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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 해결 외면하는 정부와 사용자:
택배 노동자 투쟁 정당하다

몇 달 전 약속조차 안 지키는 사측과 정부에 본때를 보여 줘야 6월 9일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열린 전국택배노동조합 파업 결의대회 ⓒ이미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가 6월 9일 조합원 92.3퍼센트의 지지로 파업을 가결시키고, 곧바로 파업에 돌입했다. 택배사와 정부가 분류 인력 충원을 1년 유예하려는 것에 대한 항의다.

쟁의권이 있는 조합원 2100여 명(전체 조합원은 6500여 명)이 파업을 하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7일부터 시작한 분류 작업 거부 행동을 이어 나간다.

지난 1월 21일, 택배 노사와 정부는 분류 작업이 택배 회사의 책임이란 점을 명시하고 택배 분류 인력을 충원한다는 합의(택배 과로사 대책을 위한 1차 합의)를 했다. 그리고 우선 분류 인력 6500명 투입을 약속했다. 이후 5월 말까지 2차 합의를 통해, 추가 인력 투입, 장시간 근무 해소 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택배사들이 약속 이행을 미루면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과로사의 그림자 속에서 일하고 있다.

택배노조가 6월 2~3일 온라인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민간 택배회사 소속 노동자의 84.7퍼센트가 여전히 분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설문에 참여한 전국 72개 우체국 소속 택배 노동자들도 모두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중 62곳에는 분류 인력이 단 한 명도 충원되지 않았고, 분류 작업에 대한 임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민간 택배사들은 분류 인력 충원 비용을 핑계로 지난 4월에 택배 요금을 150~250원가량 인상한 바 있다. 그래 놓고 정작 인력 충원은 계속 미루고 있는 것이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은 요금 인상으로 올해 수입이 2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택배노조). 그런데 CJ대한통운은 지금까지 고작 4000명만 충원했다고 밝혔다. 분류 인력 1000명당 인건비가 연간 120억 원 정도(택배업계 예측)라고 하니, 인건비를 훨씬 뛰어넘는 추가 이윤을 거두는 셈이다.

택배사들이 약속 이행을 미루는 것은 투자의 우선순위를 시설확장과 설비 자동화에 두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비 자동화로 인건비를 최대한 절감할 수 있을 때까지 인력 충원을 미루고, 그동안은 택배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려는 것이다.

택배사들의 약속 위반은 정부가 든든한 뒷배 노릇을 하고 있어서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정부도 (단계적 인력 충원 규모와 적용 시기에서 택배사와 차이가 있을 뿐) 과로사 방지 대책의 전면 시행을 1년 유예하자는 입장이다. 정부는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주 60시간 정도로 하고, 주 5일제 시행 여부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쌓여온 불만

7일부터 시작된 택배노조의 분류 작업 거부로 배송에 차질이 빚어질 것 같자, 택배사들은 서둘러 분류 인력을 일부 충원했고, 우정사업본부도 분류 인력 충원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밥 먹듯 약속을 어기며 노동자들을 우롱하는 택배사들을 믿고 기다릴 수 없다고 분노하고 있다.

6월 9일 울산 파업 출정식에서 만난 롯데택배 노동자는 이번 투쟁의 의의를 이렇게 밝혔다.

“번번이 약속을 어기는 사측을 믿을 수 없습니다. 물량은 계속 증가할 텐데, 이번에 분류 인력을 제대로 확충해야 합니다. 특히 택배노조 조합원이 없는 곳들은 분류 인력이 거의 충원되지 않았는데, 이번 투쟁으로 이런 곳들도 해결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분류 인력 충원과 더불어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도 절실히 바라고 있다.

“지난 10년간 수수료(임금)는 한 푼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차량 기름값을 비롯해 물가는 상당히 올랐는데 말이죠. 이게 말이 됩니까?”(김상용 택배노조 한진경기광주지회장)

파업이 시작되자 보수 경제지들은 “신의 직장 만들자는 거냐”며 과로 근절과 처우 개선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염원을 깎아내리고 있다.

그러나 각종 비용을 제하고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평균 234만 원에 불과하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말뿐인 합의’

택배 노동자들이 작업 거부에 나서자 사용자들은 대체인력 투입에 나서고 있다.

특히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들에게 택배 배달을 떠넘기며 대체인력 구실을 강요하고 있다. 우체국 택배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률과 분류 작업 거부 동참율이 높아 배송 차질 효과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정사업본부는 편지 등 우편물보다 택배 배달을 우선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집배원 역시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데 말이다.

민간 택배사들도 분류 인력을 추가 투입하거나 직영 택배 기사들을 투입해 배송 차질을 줄이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노동자들의 투지는 꽤 강하다. 이번에는 ‘말뿐인 합의’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결국 약속 이행과 과로사 근절 대책을 강제하려면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이 관건이다.

지난 1월의 1차 사회적 합의 이후에도 택배사들은 분류 인력 충원을 미적거렸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파업 돌입 직전까지 가 일부나마 이행하게 한 바 있다. 일부 터미널에서는 1차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현장 투쟁을 벌여 분류 인력을 받아 내기도 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보여 준 이런 투쟁 잠재력을 이번 투쟁에서 적극 발휘해야 실질적인 조건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지지 여론도 나쁘지 않다.

다시 시작되는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에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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