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과로사 대책 합의 한 달:
인력 충원은 생색내기 수준, 해고 자행하는 택배사들
〈노동자 연대〉 구독
택배 과로사 대책이 합의된 지 한 달이 돼 가지만, 약속한 분류 인력 투입은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은 채 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해고까지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변한 것이 없다”며 불만과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최근 한진택배와 CJ대한통운에서 노조 조합원들을 표적 삼은 부당 해고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소속 한진택배 노동자들(280여 명)과 CJ대한통운본부 창녕지회 조합원들은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월 23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한진택배는 김천대리점을 2월 1일부터 2개로 분구했는데, 고용 승계 면담에 노조원들이 개별적으로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신임 대리점장이 이틀 만에 조합원 4명을 해고했다. 노동자들은 고용과 처우에 대한 협상을 개별 면담이 아니라 노조와 할 것을 요구했었다.
한진택배 사측과 대리점주들은 새로운 계약 체결을 빌미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를 억누르려 하고 있다.
김천 지역 한진택배 노동자들은 노조(지회)를 결성하고 열악한 작업장 환경 개선을 요구해 왔다. 화장실 추가 설치와 휴게실 마련, 약속한 분류 인력 투입 등 “인간적인 대접을 바라는 최소한의 요구들”이다. 김천 지역 한진택배 노동자 23명 중 5명이 여성인데 남녀 화장실이 분리돼 있지 않고, 혹한 속에 작업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휴게실도 없었다. 하루 대여섯 시간에 이르는 무료 노동인 분류 작업으로 노동자들은 14~15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왔다.
그런데 대리점은 권한이 없다며 묵묵부답이었고, 고용에서 처우까지 노동자들의 조건을 좌지우지하는 진짜 사장인 한진택배 본사는 위탁계약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해 왔다. 본사 측은 이번 해고도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며 대리점과 알아서 해결하라는 태도다. 그러나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
대리점 분구나 통합, 폐지 등은 본사에서 결정하는데, 이때 종종 조합원들과는 계약을 맺지 않는 방식으로 노조를 탄압해 왔다. 특히 노조가 새롭게 조직되는 대리점들에서 이런 사례들이 발생했다.
지난해 6월 롯데택배 울산 신정대리점이 폐지되면서 조합원 전원이 해고됐다가 투쟁을 통해 복직된 바 있다. 한진택배의 경우 최근 김천대리점뿐 아니라 올해 노조원들이 생긴 원주에서도 대리점 분구가 추진되면서 해고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CJ대한통운 창녕대리점장은 노조 준비 시기부터 1년 넘게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왔다. 문자메시지로 갖은 욕설과 함께 해고 위협을 일삼다가 최근 계약이 만료되자 조합원 2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처럼 사측은 택배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개인사업자’(특수고용노동자)라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정부가 올해 1월에 발표한 택배 현장 ‘불공정 관행 특별 제보 기간’에 접수된 주요 사례를 보면, “영업점 요구사항 불응 시 일방적 계약 해지”, “노조 가입자에 탈퇴 종용·계약 갱신 거절” 등이 있다. 택배사들이 위탁계약을 통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진짜 사장인 택배사들이 책임져야
노동자들은 해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처들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오는 7월 25일부터 택배기사의 고용 기간을 최대 6년간 보장하는 생활물류서비스법이 시행된다. 또한 1월 21일에 체결한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기구’(이하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합의문에도 “일방적 계약 해지를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도 사측은 합의 내용을 무시하며 법 시행을 앞두고 해고를 일삼고 있다. 정부는 1월 대책 발표 당시 “불공정 사례”들에 대해 “법령에 따라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지만, 접수된 제보에 대해 사업주가 처벌 받았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정부의 수수방관 속에 택배사들이 해고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번 해고 사태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저항에 나서고 있다. 이번에 해고가 관철되면 이제 막 노조가 결성되거나 조직력이 취약한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조건 개선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의 기세를 꺾어 놓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공격을 야금야금 확대하려 할 것이다.
2월 23일 파업에 돌입한 후 경기도 광주 한진택배터미널에 모인 노동자들은 해고가 철회될 때까지 무기한 파업을 결의한 상태다.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는 23일 창녕지회 파업을 시작으로, 25일에는 영남권 전역, 27일부터는 전체 조합원 파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미흡한 인력 충원에 커지는 노동자들의 불만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과로사 대책 후에도 “현장은 변한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해고 사태에서 보듯 일방적 계약 해지뿐 아니라, 분류 인력 투입 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 택배사들로부터 2월 4일까지 분류 인력 6000명 충원(CJ대한통운 4000명, 롯데택배와 한진택배 각 1000명)을 재차 약속 받았다. 그러나 택배사들은 “시간이 걸린다”는 핑계를 대며 노조원들이 다수인 일부 택배터미널 중심으로만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롯데택배와 한진택배는 각각 200명만 우선 투입하고 다른 곳들은 [택배기사들에게] 분류 수수료를 지급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동시간이 그대로예요. 수수료도 얼마나 지급할지 알 수가 없어요.”
“회사가 또 ‘설 명절만 넘기자’며 앞에서 쇼만 하고 거짓말을 한 겁니다.”
택배사들은 분류 인력 충원 비용을 최소화하고 책임을 대리점에게 떠넘기려는 꼼수도 부리고 있다. 인건비의 절반을 대리점이 내라고 하거나, 대리점에 낮은 인건비를 지급하고 알아서 인력을 뽑으라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일은 고되면서 단시간·저임금 일자리인 분류 작업에 안정적으로 인력이 충원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인력 충원 합의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MBC 보도를 보면, 택배사들은 정부의 현장 점검 정보를 미리 입수해 당일에만 보여 주기식 점검을 받고 있었다.
택배사들은 택배 요금을 인상해 그 돈으로 인원을 충원하겠다는 속셈이다. 비용을 택배 이용자들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다. 현재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 2차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적정 택배 요금 수준 등에 대해 논의가 진행 중인데, 택배사들은 요금 인상을 요구할 뿐 아니라 요금 인상분을 어떻게 쓸지는 자신들의 권한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택배사와 정부가 약속 이행을 미루는 사이, 설 연휴를 이틀 앞두고 목포에서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가 또 쓰러져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 택배사들은 약속한 인원을 즉각 충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과로로 쥐어 짜며 이윤을 얻어 온 택배사가 전액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