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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정의연 사건은 마녀사냥으로 볼 수 없다

윤미향·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부정 의혹 문제가 속시원하게 해명되지 않고 있다. 관련 당사자들이 책임성 있게 해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모든 일이 그저 우파의 ‘마녀사냥’에서 비롯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마녀사냥에서는 힘 없는 이견자나 기성 체제 반대자들이 책임 전가를 위한 사냥감이 된다. 가령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같은 친북 좌파,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몰린 ‘이단’ 종파 신천지, (서구의 경우) 무슬림이나 로마인(집시)처럼 차별과 천대를 받는 인종 집단 등이 ‘마녀’로 몰린다. 특히, 현대의 마녀사냥에는 공공의 안녕과 복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수반된다.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가히 전 국민적 대의를 표방하며 가히 전 국민적 지지를 받아 온 개인과 단체다. 특히, 윤미향 의원은 집권당 국회의원이고, 정의연은 (불필요하리만큼) 많은 금전적 지원을 국민들과 특히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받아 왔다. 게다가 최초 문제 제기자가 활동가인 위안부 할머니(이용수)이고, 할머니의 문제 제기는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의 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혹자는 위안부 운동이 한미일 삼각 동맹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우파의 마녀사냥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윤 의원을 영입한 문재인 정부도 한미일 삼각 동맹의 일부로서 그 동맹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윤미향 의원은 그 당의 위선적인 ‘위안부’ 정책을 전혀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그 당의 의원이 됐는데도 왜 그와 정의연이 한미일 동맹의 ‘걸림돌’이라는 말인가.

말이 안 되는데도 ‘마녀사냥’ 프레임을 내세우면 민주당에 유용한 점이 있다. 부정 의혹의 진실 규명 문제를 경쟁 정치세력 간 갈등 문제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그래서 편가르기와 줄세우기에 순응하지 않은 집단은 있으나마나 한 비존재 또는 무존재로 취급된다.

범민주당계만 그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민중당도 윤미향·정의연 부정 의혹 사건의 본질을 “마녀사냥”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진보진영은 우선적으로 윤미향에 대한 마녀사냥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자들은 윤미향·정의연을 변호하는 김에 진보진영의 과거 부정 문제까지 끄집어내 정치적 복권을 꾀한다.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 부정, 노회찬 전 의원의 금품 수수, 윤미향 의원 부정 의혹을 모두 우파 또는 국가의 모함과 탄압에서 비롯한 억울한 마녀사냥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비도덕적인 부정·비리 행위가 없었을 때나 부당함, 억울함, 마녀사냥 당하고 있음을 주장할 수 있다. 적어도 노회찬 전 의원은 (명예롭게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왼쪽부터) 2012년 5월 통합진보당 중앙위 폭력 사태, 노회찬 전 의원, 윤미향 의원

세 가지 사건

사실, 진보진영 일각의 부정·비리 문제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년만 봐도 부정부패를 권력자들의 전유물로 이해해 온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들이 몇 건 있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노 전 의원, 윤미향 의원 관련 사건들을 모두 한 묶음으로 묶어서 똑같이 ‘억울한’ 사건으로 취급하는 것은 서로 구별되는 문제들을 극도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그리 되면 진보계의 전진을 위한 아무런 정치적 교훈도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다.

(1)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그 당에서 진행된 비례후보 경선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던 사건이다. 경선 부정에는 참여계 후보 측과 당시 ‘당권파’로 불린 측(현재 민중당의 주축)이 각각 연루돼 있었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 해결 가능한 사안이었음에도 ‘당권파’ 측이 경선 부정 사실 자체를 부인하다 (며칠 만에 참여계만이 부정을 저질렀다고 입장을 변경함) 당 내분이 격화됐고 통진당이 공당이라는 법적 지위를 이유로 국가(검찰)가 개입했다. 물론 검찰의 개입 목적은 진실 규명이 아니라 진보정당 탄압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통합진보당 내부 선거 부정과 국가 탄압 문제가 결합돼 있었다. 국가 탄압이 있었다고 해서 당내 선거 부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 탄압으로 후자의 진정한 해결이 왜곡됐고 저지당했다.

(2) 노회찬 전 의원의 사건은 당시 검찰의 표적 수사가 낳은 비극이었다. ‘드루킹’(본명 김동원)이 문재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댓글과 추천 수 등을 조작하다 자신의 인사 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점부터 여당에 ‘불리한’ 방향으로 정치 댓글을 조작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특검팀이,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2016년 3월) 혐의로 수사 방향을 바꾸자 노 전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 전 의원은 금품 수수 사실(청탁과는 관련 없다고 유서에서 밝힘)을 부끄러워하며 투신 자살했다. 검찰의 표적 수사는 정치인들이 여야를 불문하고 반발할 정도로 자주 있는데, 이를 두고 죄다 국가 탄압이나 마녀사냥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물론 일부는 분명 그럴 것이다.)

(3) 윤미향·정의연 부정 의혹 사건의 애초 발단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 내부 그것도 가장 핵심적인 내부에서 시작됐다. 우파는 이 틈을 비집고 위선적인 숟가락 얹기를 할 뿐이다. 따라서 위안부 운동의 성공에 관심도 없고 오히려 위안부 지우기에 골똘했던 우파의 위선을 한편으로 치워 놓으면, 이 사건의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운동이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고 재정을 의존하면서 정치적 자주성을 잃어갔다.

