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극우 시위대 의사당 난입:
극우·파시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다 ─ 저항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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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미국 극우가 수도 워싱턴 DC 국회의사당과 미국 곳곳에서 벌인 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인종차별적 극우의 상징인 남부연합기를 쳐들고 나치의 구호를 새긴 옷을 입은 극우 시위대가 미국 정치의 심장부를 헤집는 유례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본지가 거듭 지적했듯, 트럼프가 결집시킨 극우 운동이 커다란 정치 위기를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 준 일이었다.
이번 무력 시위로 트럼프 4년 동안 미국에서 극우·파시스트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드러났다. 6일 극우들은 워싱턴 DC뿐 아니라 캘리포니아·뉴멕시코·인디애나·조지아·캔자스·오하이오·오레곤주(州) 등지에서도 폭력적인 난동을 벌였다. 수십 년 동안 분열해 있고 정치 무대 외곽에 밀려나 있던 극우·파시스트들이 전국적으로 조율된 행동을 벌일 만한 세를 갖췄음을 과시한 것이다.
코로나19 전염병 대유행과 경기 추락에서 커다란 피해를 입은 중간계급 사람들이 그 성장의 토대가 됐다. 이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는 기성 체제에 분노하지만, 노동자 운동이 약하면 우익의 선동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위기가 악화하고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이들은 트럼프와 극우가 내세운 ‘아웃사이더’·반(反)기득권 기치에 이끌렸다. 그래서 전염병 대유행 초기부터 “경제 재가동” 무력 시위를 벌이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라’(MAGA) 운동에 적극 참가했다.
일각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이번 난동은 ‘포퓰리즘’에 홀린 노동계급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 워싱턴 DC 난동 참가자 다수가 비교적 유복한 소사업가·소자산가·전문직이었다.(전·현직 군인·경찰도 있었다)
트럼프
트럼프 자신이 우익의 축 구실을 했다. 트럼프는 6일 시위를 직접 부추겼을 뿐 아니라, 지난 4년 내내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며 천대받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자본주의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좌파를 비난했다.(관련 기사 본지 337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트럼프, 이데올로기 전쟁의 수위를 높이다’)
그 덕에 온갖 극우 운동이 세를 넓혀 왔다. 2017~2019년 사이에 백인 국수주의 혐오 단체들은 그 수가 55퍼센트나 늘었고 규모도 커졌다. 이들은 2020년에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를 비롯한 온갖 운동들을 공격하며 세를 굳히고, 트럼프 재선 선거운동 와중에 전국적 네트워크를 다졌다. 몇몇 극우 인사들이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공화당 의원으로 당선했고 이제 극우 시위대에 힘을 싣고 있다.
물론 미국 대기업들과 기성 정치권 압도 다수가 체제의 위기를 관리하려고 지금 당장 극우·파시스트의 손을 빌리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이 때문에 이번 난동은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한 쿠데타는 아니다.)
하지만 체제의 위기가 심화하며 불안정성이 더 커지면 극우·파시즘이 성장할 위험도 커진다.
중도에 기대어 극우와 맞설 수 없다
이번 난동으로 민주주의의 종주국을 자처한 미국의 지배계급은 엄청난 모욕을 당했다. “짓밟힌 민주주의의 성전”(의사당) 운운하는 개탄이 나오는 배경이다.(그러나 그런 개탄은 의사당이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졌고, 미국 노동계급에 대한 온갖 공격을 도모한 공간이며, 전 세계에서 제국주의적 만행을 벌이기로 결정했던 곳임을 무시한다.)
미국 지배층 주류는 ‘정상 체제로의 회복’을 공언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만들기에 거의 일치단결해 힘을 쏟고 트럼프와 극우를 배척해 왔다. 물론 대기업들은 트럼프의 기업 감세 정책에서 득을 보고, 소수 기득권 인사들과 억만장자들은 트럼프 등장 전부터 ‘티파티’ 등 공화당 내 우익 운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지배층 주류는 트럼프가 극우 운동을 고무해 기존 지배 질서를 교란하는 것과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그런 자들 중에는 트럼프의 부통령 마이크 펜스도 있었다. 의사당에 난입한 극우 시위대가 “펜스를 목 매달아라” 하고 외친 배경이다.)
트럼프 이전으로 회귀하려 하는 이런 지배층 주류가 보기에, “대선을 훔치지 말라”며 반발하는 트럼프와 극우 운동은 성가신 존재일 것이다.
