vaccine for Covid-19—But Is This Enough?” (31 October), https://bit.ly/3mZdM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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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업들은 공적 자금을 지원받았는데도 그런다. 예컨대 모더나는 24억 800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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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fam, 2020, “Small Group of Rich Nations Have Bought up More than Half the Future Supply of Leading COVID-19 Vaccine Contenders” (17 September), https://bit.ly/2Iykz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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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lyky, Thomas J, and Chad P Bown, 2020, “The Tragedy of Vaccine Nationalism”, Foreign Affairs, volume 99, numb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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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s, Toby, 2020, “How Can We Ensure Billions of People in the Global South Can Access a COVID-19 Vaccine?”, Quest, https://bit.ly/2VSVkz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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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erson, Roy, Carolin Vegvari, James Truscott and Benjamin Collyer, 2020, “Challenges in Creating Herd Immunity to SARS-CoV-2 Infection by Mass Vaccination”, Lancet, volume 396, number 10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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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onara, Joseph, 2020, “A Triple Crisis”, International Socialism 167 (summer), http://isj.org.uk/a-triple-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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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자본주의적 기원에 대한 개괄로는 다음을 보라. Choonara, Joseph, 2020, “Socialism in a Time of Pandemics”, International Socialism 166 (spring), http://isj.org.uk/socialism-in-a-time-of-pande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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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onara, Joseph, 2018, “The Political Economy of a Long Depression”, International Socialism 158 (spring), http://isj.org.uk/the-political-economy-of-a-long-de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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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의 예측과 일치하는 것이고 팬데믹 위기 초기에 많은 좌파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던 생각을 거스르는 것이다. Choonara, Joseph, 2020, “A Triple Crisis”, International Socialism 167 (summer), http://isj.org.uk/a-triple-crisis, p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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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onara, Joseph, 2020c, “A New Cycle of Revolt”, International Socialism 165 (winter), http://isj.org.uk/a-new-cycle-of-revo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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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실린 바바 아예, 자일스 자이 웅파콘, 토마스 텡글리-에번스의 글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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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cl.ac.uk/policy-institute/assets/the-handling-of-the-coronavirus-crisi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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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kins, Susan, 2020, “Politics and Pandemics”, New Left Review II/125 (September/October), https://newleftreview.org/issues/ii125/articles/susan-watkins-politics-and-pande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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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데이비스가 지적하듯, 미국에서도 민주당이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가운데 트럼프에 투표한 7400만 명이 일자리와 건강은 “제로섬 관계”라는 트럼프의 말을 받아들였다. Davis, Mike, 2020, “Trench Warfare”, New Left Review II/126 (November/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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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의 전망에 대해서는 이번 호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야니스 델라톨라스와 클레어 렘리치가 쓴 글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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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s, Mike, 2020, “Trench Warfare”, New Left Review II/126 (November/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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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er, George, and Jim Brunsden, 2020, “‘Insurgent’ Boris Johnson Faces Moment of Truth on Brexit”, Financial Times (6 December); Callinicos, Alex, 2020, “What Lies Behind the Divisions over Brexit?”, Socialist Worker (7 December), www.socialistworker.co.uk/art/51030/What+lies+behind+the+divisions+over+Bre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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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di, Ibram X, 2020, “Stop Scapegoating Progressives”, The Atlantic (3 December), https://bit.ly/2K3al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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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guson, Rob, 2020, “Antisemitism and the Attack on the Left: What Do Socialists Say?”, Socialist Review, issue 461 (October), https://socialistreview.org.uk/461/antisemitism-and-attack-left-what-do-socialist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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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Waugh, Paul, 2020, “Labour Bans Local Party Activists from Discussing Jeremy Corbyn’s Reinstatement”, HuffPost (26 November), www.huffingtonpost.co.uk/entry/labour-bans-corbyn-reinstatement-motions_uk_5fc00286c5b68ca87f82a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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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on, Paul, 2020, “Labour’s Mutually Destructive Civil War Should End Now”, New Statesman (2 December). 메이슨은 활동 초창기 시절에 트로츠키주의 소종파 ’노동자권력’에 몸담았던 만큼 소종파에 대해서는 조금은 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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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관점에서 사회주의노동자당(SWP)는 ’노동당 내 사회주의자들을 향한 공개편지’를 11월에 썼던 것이다—https://swp.org.uk/an-open-letter-to-the-socialists-in-the-labour-par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