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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투쟁으로 국가를 강제하기: 누가, 어떻게?

안드레아스 말름이 2020년 봄에 쓴 책이 국내에 번역 출판됐다. 말름은 2016년에 쓴 책 《화석 자본》으로 아이작 도이처 상을 수상하고 기후 운동 내에서도 유명 인사가 된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는 스웨덴 룬드 대학에서 생태학을 연구하는 학자이지만 2015~2018년 독일에서 석탄 화력 발전소를 폐쇄하는 운동에 동참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화석 자본》에서 말름은 풍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산업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어떻게 화석연료가 당시 가장 발전한 동력원이었던 수력을 대체하게 됐는지 파헤쳤다. 이를 통해 말름은 기후 위기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주장은 틀렸고,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에게 진정한 책임이 있음을 논증했다. 이는 기후 정의 운동에 커다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는 코로나 팬데믹이 유럽을 강타한 직후에 쓴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팬데믹과 기후 위기 각각에 대한 지배자들의 대처 방식을 비교했다.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우석영·장석준 옮김, 마농지, 17,000원

팬데믹이 본격화하던 2020년 봄 주요 선진국 지배자들은 경제가 마비되는 것을 무릅쓰고 록다운을 강행하는가 하면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재정지출로 일자리와 소득을 지원했다.

이런 조처들은 기후 운동이 수십 년 동안 요구해 온 것이기도 했다. 기후 위기를 멈추기 위해서도 대규모 재정지출과 화석연료 산업 등 일부 산업의 폐쇄가 필요하다. 그러나 팬데믹 전까지 지배자들은 이런 요구를 들은 척도 안 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

말름은 기후 변화와 달리 팬데믹은 순식간에 북반구의 주요 선진국 지배자들 자신을 크게 위협했기 때문에 신속한 대처가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지배자들은 기후 위기가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조처를 제때 취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타당한 지적이다.

다만 팬데믹이 2년이 지나가는 지금 보면 말름의 주장 중 일부는 다소 섣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주요 선진국 지배자들은 팬데믹 초기에 화들짝 놀라 잠시 경제가 마비되는 것을 용인했지만 곧 태세를 가다듬고는 경제를 정상화하는 데 온 힘을 집중했다. 또 백신 불평등이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을 낳아 팬데믹을 더 장기화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경쟁과 이윤 시스템을 위해 우리의 미래를 희생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 위기 모두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낳은 문제임을 강조한 말름의 주장은 완전히 옳다. “코로나와 기후는 작금의 오래된 비상사태를 구성하는, 각자 시공간 스케일을 지닌 채 뒤얽혀 있는 두 개의 면이라는 것이다.”(124쪽) 따라서 “문제의 뿌리를 겨냥[해야 한다.](141쪽)

그는 자본주의가 인류 전체를 파멸로 몰아갈지언정 결코 로마 제국처럼 “자연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의식적인 개입의 정치”가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의적절한 주장이다. 그 정치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토네이도가 파괴한 미국 켄터키주의 한 도시.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 재난은 신속하고도 근본적인 체제 변화가 필요함을 보여 준다 ⓒ출처 State Farm(플리커)

사회민주주의와 아나키즘 비판

말름은 사회민주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가정 위에서 생명력을 유지한다. 시간이 엄청나게 많아야만 한다. 그런 경우라면 우리는 좋은 사회를 향해서 천천히, 상승 계단을 밟아가며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 점진주의를 위한 시대는 이제 끝났다.”(161쪽)

기후 위기와 팬데믹의 시대에 이런 비판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집권기에 기후 위기 대처에 소극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기는커녕 국가 경쟁력을 앞세워 자본주의적 성장에 매진했다. 이런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 신물이 난 청년들은 아나키즘에 이끌리기도 한다.

그러나 말름은 아나키즘도 대안은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아나키즘이 국가를 증오한 나머지 기후 위기나 팬데믹처럼 국가 수준의 개입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적절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팬데믹 상황에 놓인 일부 취약 지역들에서 주민들의 상호부조가 꽃핀 것을 찬양하지만, 어떤 경우도 대안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조처들은 사실 “국가가 책임지고 수행해야 했을” 과제다.

저자가 이 책에 붙인 원래 부제는 (한국어판에 붙여진) ‘생태사회주의’가 아니라 ‘전시공산주의’다. 말름은 그린뉴딜 주창자들이 제2차세계대전의 경험을 들며 국가 차원의 대대적 동원을 요구한 것을 두고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전쟁이 필요하다며 러시아혁명 직후의 전시공산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급진 좌파조차 레닌과는 거리를 두려 하는 세태를 거슬러 레닌과 트로츠키의 정신을 오늘날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급진성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그가 얘기하는 레닌주의는 너무 혼란스럽고 심지어 일부 주장들은 자칫 레닌과 트로츠키를 적대하는 자들에게 악용될 우려도 있어 보인다. 이 글에서는 지면 관계상 핵심적인 두 가지 문제만 지적해야겠다.

