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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제명을 반대해야 할까?’에 답하며

이 글은 김샘 독자가 보내 온 독자편지 ‘윤미향 제명을 반대해야 할까?’에 답한 것입니다.

김샘 씨가 윤미향 의원 제명 시도를 반대하는 게 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 편지를 보내 왔다.(지면 제약상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 반말체로 쓴 것을 온라인에서도 바꾸지 않았다.)

아마도 김샘 씨가 보기에 윤미향 의원은 “지배계급 정당의 일원”이자 “국가기관의 하나”가 되면서 바리케이드 저편으로 넘어갔는데, 혁명가들이 그를 방어할 까닭이 있냐는 것이다.

먼저, 정당과 운동의 다소 복잡한 관계를 알아야 한다.

김샘 씨 지적대로, 민주당은 “지배계급 정당”이다. 그러나 이것을 민주당은 지배계급(자본가+정치 권력자)으로 구성된 정당이라는 뜻으로 협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지배계급의 객관적 이해관계를 의식적으로 대변하는 정당으로 봐야 한다. 정당의 강령과 무엇보다 일상적 실천을 통해서 말이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보통 채찍(힘)과 당근(동의)이라는 두 가지 수단이 사용된다. 군대·경찰·검찰·교도소·정보기관 등이 전자의 기능을 한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의 적어도 부분적인 묵인 없이는 자신의 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피지배 계급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도 아울러 사용한다.

후자의 지배 방식을 실행하는 데서 민주당이 전통적인 우파 정당 국민의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능함’을 보여 준다.(그렇다고 해서 민주당 정부가 전자의 방식을 배제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가공할 경찰력으로 대중의 저항을 수차례 짓밟았다.)

민주당은 당내 개혁파 정치인들을 통해 피지배 계급 운동의 지도자 일부를 자기 당에 수혈해 왔다. 윤미향 의원도 지난 2020년 총선 직전에 더불어시민당(민주당의 비례대표 전용 선거 연합 정당) 우희종 공동대표에 의해 영입됐다.

최근에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최초로 공론화한 ‘추적단불꽃’ 활동가 박지현 씨가 권인숙 의원의 제안을 받아 이재명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이 됐다.(전두환 정권의 성고문 사건 피해자이기도 했던 권인숙 의원도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지예 씨는 국민의힘 윤석열 캠프에 참여했다가(또는 윤석열에 의해 영입됐다가) 당내 반발 때문에 밀려났다.

윤미향 의원은 위안부 운동 초창기부터 그 운동에 중심적으로 참여했고 지금도 그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물론 윤미향 의원이 위안부 운동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대표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노동자 연대〉가 비판적으로 다뤘던 점이기도 하다.

ⓒ출처 윤미향 의원실

그러나 김샘 씨가 시사하듯이, 윤미향 의원이 “지배계급 정당의 일원”이 되는 순간 더는 운동과 아무 관련이 없게 됐다고 봐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정의기억연대·진보당·한국진보연대 등이 그의 제명을 반대하고 나서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김샘 씨는 윤미향 의원이 “운동을 통제할 수 있는 구실”을 할 수 없게 돼서 민주당이 용도 폐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지만, 이 단체들의 윤 의원 방어 행동은 김샘 씨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방증한다.(“운동 통제”라는 단어가 세게 느껴지는데, 운동과의 밀접한 연관성과 영향력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렇듯 윤미향 의원이 여전히 위안부 운동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윤미향 의원과 박덕흠·이상직을 구별했던 것이다. 박덕흠·이상직은 실제로 자본가 계급의 일원이고, 그들이 저지른 비리는 수십 년 동안 지겹게 봐 온 구조적 비리였다.

물론 우리는 피지배 계급 운동의 지도자들이 “지배계급 정당”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는 것이 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일관되게 지적해 왔다. 그 지도자들이 운동의 압력을 민주당에 전달해 상황을 개선하기보다 민주당이 대변하는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운동에 관철시키는 측면이 더 실질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운동을 체제 내로 순치시키는 데 일조했다.

