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대리점주 사망 논란:
택배노조와 노조원들을 방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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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김포 지역의 CJ대한통운 한 대리점주의 사망 사건이 벌어진 이후 택배노조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사망한 대리점주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병원에 실려 갔으나 사망했고, 이후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해당 대리점에서 노조원들의 “불법 태업”, “업무 방해”, “강도 높은 노조 활동 통보”, “집단 괴롭힘” 때문에 버티기 힘들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이 대리점주는 원청으로부터도 상당한 압박을 받았던 듯하다. 택배노조는 이 대리점주가 ‘대리점 포기 각서’를 제출해 8월 31일자로 대리점 계약이 종료될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원청의 압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녹취록도 공개했다.
아마도 대리점주는 원청의 대리점 포기 압박이 노조와의 격렬한 갈등 때문이라고 여겨 노조와 노조원들에게 원망을 품은 듯하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CJ대한통운대리점연합회는 택배노조의 조직적 횡포가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비난했다. 택배노조원 12명을 고소·고발도 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택배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어 원청과 대리점주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고 조건을 개선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리점연합회를 비롯해 사용자들은 이번 사건을 노동자 투쟁에 대한 반격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친사용자 언론들도 “노조 갑질”, “강성노조의 폐해” 운운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 내고 있다. 여러 불확실한 일들을 왜곡하거나 사소한 일을 침소봉대해 폭로하는 데 열심이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들도 합세했다. 유력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은 민주노총의 “기득권”이 문제라며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쉬운 해고, 임금 억제, 노동시간 규제 완화 등 노동자들의 조건을 후퇴시키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친사용자 언론들과 국민의힘이야말로 진정한 기득권층으로 수혜와 특권을 누려 온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과로사가 끊이지 않는 장시간 과중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기득권 운운하는 건 가당치도 않다.
이들의 목적은 민주노총과 노동자 투쟁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데 있다. 특히 올해 자신감과 활력을 보여 주며 투쟁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낸 택배노조가 보복 타깃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한 것도 이런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려는 시도다.
보복
더구나 파업과 태업 같은 쟁의 행위를 두고 ‘집단 괴롭힘’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은 법률로도 보장된 기본적인 노동권리다. 직장 안에서 사용자는 생산수단과 노동자들에 대한 막강한 통제권을 행사한다. 원청과 하도급 관계에 있는 대리점주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택배 노동자들에 대한 계약해지(해고)와 노동조건의 상당 부분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실제 해당 택배 대리점에서는 반복되는 임금 체불과 일방적인 수수료(임금) 삭감 문제가 벌어져 왔다. 이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했다. 최근에도 수수료 삭감에 항의해 최소한의 집단적 항의(규정을 지켜 택배 배송하기)를 했다. 택배노조가 지적하듯, 이는 “정당한 일상적 노조 활동”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대리점주에게 했던 말 중에는 전술적으로 비효과적인 내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택배노조는 “조합원들의 일부가 고인에게 인간적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의 글들은 단톡방에 게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폭언이나 욕설 등의 내용은 없었고 소장에 대한 항의의 글과 비아냥, 조롱 등의 내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톡방에서 나온 ‘말’일 뿐이다. 게다가 노동자들을 고용할지 말지 결정권을 쥔 사용자에 대한 피고용인들의 항변이었다. 그런데 이를 갖고 경찰 조사와 법적 처벌 운운하는 것은 부당한 탄압이다.
물론, “비아냥”, “조롱” 조의 과도한 언사는 그 자체로 현명한 것은 아니다. 비조합원에게도 그렇다. 투쟁 조직화나 투지를 북돋는 데에 더 효과적인 것도 아니고, 되레 사용자와 친사용자 언론들이 투쟁을 비난하고 왜곡할 빌미만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택배 노동자들이 투쟁 경험이 적어 미숙한 대응을 한 듯하다. 이는 집단적 투쟁 과정에서 규율을 익히고 훈련해 나가는 속에서 교정돼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택배노조 지도부는 해당 조합원들을 “노동조합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징계로 다스릴 일이 아니다.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미숙한 언사를 징계 사유로 삼는 것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는 데 위축감을 들게 할 수 있다.
사용자와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항의와 충돌이 벌어지곤 하는데,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방어 받을 수 없다고 느낀다면 누가 나서서 싸우려 하겠는가.
더구나 노조의 징계가 법적 처벌 여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기도 하다.
아마도 택배노조 지도부는 일부 조합원들의 언사에 강경하게 대처해야 도덕성을 지키고 노조에 대한 과도한 비난 공세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듯하다. 그러나 노조의 이런 대처는 오히려 대리점주 사망이 노조와 노조원들의 책임이라는 비난과 공격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데 이용될 수 있다.
한편으로 택배노조의 징계 방침은 최근 노동조합운동 안에서 ‘정치적 올바름(PC)’이 광범하게 수용된 영향을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정치적 올바름은 보통 차별에 민감한 문화를 지향한다. 노조는 당연히 차별에 반대하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차별 반대를 단결과 집단적 투쟁과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단순한 태도 문제로 치부하거나 개인들에 대한 도덕주의적 단죄로 나아가는 것은 오히려 단결과 사기를 해치는 일이다.
노동운동은 대리점주 등 사용자 측의 부당한 비난과 공격에 맞서 택배 노동자 투쟁과 노조원들을 굳건하게 방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