먼저 말름은 기후 위기를 멈추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혁명의 필요성 자체를 기각한다.

“그런데 어떤 국가를 활용한단 말인가? 소비에트 기반의 노동자 국가가 하룻밤 새에 기적적으로 탄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을 기다리는 건 망상과 범죄 모두에 해당한다. 우리가 붙들고 싸워야 하는 상대는 자본의 회로에 늘 얽매여 있는 음울한 부르주아 국가일 뿐이다.”

이런 비관에 빠지는 게 말름만은 아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좌파가 비슷한 이유로 “당장 손에 쥔 재료들부터 활용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기후 위기 해결이 시급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기후 위기가 시한폭탄 같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지적해야겠다. 이런 오해는 유엔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18년에 발표한 보고서 때문에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순기능이 더 컸음에도) 증폭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2030년이라는 특정 시점에 그 결과가 판가름나는 현상이 아니다. 2029년에 긴급한 조처를 취하면 피할 수 있는 현상도 아니다. 기후 변화는 어느 순간 임계점(티핑 포인트)를 넘어 급격해지거나 이로 인한 변화들 중 일부는 돌이킬 수 없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전에든 뒤에든 인류는 계속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씨름해야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혁명에 성공하더라도 이미 많이 망가진 지구를 물려받아 그 위에서 고군분투해야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자본주의 국가를 활용해서 기후 위기를 멈추겠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선거를 통해 자본주의 국가를 장악하겠다는 전략은 말름이 비판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100년 넘은 역사뿐 아니라 가장 최근에는 그리스 시리자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 줬다.

또 말름 자신이 《화석 자본》에서 보여 줬듯이 화석연료는 자본주의에서 벗겨낼 수 있는 껍질 같은 것이라기보다 그 뼈대라고 할 만하다. 자본주의를 내버려둔 채 뼈를 발라내려 했다가는 자본주의 국가는 모든 발톱과 이빨을 사용해 운동을 분쇄하려 할 것이다.

말름이 우호적으로 인용한 레닌의 《임박한 파국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바로 이처럼 자본주의를 내버려두고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위기(당시에는 전쟁, 홍수, 곡물가격 폭등 등)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고 노동자 국가를 세워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 글이다.

반면,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체제의 위기가 극심해지는 상황에서는 혁명의 시계도 가속된다. 장기화된 경제 불황 위에 겹쳐진 팬데믹 위기와 기후 위기, 지정학적·군사적 긴장 고조는 세계가 지난 50년과 같은 속도로 굴러가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5년 안에는 어려울지 몰라도 30년을 내다본다면 혁명의 가능성은 필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승리 여부는 결정된 것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혁명적 전략

말름은 투쟁적인 ‘직접행동’으로 국가를 강제하자고 하지만 정말로 국가를 강제할 힘을 어떻게 조직할지는 공백으로 남겨 둔다. 그러다보니 분명한 전략을 제시하기보다 손에 잡히는 대로 뭐든지 활용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으로 나아간다. “자본주의 국가가 이 과업에 나서게 하려면, 시민이 국가에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 선거운동부터 사보타주까지 일체의 영향력을 통해서.”

그가 참여한 엔데 갤렌데 운동 등은 화력발전소를 점거해 가동을 멈추고 정부로 하여금 폐쇄 계획을 발표하도록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체제 전체를 바꾸려면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기후 운동은 노동계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은 기후 위기의 주된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이에 맞설 힘을 갖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도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물론 오늘날 노동계급이 체제 자체에 맞서기는커녕 조직된 노동조합들조차 자신의 힘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 불황은 물론이고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체제의 논리와, 이를 반영하는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분업 등이 그런 분출을 통제하는 구실을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당대의 많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 달랐던 결정적 차이 중 하나는 그런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에게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잠재력이 있음을 발견해 이를 조직하고 구현하려 분투한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이윤 창출 자체를 마비시킬 힘이 노동계급에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20세기 이후 벌어진 여러 혁명들에서 가장 최근에는 2011년 이집트 혁명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은 대중적 반란이 체제 자체에 맞서는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핵심 동력을 제공했다.

“기후 변화 아닌, 체제 변화!”라는 구호를 현실화하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끝낼 수 있는 전략과 함께 이를 실현할 주체를 조직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드는 혁명적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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