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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경색 위기에도 기준금리 올리는 한국은행의 딜레마

11월 24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퍼센트포인트 인상했다.

이로써 올해 1월 1퍼센트에 머물던 기준금리가 1년도 채 안 돼 3.25퍼센트로 급등했다. 이는 2011년 6월 이후 11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11월 초 미국의 기준금리가 0.75퍼센트포인트 올라 이번에 한국은행도 0.5퍼센트포인트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꽤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0.25퍼센트포인트 인상을 결정했다.

한국은행은 “단기금융시장이 위축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상 폭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발 위기로 촉발된 한국 금융시장의 자금 경색 문제가 심화되자 기준금리 인상 폭을 낮춘 것이다.

금리 인상으로 한국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지만, 앞으로도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을 계속 받을 것이다. 이미 미국 기준금리가 4퍼센트로 한국보다 높은데다가 내년 상반기까지 미국 기준금리가 5퍼센트를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기 때문이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더 높은 수익을 따라 한국서 이탈해,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외환위기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 때문에 금융 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려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이미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게 뻔하기 때문에 한국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 하락과 미분양 주택 급증으로 건설사들과 건설 사업에 대출을 많이 해 준 제2금융권에서 부도 위기가 급격하게 높아졌다.

최근에는 5대 대기업집단 중 하나인 롯데그룹이 자금난으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금융시장에 퍼졌다.

부동산 PF 부실로 위기에 빠진 롯데건설은 롯데그룹 다른 계열사들로부터 한 달여 만에 1조 5000억 원 가까운 자금을 빌렸다. 그러자 롯데건설에 돈을 빌려준 다른 계열사들도 자금난을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롯데건설 같은 대기업 계열 건설사조차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구하지 못해 계열사에 손을 벌릴 정도로 자금 경색 위기가 심각해지자, 중소 건설사들과 금융회사들이 연쇄 부도에 빠질 것이라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한국은행이 금융시장에 50조 원 이상의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금융 불안정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 대책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까닭은 정부나 한국은행이 금융시장에 직접 돈을 투입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은 상대적으로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는 시중 은행들을 동원해 회사채나 부동산 PF 채권 등을 매입하고 기업 대출을 늘려 주는 방안이다. 정부의 압박으로 5대 시중 은행들은 연말까지 95조 원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은행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한 기업들은 신용도가 낮은 기업인데 은행들이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에만 대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 은행들도 무작정 대출을 늘릴 수 없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정부는 자금이 은행들로 쏠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은행 채권 발행이나 예금 금리 인상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결국 정부가 은행에게 돈을 투입하라고 촉구하는 동시에 은행의 돈줄은 죄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대출을 늘리면 은행 자체의 안정성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와 한국은행은 해외 금융시장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금융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꺼리고 있다. 금융 위기가 외환위기나 정부 재정 위기로 확대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계속 미봉책을 내놓으며 시간만 끌려 하기 때문에 금융 시스템 전반을 마비시키는 대형 위기가 터질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좌파와 노동운동은 서민층 생활고 문제를 우선시해야

한편, 금리가 치솟으면서 고금리에 허리가 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 아파트를 살 때 4억 원을 대출받은 사람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은 월 200만 원 정도였는데, 이제 월 268만 원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11월 3퍼센트 수준이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이제 6퍼센트를 넘었기 때문이다.

내년까지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진다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9퍼센트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월급의 대부분을 은행 빚을 갚는 데 써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올해 6월 월 소득의 40퍼센트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취약 차주 비중은 전체 대출자의 18퍼센트나 됐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금리가 1퍼센트포인트 상승하면 취약 차주 비중은 20.2퍼센트로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서민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대출 금리를 인하하고 부채를 탕감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당, 진보당 등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보고 있다. 가계 대출이 한국 GDP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부채 축소, 거품 관리 등을 해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대신 주로 다중채무자·자영업자·소상공인 등에 대한 구제는 늘려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자영업자 지원과 부채 관리 강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근 진보당은 ‘가계부채 119’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주로 부채 상담을 해 주겠다는 것이지 부채 탕감 운동 건설에 관한 것은 아니다.

물론 취약한 다중채무자와 소상공인 등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치솟는 금리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은 단지 이들뿐이 아니다. 집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전세자금대출, 주택담보대출로 수억 원씩 빌린 서민이 많다. 게다가 생활비를 보충하려고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도 많다.

정의당, 진보당 같은 좌파 정당들이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의 필요보다 한국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을 우선에 두면, 서민층의 이해관계를 일관되게 대변하기 어렵다.

대출 금리 인하와 부채 탕감 같은 요구를 내놓고 생계비 위기와 고통 전가 공세에 맞서는 광범한 대중 저항이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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