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난민, 8·21 2차 서울 도심 행진:
1차 행진보다 더 많이 참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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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서울 보신각에서 이집트 난민들이 한국 정부에 난민 즉각 인정을 요구하는 긴급 집회를 열고 도심 행진을 벌였다. 이집트 난민들과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 시민모임 ‘마중’, 수원이주민센터, 노동자연대 등 이들에게 연대하기 위한 한국인들 150여 명이 참가했다.
집회를 주최한 이집트 난민들은 짧게는 4년, 길게는 6년째 법적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
난민 신청자라는 불안정한 체류자격 때문에 취업이 어렵고, 취업하더라도 열악한 일자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건강보험과 같은 필수적인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배제된다.
무엇보다 자칫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낳는다. 다른 한편, 이집트에 두고 온 가족이 있는 경우 수년째 생이별의 고통을 겪고 있다.
자녀들은 방과후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등 학교 생활에서도 차별을 겪는다. 난민들은 “제가 정치적 의견 때문에 박해받는 거라면 우리 아이들은 대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하고 하소연한다.
이에 이집트 난민들은 7월 6일 난민 즉각 인정을 요구하며 법무부 앞 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8월 10일 난민 즉각 인정을 거부하고 더 기다리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에 이집트 난민들은 농성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집회와 행진은 8월 10일 법무부의 답변에 항의하고, 농성을 지속하기 위한 힘을 모으기 위해 열렸다.
농성에 참가하고 있는 무함마드 씨는 농성 투쟁을 구심으로 연대가 조금씩 확산되는 것에 고무받는다고 말했다.
“한 명의 난민으로 시작된 농성에 참여 인원이 점점 늘어나 현재 수십 명이 농성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법무부 앞에서만 시위했지만 국회, 대통령 집무실 앞 등지에서도 시위와 행진을 벌이고 오늘 이렇게 많이 모이게 됐습니다.
“지금 이 자리의 한국인 여러분이야말로 우리가 인내하고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집회에] 올 때마다 참가자가 늘어나고 있어요. 계속 참가하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또 그는 수년째 난민 인정을 하지 않으면서 예산 핑계를 대는 한국 정부의 위선을 꼬집었다.
“[난민 심사 지연에 대해] 법무부는 심사관들을 충분히 채용할 예산이 없다고 말하는데, 정작 이집트 독재 정권에 수백만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이집트의 엘시시 독재 정권은 자유 국가의 친구가 될 수 없는 악독한 정권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이집트 독재 정권에 무기를 판매하고 돈을 지원합니다.”
한국 정부는 올해 1월 이집트 엘시시 정부에 10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또 2월에는 K9 자주포를 이집트에 수출해 2조 원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며 ‘성과’를 자랑했다.
무함마드 씨는 2013년 엘시시 정권이 시위대를 학살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여 주며 발언을 이어갔다.
“한국 정부는 독재 정권의 학살을 못 본 척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자리에는 이집트에서 20~30년, 길게는 40년 동안 정치 활동을 했던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연대
이에 화답해 한국인들의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대의원 권준모 씨는 현장에서 난민 연대 활동을 하며 느낀 바를 전했다.
“난민들이 오랜 시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장학금도 못 받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 정부에 항의하는 동지들의 투쟁은 완전히 정당합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난민 동지들에 대한 지지 여론이 생각보다 큽니다. 연대가 넓어지고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앞장서서 하겠습니다.”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 시민모임 ‘마중’의 이윤정 씨는 법무부의 난민 심사 과정이 얼마나 배척적인지 폭로했다.
“2018년 청와대 앞에서 [법무부의] 난민 심사 서류 조작 사건에 항의해 이집트 난민 4명이 단식을 했었는데 그중 두 분이 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한 것이 없는 걸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난민 심사 인터뷰 면접조서를 몇 번 읽어 본 적이 있는데, 한국의 난민 심사는 난민을 불인정하기 위한 심사입니다.”
이날 집회에는 수도권에서뿐만 아니라 울산, 부산, 충청도, 강원도 등 전국 곳곳의 한국인들이 연대하기 위해 참가했다. 부산에서 온 정성휘 씨는 지역에서 벌인 난민 연대 활동을 소개했다.
“저는 부산 도심에서 법무부를 규탄하고 여러분의 처지를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올해 초에는 부산과 울산에서 ‘왜 난민을 환영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도 열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토론에 참가했습니다.”
노동자연대 청년학생그룹 회원 양선경 씨는 법무부가 8월 10일 내놓은 답변 내용을 반박했다.
“법무부는 이집트가 독재 국가여도 각 개인에 대한 탄압을 다 증명해야만 난민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논리로는 시리아 난민, 예멘 난민 같은 전쟁 난민들도 난민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더 재고 따지지 말고 난민을 즉각 인정해야 합니다.
“독재에 맞서다 망명을 온 이곳에서도 불의에 맞서는 동지들의 삶에서 배울 것이 정말 많았습니다. 동지들이 한국의 난민 투쟁에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자신감을 주는 이 투쟁이 꼭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종로 일대와 광화문을 거쳐 국가인권위 앞으로 행진하며 거리의 시민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호소했다. 많은 사람들이 난민들이 준비한 리플릿을 흔쾌히 받아갔다.
이집트 난민들의 난민 인정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