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영국 정치 시스템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보리스 존슨의 총리직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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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의 영국 총리직 사임은 영국 정치 시스템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보리스 존슨은 2019년 12월 총선에서 보수당에 투표한 “1400만 유권자와의 약속” 운운하며 총리직을 부지하려 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총리는 하원의 과반수 지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 지지로 내각이 구성된다. 존슨은 신자유주의 시대 이래 내각의 반란으로 실각한 네 번째 총리가 됐다. 마거릿 대처, 토니 블레어, 존슨의 전임인 테리사 메이가 그런 사례다. 반면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총선에서 패배해 총리직을 잃은 자는 존 메이저,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 셋뿐이다.
이 시스템 덕에 영국에서 여당은 골칫거리가 된 지도자를 비교적 손쉽게 제거할 수 있다. 존슨은 정치적 판세를 거스르려 애썼지만, 판세는 존슨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보리스 존슨은 보수당을 파탄 내고 떠났다. 1990년 대처의 실각은 이후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물은 브렉시트 국민투표로까지 이어지는 유럽연합에 대한 끈덕진 집착을 낳았다. 이 집착 때문에 캐머런이 실각했고, 존슨이 기회를 잡았다. 존슨은 테리사 메이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조건을 두고] 유럽연합에 지나치게 타협적으로 구는 것을 이용해 메이를 밀어내고 총리가 됐다. 존슨은 보수당 우파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바라던 하드 브렉시트*를 이루기 위해 보수당 내 친(親)유럽연합파를 숙정했다.
이 때문에 보수당 상층부의 인재층이 얇아졌다. 지금 보수당 대표직에 도전하는 인사가 광대 무리들[뿐]인 이유의 하나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가 감세를 공약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이는 대처주의, 즉 보수당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정당이라는 착각이 지금도 보수당 의원들에게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존슨 때문에 보수당은 대처주의에서 상당히 멀어졌다. 부분적으로 이는 존슨이 이른바 “붉은 벽”을 겨냥한 선거 운동을 벌여 2019년 총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붉은 벽”은 전통적으로 노동당이 강세였던 잉글랜드 북부의 퇴락한 산업 지역을 일컫는 말로, 2016년 국민투표 당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이 지역 선거구에서 당선된 보수당 의원들은 예컨대 생계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들을 시행하라고 열성으로 로비해 왔다.
정부 지출
이번 생계비 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비상사태에 뒤이어 닥쳤다. 전 재무장관 리시 수낙은 경제 붕괴를 모면하려고 교과서적 대처주의 처방을 유예하고 정부 지출을 대폭 늘렸다. 이를 위한 자금은 영국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고 국채를 사들여 조달했다. 신자유주의 교리에 따르면 대죄를 범한 것이다.
수낙은 가장 최근에 존슨의 압박을 받아 지난 5월에 발표한 정책 패키지에서 이런 기조를 고수했다. 수낙은 에너지 가격 인상에 고통받는 극빈층 가구 구제에 100억 파운드[약 15조 6020억 원] 가까운 자금을 투입했는데, 이 돈은 석유·가스·전력 기업들에 초과이득세를 부과해 조달했다. “불평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수낙 장관은 엄청난 부를 부유층에서 빈곤층으로 재분배하고 있다.”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 폴 존슨의 논평이다.
이는 과장이지만, 보수당이 직면한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존슨 정부하에서 조세부담률*이 급격히 올랐다. 2026~2027년 영국의 조세부담률은 1940년대 후반 이래 최고치인 36.3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당 평의원들 대부분은 이를 싫어한다. 존슨은 감세를 약속해 이들의 환심을 사고 총리직을 부지하려 했다. 이것이 수낙의 사임을 촉발한 쟁점인 듯하다. 수낙은 세금 감면으로 인한 재정 손실을 국채로 메우는 것에 반대한다. 보수당 평의원들이 보기에 해법은 공공지출을 줄이고 “작은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감세를 두고 역경매*가 벌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논쟁이 현실과 아무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영국과 세계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 팬데믹, 전쟁, 식량·에너지 가격 상승 등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위기와 씨름하고 있다. 다음 위기가 무엇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현 상황에서는 더 크고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 머리가 텅 빈 보수당 평의원들이 바라는 것처럼 더 작고 취약한 국가가 아니라 말이다. 존슨의 뒤죽박죽 기회주의 때문에 영국 국가는 필요했던 방향으로 갔던 것이다.
보수당에게 행운인 것은, 점잖은 정당임을 증명하고 싶어서 안달하고 급진성은 아예 씨가 마른 블레어 일파가 지배하는 멍청한 야당 노동당이 보수당의 상대 정당이라는 것이다. 보수당은 존슨을 제거해 유권자들이 노동당에 투표할 가장 강력한 근거를 없애 버렸다. 인기 없는 지도자의 목을 쳐 쇄신을 도모하는 보수당의 전통이 보수당에게 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