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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의 제4차 건강가족기본계획:
현실의 변화보다 뒤처진 데다 미흡하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향후 5년간의 가족 정책의 뼈대가 되는 ‘제4차 건강가족기본계획’(이하 ‘4차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혈연·혼인·입양에 국한된 법률상의 가족 개념을 확대해 비혼 동거도 포함될 수 있도록 개정하고, 자녀 성 결정 시 아버지 성을 따르는 부성 우선 원칙을 폐지하고, 한부모 가족 등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등의 계획이 포함됐다. 기존의 혈연·혼인 중심의 법과 제도들이 다양해진 가족 형태를 포괄하지 못하니, 개선하겠다는 취지이다. 여가부의 계획은 4월 말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문재인 정부의 이번 계획은 가족 구성이 다양해진 현실을 뒤늦게 반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20~30년 사이에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성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점점 더 다양해졌다. ‘전통적’ 핵가족 모델이 약화됐고 생활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관도 변했다.

혼인이 감소해 2019년 결혼한 부부의 수는 고작 23만 9000쌍에 그쳤다. 기록이 시작된 1970년대 이래 최저치였다. 출산율도 사상 최저 수준이다. 그 대신, 동거하거나 혼자 사는 사람 수가 증가했다.(1인 가구는 30년 사이에 세 배 이상 늘었다.) 결혼 제도 밖 출생도 증가해 왔다. 비혼 출산과 이혼이 증가함에 따라 한부모 가정도 늘어났다.

이에 따라 현행법상의 가족만을 ‘정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변해 왔다. 여가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현재 ‘혼인,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같이하면 가족’이라는 인식이 70퍼센트에 이른다.

결혼이 필수적이라는 태도는 줄어든 반면 비혼 동거에 대한 태도는 허용적으로 변했다.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2008년 68퍼센트에서 2018년 48.1퍼센트로 10년 사이 급감했고, 비혼 동거에 대한 허용적인 태도는 같은 기간 42.3퍼센트에서 56.4퍼센트로 크게 늘었다.

성과 결혼, 출산에 대한 대중 의식의 변화는 여성의 대규모 임금노동 유입과 고등교육의 확대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변화를 반영한다. 피임·낙태술의 발달도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많은 젊은 여성들은 집안에서 아내와 어머니로 매여 사는 것을 더는 꿈꾸지 않는다.

수십 년 전에는 혼전 성관계가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져 외면당했지만, 개방적 태도가 확산돼 왔다. 오늘날 여성은 더 당당하게 성을 표현하고 성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한다.

이것은 사람들의 성생활에 나타난 훨씬 더 광범한 변화의 일부로, 성생활은 점점 결혼, 출산과 분리돼 왔다.

다른 한편, 만성적 경제 위기 하에서 결혼·출산, 심지어는 연애마저 유예되거나 기피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취업이 어렵고 저임금으로 내몰려 삶이 불안정한 노동계급 청년들은 결혼·출산을 위한 재정적·정서적 여유가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배경에서 성인 남녀 부부와 미성년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 형태는 크게 줄어 왔다.

성인 남녀 부부와 미성년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 모델은 크게 줄어 왔고, 이와 함께 성과 결혼, 출산에 대한 대중의 의식도 변해 왔다

현실이 크게 변했지만, 많은 법과 제도가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짜여 있는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아 왔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이번 계획은 한참 뒤늦은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이성·동성 동거 커플은 연금, 보험, 배우자 대소사에 대한 휴가와 수당 등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수십 년을 함께 산 파트너가 죽어도 한푼도 상속받지 못하고, 임차권이 승계되지 않아 함께 살던 집에서 강제 퇴거당하는 경우도 있다. 파트너가 아플 때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 곁에 있을 수조차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주택 문제도 심각하다. 신혼부부이거나 자녀가 있으면 아파트 청약 시 혜택을 받지만, 동거 커플은 함께 전세 자금 대출을 받기 어렵다.

몇 년 전 ‘사실혼’ 관계일 경우에는 연금, 난임 지원 등에서 법률상 부부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사실혼임을 인정받으려면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해서 그 대상이 여전히 제한적인 데다 여러 다른 차별도 남아 있다.

한부모 가족들의 처지는 특히 매우 열악하다. 양육 책임이 개인들에게 떠넘겨져 있는 상황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기란 매우 어렵고 지독한 희생을 요구한다. 한부모 가정에 대한 여전한 사회적 편견과 냉대도 커다란 고통을 준다.

이런 현실 때문에 법과 제도에서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회피

정부는 이번 계획을 통해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 “다양한 가족의 안정적 생활 여건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런 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한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도 있어 보인다. 결혼을 선택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결혼 장려만으로는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고, 결혼 제도 바깥의 관계를 어느 정도 포용하고 지원함으로써 효과를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상의 가족 범위 확대조차 종교계 등 우파들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얼마나 일관되게 이를 추진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가족 개념 변경은 우파 쪽에서만이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법무부)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것도 의구심을 키운다.

무엇보다 4차기본계획은 “다양한 가족”의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키기에는 크게 미흡해 보인다.

예를 들어, 이번 계획에서 양육·돌봄 지원 정책은 지난 제4차저출산고령화 대책에 이미 포함됐던 내용들로 ‘재탕’인 데다, 그 수준도 미미하다.

방송인 사유리 씨의 출산으로 논란이 됐던 비혼모의 보조생식술 이용 문제도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는 정도의 언급에 그쳤다.

또, 비혼·동거 가족들이 혼인·혈연 관계 가족들처럼 주거·의료·상속·연금 등 각종 권리를 보호받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말만 하거나 “중장기 방안”으로 미뤄 뒀다. 동성 커플에 대한 권리 보장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적잖은 비용이 들거나 논란이 될 만한 문제는 회피하는 것이다. 정부 자신도 일부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업주들의 이윤 추구에 방해가 될 만한 지출은 줄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다 보니 한계가 큰 것이다.

이래서는 “다양한 가족 지원”은 생색내기 수준에 그칠 것이고 사람들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중받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으려면, 가족에 대한 법률적 정의가 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상 가족’ 중심의 각종 사회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보육과 돌봄 등에 대한 국가 지원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 비혼 출산을 제약하는 규정도 없애야 한다.

정부 정책은 한참 뒤늦었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에도 미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