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일자리 공격, 부채 위기로 이어질 파월의 금리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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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물가를 잡겠다며 또다시 기준금리를 0.75퍼센트포인트 인상했다.
올해 초 0.25퍼센트였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3.25퍼센트로 치솟았다. 미국 연준은 올 연말에 금리를 4.4퍼센트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11월과 12월에도 0.5~0.75퍼센트포인트씩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상승해서 다른 나라들의 통화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 지난 1년 새 달러 대비 일본 엔과 유럽 유로는 20퍼센트가량, 중국 위안은 13퍼센트, 한국 원은 16퍼센트가량 추락했다.(이번 미국 금리 인상 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며 13년 6개월 만에 1400원을 돌파했다.)
신흥국의 환율 상승은 더욱 심하다. 1년 전보다 아르헨티나 패소는 30퍼센트, 튀르키예(터키) 리라는 55퍼센트가량 가치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국가가 통화 가치 방어를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물론 중국과 일본은 침체한 국내 경기 부양을 위해 여전히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도 금리를 올리기로 했고, 신흥국들은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는 기준금리를 무려 75퍼센트로 올렸다. 브라질도 지난해 2퍼센트였던 금리가 최근에는 13퍼센트에 이른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전 세계 평범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기준금리가 1퍼센트포인트 오르면 부채가 있는 가구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는 한 해에 평균 200만 원 이상 증가한다. 이미 한국의 가구 중 17퍼센트가 적자 가구이고, 이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다. 급속한 금리 인상으로 삶이 벼랑 끝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금리 인상으로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부채 위기가 터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상당하다.
볼커 충격
지금과 같은 금리 인상은 1979~1987년 미국 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가 금리를 급격히 올렸던 것과 비유된다.
1970~1978년 연 평균 물가상승률이 9퍼센트에 달했는데, 1979년에 이란 혁명이 터지자 유가 공급에 차질이 생겨 물가상승률이 15퍼센트로 치솟았다. 1979년 8월에 취임한 볼커는 무지막지하게 금리를 올려 1981년에는 기준금리가 무려 20퍼센트까지 올랐다.
이 금리 인상으로 경제는 침체했고, 수많은 회사가 파산으로 내몰렸다. 실업률은 5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치솟았고, 미국인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기 침체로 물가상승률은 낮아졌지만 노동계급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볼커의 금리 인상은 신자유주의 공격의 신호탄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1980년 레이건이 집권한 후 볼커의 금리 인상은 더욱 가속화했고, 레이건은 파업 중이던 항공관제사 1만 1000명을 일시에 해고하며 기업주들의 이윤을 뒷받침했다.
볼커의 금리 인상이 주로 금융 자본가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실상 그렇지는 않다. 일부 자본가들이 피해를 봤지만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며 이윤 몫을 늘리는 것은 단지 금융 자본가만이 아닌 다수 자본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또 금리 인상으로 달러의 가치를 공고히 한 것은 전 세계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을 통해 노리는 것도 볼커와 비슷하다.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은 이번 금리 인상 후에 “경제 연착륙 가능성이 줄었다”면서도 “인플레이션 2퍼센트 목표치 달성 때까지는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금리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지난 8월 파월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는 것이 금리 인상의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도 노골적으로 말했다. “연준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추세 대비 낮은 성장률을 일정 기간 유지해 노동시장의 균형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물가 상승이 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물가 상승 때문에 올해 6월 미국 노동자들의 시간당 실질임금은 지난해보다 3.6퍼센트 하락했다.(미국 노동통계국)
올해 8월 미국 실업률이 3.7퍼센트로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근거로 연준은 물가 상승을 잡으려면 실업률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본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도 실업률을 현재보다 0.5퍼센트포인트 혹은 더 큰 폭으로 상승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실업률이 낮은 이유는 코로나19 이후 구직을 아예 단념한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활동참가율(15세 이상 인구 중 경제활동인구)은 62퍼센트로 아직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실업률을 높여서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주장은 냉혹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드러내는 말이다.
딜레마
1980년대 볼커 쇼크가 벌어지던 상황과 지금은 차이도 있다.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의 폭은 당시가 더 컸다. 반면 전 세계 부채 규모는 지금이 훨씬 더 크다.
이 점은 오늘날 권력자들에게 심각한 딜레마이다. 금리 상승이 심각한 부채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볼커가 금리를 인상한 이후에도 신흥국의 외환 위기는 연쇄적으로 터졌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당시 외환 위기는 이들 나라에 신자유주의 공격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높은 인플레이션과 급격한 환율 상승 속에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를 보면, 신흥국의 외환보유고 총액은 올해 1~6월 3790억 달러(509조 원) 줄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크게 감소하고 있다. 환율 상승은 달러 부채의 가치를 높이기 때문에 신흥국들이 연쇄적으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선진국 경제들도 취약하기 때문에 신흥국의 위기가 선진국으로 파급되며 체제 전반을 뒤흔들 가능성도 꽤 된다.
이 때문에 지배자들 내에서도 급격한 금리 인상에 대한 이견이 나온다. 예컨대 세계은행 총재는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내년에 “파괴적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며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와 같은 권력자들 간의 분열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가 처한 심각한 딜레마를 보여 준다. 또 노동계급의 광범한 저항이 변화를 만들어 낼 여지도 크다는 점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