지금 나오는 트럼프 탄핵 논란도 바로 그런 공방의 맥락 속에 있다. 이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 두 번이나 탄핵 시도를 당한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이것은 트럼프가 노동계급을 가혹하게 공격하고 이민자와 유색인종을 위협하고 미국 대중을 재앙적 전염병에 내버려 뒀기 때문이 아니다. 트럼프가 기존의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 질서를 교란했기 때문에 탄핵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난동에서 봤듯 트럼프를 탄핵해도 그가 남긴 극우 운동을 잠재울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공화당의 ‘진정한 트럼프주의’ 성향 극우 의원들은 극우 난동을 강력 옹호하고 탄핵 시도에 극력 반대한다. 이는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도모한다는 공화당 지도부의 당론과 배치되는 것이다. 미국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를 두고 “‘진정한 트럼프주의’ 의원들은 사실상 제3당이 됐다”고 평했다.
이들은 새 정부 하에서도 대중이 겪을 쓰라림을 오른쪽에서 이용해 계속 기반을 굳히려 이런 입장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로써 극우의 세력 형성을 도우려는 것이다.(관련 본지 기사 342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미국 대선과, 트럼프가 일으킨 정치적 지각 변동’)
바이든
1월 6일 난동 때는 질서 회복을 트럼프에게 애걸했던 바이든은 이제 극우의 “반란”, “쿠데타”를 다잡으려면 (특히 FBI 등) 연방정부 산하의 경찰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찰의 인종차별적 폭력에 맞서 수천만 명이 참가한 대중 항쟁을 벌였던 미국 대중에게, 이제 경찰력 강화를 지지하라는 것이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를 잔혹하게 공격하고, 극우 폭력에 정당방위를 한 시위 참가자 마이클 레이노엘을 살해한 바로 그 연방 병력에게 말이다.
사실, 미국 국가와 지배계급 주류가 이번 난동을 실질적 “쿠데타”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난동 참가자들에 대한 대량 체포·살해, 통제에 실패한 군경에 대한 혹독한 징계가 없다는 점 자체가, 바이든을 지지하는 미국 지배계급 주류가 이번 난동을 쿠데타 위험으로 보지 않음을 반증한다.(‘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가 무장한 채 의사당에 난입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바이든이 “쿠데타” 운운, 탄핵 시도 등으로 진정 단속하고 싶은 것은 (바이든 정부가 재건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중도’에 대한 공격이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인종차별·극우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이용해 그런 일을 하려 한다. 역사적으로도 미국 민주당은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분노를 돌려서 선거와 집권에 이용해 온 전력이 있다.(관련 기사 본지 315호 ‘미국 민주당은 어떻게 진보 염원을 좌절시켜 왔는가’)
그런 점에서,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진보파 정치인들이 의회 내에서 트럼프 탄핵 절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대중 운동의 강화에 이바지하는 방책이 못 된다. 미국 민주사회당(DSA) 지도부는 이들을 지원하는 것 말고는 거의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지역 수준에서는 몇몇 DSA 활동가들이 거리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는 이 당이 가진 민주당 의존적 개혁 전략의 한계와 연관이 크다.(관련 기사 본지 322호 ‘미국 민주사회당(DSA)의 민주적 사회주의’)
바이든과 민주당이 트럼프를 공격해 이루고자 하는 사회는, 대중의 고통에 아랑곳 않는 전 세계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들만의 번영을 구가하는 사회다. 그리고 바이든은 새 정부와 국가 권력을 강화해서 바로 그런 체제를 운영하는 통치 수단을 지키려 한다.(관련 기사 본지 350호 ‘대의제 민주주의는 왜 언제나 대중을 저버릴까?’)
극우의 위험에 맞서 ‘중도’(민주당)와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 대중의 독립적 저항을 고무해야 한다.
파시즘을 분쇄할 노동계급 저항이 필요하다
그런 저항의 좋은 조짐이 있다.
1월 10일 1만여 명이 뉴욕 도심을 행진하며 트럼프와 극우를 규탄했다. 뉴욕 지역 연대체 ‘인종차별·파시즘에 맞서 일어서자’가 이날 시위를 주최했는데, 이 연대체는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 ‘마르크스21’을 비롯해 차별에 반대하는 여러 지역 단체들이 함께 모인 곳이다.
이런 운동이 미국에서 더 확대돼야 한다. 그리고 그 운동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 위기의 고통 전가에 맞서 작업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포괄해야 한다.
한국계 미국인 사회주의자이자 ‘마르크스21’ 회원인 버지니아 로디노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계급은 파시스트 단체들을 압도할 수 있는 세력입니다. 위기의 고통을 겪으며 의존할 데 없다고 여기는 수많은 미국인들을 우리 주장에 동의하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마르크스21’은 지금의 정치적 공간을 이용해 공동전선을 성장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적·조직적 노력으로 파시스트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마르크스21’이 성명에서 지적했듯, “극우에 맞선 광범한 단결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하지만 파시즘의 위협을 분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광범한 대중 운동을 건설하면서도, 인종차별과 절망의 운동인 파시즘을 낳는 근원을 설명하고 뿌리 뽑을 수 있는 반자본주의 좌파를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