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유류세 인하에 부정적. 금리 인상 반대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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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의 생활고에 왜 이리 무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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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비(생계비) 고통이 심각하다. 특히, 유가가 크게 치솟아 부담이 크게 늘었다. 기름값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대폭 인하해 서민층 사람들의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는 대중적 바람이 크다.
그런데 노동자와 약자를 대변한다는 정의당이 우려스럽게도 유류세 인하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내고 있다.
심상정 의원은 유류세 인하가 “탄소배출을 늘리는 나쁜 방안”이라며 반대했다.
장혜영 의원도 유류세 인하가 탄소 중립 정책에 역행하고, 저소득 가구보다 고소득 가구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유로 반대했다.(진보당도 비슷한 논리로 유류세 인하에 부정적이다.) 유류세를 내릴 것이 아니라 여객·화물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유류세가 간접세로서 부과 단계에서 이미 소득 역진성*이 있음을 무시하는 단견이다. 그래서 기름 소비가 늘어날수록 유류세 감면 액수는 커지지만, 소득 대비 유류세 감면액 비중은 가난할수록 더 크다.
그래서 가격 인상을 통해 수요를 줄인다는 시장 방식 수요 조절책의 핵심 문제는 가난할수록 비용 부담이 커지고, 부자는 소비를 지속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징벌적 규제다.
물론 소수 빈곤층에게 보조금을 주는 보완책이 있겠지만, 여전히 노동계급 대다수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방식은 기후 문제에서도 정의에 역행하는 방안이다.
기후 위기의 책임은 대기업 소유자들과 정치 권력자들에게 있다.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화석연료와 핵발전에 의존해 에너지를 공급하도록 하고, 거기서 이윤과 권력을 누린 것은 그들이지, 노동자·서민들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고작 기업 11곳(철강, 정유, 석유화학, 반도체 등)의 배출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64퍼센트를 차지한다. 그 결과는 막대한 이윤이었다. 정부는 “탄소 중립” 운운하면서도 기업 이윤을 우선하며 화석연료 기반 생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기름값이 치솟자 미국과 서유럽 정부들도 기업들에게 석유·가스 생산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을 보면, 그들도 기후 위기를 막는 것보다 자국 기업의 이윤 보호를 더 신경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노동계급이 단결해 싸울 수 있는 요구를 내놔야
노동자·서민들에게 고유가로 말미암은 부담을 떠넘기는 방안은 그 자체로 정의롭지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 위기의 고통 전가에 맞서는 운동을 대중적으로 만들 기회를 차단한다.
노동계급은 기업주들의 이윤 논리(그리고 이와 연결된 정치 권력자들)에 도전할 잠재력이 있다. 그런 잠재력은 인간의 필요보다 이윤을 우선하는(그래서 기후 위기와 불평등을 초래하는) 체제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기름값 인상을 통해 노동계급의 소비를 줄이자는 주장은 주역이 돼야 할 노동자들을 이반시켜 변화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유류세 인하 운동이 노동계급의 삶을 지키는 운동인 동시에 기후 운동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은 2018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노란조끼 운동이 잘 보여 줬다.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부유세는 인하하면서 간접세인 유류세는 인상했고, 부자들을 대변하며 빈곤과 불평등, 저임금을 심화시킬 정책들을 추진했다.
이에 맞서 노란조끼 운동은 수십만 명이 도로 봉쇄 시위를 벌이며 전투적으로 항의했다. 수주간의 투쟁 끝에 마크롱 정부는 결국 유류세 인상을 철회했고, 연금 개악도 미뤄야 했다.
노란조끼 시위 참가자들은 옳게도 서민 세금 올린다고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위대 내에서는 “부자들이 생태적 전환에 필요한 돈을 내게 하라”는 구호가 나왔다.
화석연료에 중독된 지배자들을 물러서게 하려면 노란조끼 운동 같은 대중적 투쟁을 전진시켜야 한다. 장혜영 의원은 유류세 인하로 고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보는 것을 걱정했지만, 다수인 노동계급의 생활과 저항을 고민한다면 간접세인 유류세는 인하하고, 부자·기업주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자고 촉구하는 대중 행동을 호소해야 할 것이다.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치솟는 금리 때문에 많은 노동자·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정치인들은 대부분 이 문제를 나몰라라 한다. 정의당 정치인들조차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진보당도 정부의 기준 금리 인상에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시중은행들의 금리 인상에 대해서는 과도하다며 비판했다.)
심상정 의원은 대선 후보 시절, 물가를 잡고 거품을 관리하려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대신 다중채무자·자영업자·소상공인 등에 대한 구제는 늘려야 한다고 했다. 최근 장혜영 의원도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자영업자 지원과 부채 관리 강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치솟는 금리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은 단지 다중채무자나 소상공인만이 아니다. 집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전세자금대출, 주택담보대출로 수억 원씩 빌린 노동자와 서민이 많다. 게다가 생활비를 보충하려고 장기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도 많다.
금리가 3퍼센트포인트 오르면 3억 원을 빌린 사람들은 연간 1000만 원 가까운 이자를 더 내야 한다.
이처럼 금리 인상은 노동자·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그들의 삶을 때로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인데도 정의당은 이런 사람들의 고통에 너무나 둔감하다.
정의당 정치인들이 이런 둔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노동계급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보다 부채 위기로 위태로운 한국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일을 우선시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장기침체의 대가를 노동계급 대중에게 전가하며 버티고 있다. 금리 인상은 많은 돈을 빌려준 자들과 부자들을 위한 위기 대처법이다. 그러므로 안정적으로 위기를 관리할 역량(기성 체제에 대한 책임성)을 보여야 한다는 압력에 순응할수록 노동계급·서민층의 고통 해결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최근 정의당의 위기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계급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에서 정의당 정치인들이 취하는 태도를 보면, 위기의 원인을 먼 데서 찾을 일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