둘째, 윤미향 의원이 위안부 운동을 정치적으로 모호한 민주당의 의원이 되는 사다리로 이용하려다 운동 내부의 비판에 직면했다. 그동안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정대협) 시절부터 이 운동의 리더들은 민주당의 정치적 혈액은행 구실을 해 왔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국가의 운동 탄압은커녕 오히려 (민주당이 집권한) 국가를 이용하려던 정치 전략의 거품이 터진 것이다.

여/야 진영논리의 문제점

이 사건들에서는 공교롭게도 모두 안타까운 망자들이 생겨났다. 이재용처럼 그보다 더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떵떵거리며 권세를 누리는 자들도 허다한 세상에서 이들의 죽음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망자의 존재가 운동이 추구해야 할 진실을 대변하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세 사건을 성격이 동일한 ‘마녀사냥’ 사건으로 만드는 것은 잘못됐다. 각각의 사건들이 발생한 계급적 토대가 다르다. 앞의 두 사건은 노동자 정당에서 벌어진 것이고, 나머지 한 사건은 부르주아 여당 의원과 관련돼 있다. 구별해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분리시키고 적대하게 만들어야 할, 계급 기반이 다른 정치세력들의 사건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진영논리로 귀결된다. 즉, 계급을 초월한 ‘민주 대 반민주’ 그리고 ‘애국 대 매국’ 식 포퓰리즘 진영논리이다.

물론 어떤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집단적 투쟁을 벌일 때 진영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진영’은 “정치적·사회적·경제적으로 구분된 서로 대립되는 세력의 어느 한쪽”을 뜻한다.특별히 윤미향·정의연 사건의 경우 반제국주의 진영을 강화하려고 분투해야 한다.

그러나 윤미향·정의연 사건의 경우 현재 지배적인 진영논리는 반제국주의 세력이기는커녕 친제국주의 세력의 일부인 민주당과 한국 정부를 아방(우리 편)으로 착각하고 있다. 심지어 윤미향·정의연은 대기업(현대중공업)과 부자 장로들의 당회가 지배하는 교회(명성교회), 똑같이 부패한 불교 종교단체(조계종) 등의 재정 지원을 받았다. 또한 미국의 주요 제국주의 세력인 미국 민주당과 그들이 통제했던 행정부도 포함했다.

반면, 일본의 좌파/노동운동 세력을 국제연대로 동원하는 것은 이상주의나 망상처럼 치부됐다. 한국 노동계급(적어도 그 선진 부분)을 반제국주의적 대의로 동원하는 것도 사실상 마찬가지로 치부됐다.

제국주의 진영 대 반제국주의 진영의 진영논리가 작용됐었어야 했다. 그러나 윤미향·정의연은 민족, 여성, (자유주의적) 민주라는 범주를 놓고 진영을 갈랐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이런 류의 진영논리가 특히 열성적인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물신숭배의 대상이 된 듯하다. 문제는 진보진영의 대표 주자들(민주노총 지도부와 진보정당 지도부들)도 이런 프레임의 영향을 받거나 스스로 진영논리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정의당 지도부는 지난해 조국 사태 때 덴 경험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지만 그 당의 전체적 정치 노선이 민주당으로부터 충분히 독립적이라고 말할 정도는 못 되는 듯하다.)

이런 식으로 진보진영이 자체 내의 부정 의혹 앞에서 우물쭈물하거나 ‘제 식구 감싸기’를 하면 진보 염원 대중의 신뢰를 잃게 된다. 시민운동 전체가 도매금으로 불신받을 수 있다.

더구나 이번에는 (조국 논란과 마찬가지로) 여권 인사가 연루된 부정 의혹이다. 진보계가 민주당과 자신을 준별하지 않은 탓에 요즘엔 민주당까지 같은 ‘진보진영’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진보진영이 민주당을 날카롭게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때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대중이 환멸감을 느낄 때 우파가 이를 이용해 성장한다. 결국 우파에 맞서 계급을 초월해 중도인 민주당과 동맹을 하자는 진영논리가 오히려 우파가 성장할 조건이 되는 것이다.

개혁주의

위에서 언급한 사건들에는 서로 구별되는 특징들뿐 아니라 그 모두를 공통으로 관통하는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가 있다. 개혁주의 문제가 그것이다.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사건은 자민통 계열이 원내 진출을 위해 선거중심주의로 조급하게 이동하던 과정에서 벌어졌다.

노회찬 전 의원의 사건은 사회민주주의 정치인이 총선을 앞두고 선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친민주당계 정치 브로커의 돈을 받았다가 검찰의 표적이 된 사건이다.(비록 드루킹이 2018년 3월부터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정치적 이반을 했지만 말이다.)

개혁주의가 시스템의 점진적 개혁을 지향하면서 기존 질서를 인정하고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체제의 부패에도 부지불식간에 둔감해지는 과정이 부정부패 문제를 예방하지 못하고 점점 자신을 불미스러운 일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이런 사례를 남아공 ANC 정부와 브라질 룰라 정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사회를 정의롭고 평등하게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들을 올바로 평가하고 제대로 된 정치적 교훈을 끌어내야 한다. 개혁주의 정치는 개혁을 위해 투쟁하지만, 체제 내에서 개혁을 지향하는 자체의 전략 때문에 때때로 체제의 부패가 그들을 덮친다. 따라서 개혁주의를 대체할 대안과 이를 노동계급 속에서 구현할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조직이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