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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극우 시위대 의사당 난입을 통해 본: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1월 6일 미국 의사당에 난입한 군중 속에는 트럼프 지지자, 극우 음모론자, 노골적인 파시스트로 이루어진 험악한 무리가 있었다. 그 중핵에 나치가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위대 안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6MWE”(‘600만으로는 부족했다’의 약자,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가리키는 말이다)가 적힌 후드티를 입은 자들이 있었다.

이들에 맞서려면, 이들이 제기하는 위협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파시즘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은 공연히 어떤 도식을 만드려는 것이 아니다. 파시즘을 명확히 규정한다고 해서 다른 우익이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위험성을 가벼이 여기자는 것은 아니다. 파시즘에 더 잘 맞서기 위해 파시즘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파시즘은 단순히 권위주의, 인종차별, 편견의 고약한 형태가 아니다. 파시즘은 정치적 반대자와 소수자에게 폭력과 테러를 가할 수 있는 대중 운동을 거리에서 건설하려고 애쓴다. 파시즘의 궁극적 목표는 민주적 권리를 모두 파괴하는 것이다.

파시즘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 심각한 사회 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평상시”에 자본가 계급은 그들의 국가와 경찰력에 기대어 위협을 억지할 수 있다.

의회 민주주의라는 허울, 지배계급 사상을 전파하는 언론, 대중의 분노가 폭발할 때 안전 밸브 구실을 하는 “안전한” 야당 등을 이용해 통치를 정당화한다.

위기 시기에는 이런 통상적 수단이 충분치 않을 수 있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몇 십 년간 각국 지배계급은 전투적인 노동계급 대중 운동과 혁명의 위험에 직면했다. 결국 일부 지배계급은 노동계급 운동을 분쇄하려고 다른 대중 운동, 즉 파시즘에 기댔다.

파시스트들은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선거에 출마하지만, 민주적 선거로 국가 권력을 장악한 적은 없다. 1930년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나 1920년대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의 집권 모두 지배계급이 질서·안정성 회복을 바라고 권력을 넘겨준 것이다.

그렇다고 파시즘이 지배계급의 부속물이나 지배계급 운동인 것은 아니다. 파시즘에는 고유의 기반과 동학이 있고, 거짓된 “혁명적,” “반(反)기득권적” 언사를 한다.

파시즘의 사회적 기반은 “프티부르주아”에 뿌리가 있다. 이 중간계급 층에는 소자본가, 소상점주, 일부 자영업 전문직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자본가들처럼 부와 권력을 갖고 있지도 않고, 노동계급처럼 집단적으로 투쟁할 능력도 없다. 위기가 닥치면 이들은 심각하게 짓눌리곤 한다. 강력한 노동자 운동이 있으면 이들은 좌경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노동자 운동이 없으면 오른쪽으로 기울 수 있다. 그들의 고통을 탓할 희생양을 우익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독일의 나치가 바로 그런 사례였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예컨대 헝가리에서는 중간계급이 2007~2008년 금융 공황 당시 막대한 빚에 짓눌리고 파탄나면서 파시스트 정당인 요빅당이 성장했다.

파시즘 운동은 거리 운동으로 힘을 키운다. 그러므로 이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운동

현재 미국 지배계급은 파시즘에 기대어 질서를 회복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파시스트가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임기 시작부터 파시스트들에게서 공공연히 환심을 사려 했다.

트럼프는 극우 음모론의 구세주가 됐고, 선거 기간 동안에는 은근히 극우·파시스트들을 유용한 불량배처럼 취급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기반 일부를 더 우경화시켜서 파시스트들에 상당한 청중을 제공하기도 했다.

극우·인종차별 운동의 중핵에 나치가 있고, 그보다 덜 극렬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그 주변에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종류의 우익 운동은 더 “주류”로 이끌릴 수도 있지만, 나치로 이루어진 중핵이 성장해 운동을 정치적으로 더 강경하게 만들려 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파시스트들이 하려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난동은 진짜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고 벌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파시스트들은 자신의 운동을 건설하면서 때로 더 대담하고 선언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다. 예컨대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들은 1919년 밀라노에서 사회주의 신문 인쇄기를 박살내고 39명을 살해했다.

당시 파시스트들은 세력이 작았다. 하지만 그런 폭력적 행동은 파시즘 운동의 지향을 천명하는 선전 효과를 냈다. 무솔리니는 이 사건을 “내전의 첫번째 사건”으로 찬양했다.

이번 의사당 난입은 트럼프 임기의 마지막 한 숨이었다. 하지만 극우·파시스트가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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