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여왕 추모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한 영국 새 정부의 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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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은 보수당 새 총리 리즈 트러스에게 십중팔구 호재였을 것이다. 여론의 관심이 트러스에게서 영국 왕실 드라마로 쏠렸기 때문이다. 향후 몇 주 동안 왕실에 온갖 공치사를 늘어놓는 데서 트러스가 두각을 보일 것이라는 점도 그에게 득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트러스 정부가 상당한 어려움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트러스는 눈앞에 닥친 위기에 영리하게 대처했다. 에너지 가격 앙등에 대응해 일반 가계가 1년 동안 부담하는 에너지 요금의 상한을 2500파운드[약 400만 원]로 동결한 것이다.(그래도 1년 전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비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1500억 파운드[약 240조 원]라는 막대한 돈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신임 재무장관 쿼지 콰텡은 이렇게 썼다. “사람들의 겨울나기를 도우려면 어느 정도 재정 적자가 필요할 것이다.” 즉, 정부가 그 돈을 빌려서 충당할 것이라는 말이다.
콰텡이 취임 직후 재무부 상임비서관 토머스 숄라를 해임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트러스는 선거운동 때 재무부의 “정설적” 경제관을 공격했다. 특히, 재무부가 증세 없이 정부 지출을 늘리는 데에 반대한 것을 비판했다. 트러스와 경합했던 전 재무장관 리시 수낙은 그 입장을 옹호했었다.
트러스의 주장은 그다지 과격한 전환이 아니다. 수낙 자신도 코로나19 팬데믹의 경제적 충격에 대응해 영국의 정부 지출을 크게 늘린 바 있다. 이 지출 역시 부채로 조달됐다. 하지만 그때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당시에는 영국 중앙은행이 늘어난 정부 부채를 사실상 감당해 줬다. 2020년에 영국 중앙은행은 국채 4500억 파운드를 추가로 매입했다. 수낙이 쓴 돈을 사실상 찍어 준 셈이다.
반면, 지난주 〈파이낸셜 타임스〉에는 이런 헤드라인이 실렸다. “경기부양책 놓고 리즈 트러스와 중앙은행 격돌할 듯.” 이유는 간단하다. 물가상승률이 치솟아, 많은 주요국에서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팬데믹 동안 추가적인 정부 지출에 기꺼이 재정을 댔던 각국 중앙은행들이 방침을 바꿨다. 현재 이들은 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려서 경기를 둔화시키고 실업률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깔린 사고는 지난달에 유럽중앙은행(ECB) 이사 이자벨 슈나벨이 한 말에서 드러났다. “각국 중앙은행은 1980년대보다 높은 희생률에 직면할 듯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희생률이란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저성장과 고용 창출 둔화를 얼마나 감수해야 하는지를 측정한 수치다.”
이미 지난 2월에 영국 중앙은행은 새 금리 인상 주기에 돌입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려 이를 빠르게 역전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 결과 다른 통화 대비 달러 환율이 14퍼센트 올랐다.
이는 다른 중앙은행들도 자국 통화 방어를 위해 금리를 올리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유로화는 달러당 환율이 1:1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서 유럽중앙은행은 ─ 이전에도 늘 그랬듯 혼란에 빠져 있다가 ─ 지난주에 금리를 0.75퍼센트포인트 인상했다.
유로화에 이어 영국 파운드화가 달러당 환율이 1:1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파다하다. 어마어마한 낙폭이다. 더구나 영국은 유로존과 달리 국제수지 적자가 어마어마한 상태다. 수출보다 수입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도이체방크는 지난주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거의 10퍼센트에 이를 위험이 있는 상황이니만큼, ‘서든 스톱’*은 더는 무시할 만한 ‘꼬리 위험’*이 아니다. 영국이 대외 균형을 맞추는 데 필요한 돈을 대 주는 외국 자본을 충분히 끌어당기지 못하게 될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트러스와 콰텡은 1976년 노동당 정부가 겪은 고난에 빠질 수 있다. 당시 노동당 정부는 국제수지 위기에 직면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를 요청해야 했다. 물론, 현재 영국 중앙은행 총재 앤드루 베일리는 그런 사태를 피하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주에 영국 중앙은행의 수석 경제학자 휴 필은 트러스 정부의 추가 재정 지출이 재화·서비스 수요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은 영국 중앙은행이 애초 계획보다 더 높은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력히 시사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은 영국 국가를 찬양하는 성대한 행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트러스 정부와 영국 중앙은행 사이의 갈등은 그 영국 국가의 위기가 실제로는 더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징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