마녀사냥

필자는 물론이고 윤미향·정의연 사건을 주로 다룬 김승주 기자(나 김샘 씨가 언급한 김문성 기자)도 회계 부정 의혹 사건을 마녀사냥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운동은 마녀사냥에서 흔히 사냥감이 되는 힘없는 이견자나 기성 체제 반대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히 국민적 지지를 받은 운동이었다. 어떤 점에서는 (일부 기업주들까지 포함하는)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는 게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마녀사냥 대상자는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을 반대하다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청주 평화 활동가들이다. 안타깝게도, 이 활동가들은 진보당으로부터도 방어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마녀사냥이 아닌 경우에는 사회주의자들이 방어해서는 안 될까?

가령, 혁명이 전개되던 1917년 9월 초 러시아에서 총사령관 코르닐로프 장군이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케렌스키 임시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볼셰비키는 케렌스키 임시정부를 (군사적으로) 방어했다.

케렌스키가 마녀사냥 당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케렌스키는 레닌을 독일 첩자로 몰아 볼셰비키를 불법화했다. 그럼에도 코르닐로프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혁명이 패배해 러시아가 피바다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볼셰비키는 동궁(임시정부 청사)을 군사적으로 방어했다.

2004년 3월 우파 정당들인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이 노무현을 국회에서 탄핵하자, 우리는 노무현을 비판적으로 방어했다. 노무현이 마녀사냥을 당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봤기 때문이다(선출된 대통령을 일부 국회의원들이 대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거하는 행위).

게다가 민주당이 윤 의원 제명을 시도하면서 2020년 회계 부정 의혹 논란이 일던 것에서 상황이 달라졌는데, 민주적 기본권인 무죄 추정의 원칙조차 무시하는 민주당의 징계 시도에 초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

김샘 씨 지적대로, 윤미향 의원이 사상 탄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쟁점은 회계 문제였다. 우파 언론들이 온갖 회계 부정 보도들을 쏟아 냈다. 그러나 우리는 제기된 의혹들을 말 그대로 의혹 수준에서 신중하게 접근했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증거를 요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승주 기자도 회계 부정 “의혹”, “혐의”라고 조심스럽게 서술했다.

김승주 기자가 윤미향 의원 측의 부실하고 불투명한 회계 처리를 두고 곧장 부패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덧붙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 않은 말에서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생겨나곤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김승주 기자가 해당 기사에서 “고의적으로” “횡령을 했던 측면”을 비판했다고 김샘 씨가 언급한 것은 김샘 씨 본인의 자의적 해석이 가미된 것이다. 김승주 기자가 하지 않은 말을 자기 논거로 사용하는 것은 건설적인 토론을 위해서 피해야 한다.

김문성 기자의 주장을 언급한 것도 맥락에서 떼어 낸 것이다. 2020년 5월 이 문제가 터지고 한 달여 뒤 6월에 문재인이 처음 입을 열었는데, 위안부 운동 대의 손상 시도 반대, 시민운동 기부금이나 정부 보조금 투명 관리 같은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했다고 김문성 기자가 꼬집은 것이다.

그러므로 김문성 기자가 마치 문재인이 윤미향 징계 같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비판한 것처럼 시사해서는 안 된다.

필자나 김승주 기자가 회계 부정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것은, 사회주의 신문이 증거도 없이 섣부르게 단정했다가 오보를 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진실은 사회주의 신문의 생명이다.

그런데 처음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회계 부실·부정과 관련해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강제력을 보유한 기관은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수사기관들밖에 없었다. 우리를 포함해 어떤 운동 단체들도 수사 단계에서 그런 증거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런데 막상 검찰은 우파 언론 등이 제기한 각종 의혹들 중 다수는 증거불충분 등으로 불기소 처분하고 작은 일부만을 기소했다. 검찰은 회계 증빙 자료가 없는 지출을 개인 소비(횡령)로 봤는데, 이조차 현재 재판에서 첨예한 쟁점이 돼 있다.

이렇게 간단하지 않은 상황에서 김샘 씨처럼 부르주아 법정의 판결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요즘 좌파 진영의 나쁜 세태 중 하나가 (특히 성 관련 문제에서) ‘혐의만으로 유죄’라며 무죄 추정의 원칙을 간단히 무시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심지어 배척까지 해 운동의 연대 구축을 어렵게 만드는 것인데,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정리하면, 윤미향 의원의 정치적 약점을 비판하는 것이 징계를 받아도 좋다는 뜻은 아니고, 반대로 징계를 반대하면 윤 의원을 정치적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민주당의 윤미향 의원 국회의원 제명 시도에 반대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위안부 운동을 효과적인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지 정치적 교훈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