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최대 물가 상승, 저항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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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퍼센트로 10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실생활과 관련이 큰 품목을 대상으로 한 생활물가지수는 5퍼센트나 올랐다.
특히 외식비는 6.6퍼센트 인상돼 24년 만에 최대로 치솟았다. 한국소비자원 조사를 보면, 서울에서 냉면, 비빔밥은 1만 원에 육박하고,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짜장면, 칼국수, 김밥, 치킨, 라면, 떡볶이 등도 8~9퍼센트가량 올랐다.
심지어 대학 학생식당의 가격도 올랐다. 올해 1월부터 서울대학교의 백반 메뉴가 1000원 올랐고 국민대학교에서는 대부분의 메뉴 가격이 500원가량 인상돼 4000~5000원대에 이른다. 학생식당 가려다가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는 학생들도 있다.
물가 상승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큰 부담이 된다. 더는 줄이기 힘든 식비 등이 지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65세 이상 노인은 60퍼센트가량이 빈곤층인데, 올해 기초노령연금은 고작 7500원(2.5퍼센트) 올랐다. 장애인연금도 2.5퍼센트 올랐다. 물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실질 소득이 삭감된 셈이다.
끼니를 때우려고 무료급식소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료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푸드뱅크의 이용자도 늘었지만, 오르는 물가 때문에 진열되는 상품들은 제한되고 있다.
3월에 석유류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1퍼센트 올랐다. 이 때문에 리터당 가격이 몇십 원이라도 싼 주유소에는 차량들이 길게 늘어선 관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화물 노동자들은 유가 폭등으로 매달 기름값이 100만~200만 원 이상 늘어나 소득이 반토막이 났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전쟁과 이윤 논리
지금의 물가 상승세는 쉽사리 꺾이지 않을 듯하다. 최근의 물가 상승을 낳은 세계적 원자재와 중간재 등의 공급 차질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며 상하이를 비롯해 40여 도시가 전면 또는 부분 봉쇄됐다. 자동차 공장이 멈추고, 반도체·전자 공장 등도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물동량이 세계 최대인 상하이항이 차질을 빚으며 다소 진정되는 듯 보였던 물류대란이 다시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식량과 원자재의 공급 차질도 늘어났다. 무엇보다 서방의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처로 유가가 더욱 치솟고 있다. 인상세가 잠시 주춤하는 듯하던 유가는 최근 유럽연합이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 금지를 추진한다는 소식과 함께 다시 오르고 있다.
기업들의 이윤 추구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석유와 곡물, 원자재 시장에는 온갖 파생금융상품들이 발달해 있다.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되자 투기 수요가 몰려 가격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물가 상승 속에서 투기꾼들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소비재 기업들은 이윤을 지키려고 상품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원자재와 중간재의 비용 상승 부담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고통 키우는 금리 인상과 긴축
윤석열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민의 생활고를 덜어 줄 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최근 유류세 인하 폭을 기존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늘렸다. 필요한 일이지만 이로 인한 추가 인하폭은 리터당 휘발유 83원, 경유 58원에 불과하다. 지난 1년간 기름값이 리터당 400원 넘게 오른 것에 비춰 보면 지원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또 정부는 화물 노동자들을 위해 경유 유가연동보조금을 한시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했다. 경유가 기준 가격(리터당 1850원)을 넘으면 초과분의 절반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물연대의 추산을 보면, 이로 인한 지급액은 월 2만~9만 원 수준이다. 화물 노동자들이 경유 가격 인상으로 매달 수백만 원씩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턱없이 부족한 지원이다.
오히려 정부는 공공요금도 인상하며 부담을 키우고 있다. 4월에 전기와 가스 요금을 인상한 데 이어 전기는 10월, 가스는 5, 7, 10월에 추가로 인상할 계획이다. 그러면 올해 전기 요금은 10퍼센트, 가스 요금은 16퍼센트 오르게 된다. 윤석열은 대선 기간에 4월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백지화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번 인상을 앞두고는 현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며 사실상 인상을 용인했다.
물가가 인상되는 상황에서 통화·재정 긴축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이를 통해 수요를 억제해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연준이 올해 여러 차례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고, 한국은행도 지난 1년간 금리를 네 차례나 올렸다.
미국 바이든은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3.5퍼센트 줄이며 긴축으로 돌아섰다. 한국에서도 윤석열이 약속했던 50조 원 추경 규모를 줄여야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우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과 재정 긴축은 물가 인상으로 고통받는 노동자·서민에게 더 큰 부담을 줄 것이다. 집값 상승으로 주택이나 전세 자금 마련을 위해 수억 원씩 대출을 한 사람들이 많은데, 금리가 1퍼센트만 올라도 가구당 이자 부담이 한 해 수백만 원씩 늘어난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로 치솟아 있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으로 삶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재정 긴축을 추진하면 가뜩이나 부족한 복지는 더욱 삭감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줄 것이다.
또 정부는 공무원 임금을 겨우 1.4퍼센트만 올려 실질임금이 크게 삭감됐는데, 정부의 긴축 기조는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임금 억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
물가 인상으로 인한 노동자·서민의 생활고를 해결하려면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을 중단해야 한다. 기업들의 생필품 가격 인상을 규제하고 필요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으로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시장 원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위해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지키려면, 임금이 올라야 한다. 올해 1월 설 명절 보너스를 제외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률은 4퍼센트가량이었는데, 물가 인상을 고려하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제자리이거나 감소한 것이다. 임금 인상 투쟁이 필요한 이유다.
윤석열은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개악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률도 낮추려 한다. 정부가 노동자들을 부문별로 이간질하며 공격하려는 상황에서 전체 계급적인 관점에서 단결과 연대 투쟁의 전진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지난해 경기 회복 속에 대기업들은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지난해 500대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200조 원이 훌쩍 넘었을 것이라고 한다. 금리 인상으로 시중 은행들은 사상 최대 수익을 거두고 있다.
물가 상승의 부담은 노동자·서민이 아니라 이런 기업들이 져야 한다.
물가 인상이 신흥국의 저항을 촉발하다
물가 인상으로 고통이 커지자 세계 곳곳에서 저항이 터져 나오고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심각한 경제난 속에 연일 부패한 대통령 퇴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스리랑카는 지난달 소비자 물가가 18.7퍼센트나 올랐고, 음식과 의약품과 같은 필수품의 물가는 30퍼센트나 치솟았다.
파키스탄에서는 이미 4월 10일에 총리가 퇴진했다. 심각한 경제난과 물가 상승으로 커진 대중적 불만이 배경이 됐다.
페루에서는 연료와 비료, 식품가격 등이 급등하자 트럭 기사들과 농민들이 지난달 말부터 고속도로 봉쇄 시위를 벌였고, 정부가 통행금지령을 내리며 탄압하자 정권 퇴진 요구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카자흐스탄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처럼 물가 상승과 경제난이 계속된다면 더욱 많은 나라들에서 저항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물가가 상승하는 시기에 저항이 크게 벌어지는 일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2011년 물가가 오르며 식료품 가격이 치솟자 아랍의 여러 나라에서 연쇄적으로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아랍혁명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