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난민 인정 투쟁:
수년을 기다렸는데 법무부는 더 기다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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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난민 수십 명이 난민 즉각 인정을 요구하며 7월 6일부터 법무부 앞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4~6년째 법적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냉혹하게도 지난 8월 10일 이들의 난민 즉각 인정 요구를 거부하며 더 기다리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집트 난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난민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농성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집트의 현 엘시시 정권은 2013년 쿠데타를 일으켜 대중운동을 진압하고 집권했다. 이후 수천 명을 살해하고 6만 명이 넘는 반정부 활동가들을 구속했다.
이집트 난민들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자신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이집트 난민 수용을 늘려 달라고 정부에 요구한다.
민주주의
그러나 8월 10일 법무부는 “난민 인정 여부가 특정 국가 출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일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며 “난민 신청자의 개별적인 신청 사유와 박해, 전체적인 국가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난민 인정 결정을 한다고 답했다.
이는 기만적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강대국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운운하며 벌이는 제국주의적 개입을 지원해 왔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점령에 동참해 파병했고,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 측을 지원하며 확전에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독재와 인권 유린을 피해 온 사람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집트 난민들의 투쟁은 민주주의와 인권 운운하며 제국주의 경쟁에 동참하는 한국 정부의 위선을 밝히 드러낸다.
입증 요구
한편, 난민법과 한국이 가입한 유엔 난민협약의 난민 규정은 매우 협소하다. 이에 따르면 개별적인 박해가 아닌 전쟁, 경제적 곤궁, 환경 재난 등을 피해 온 경우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애초 협약이 냉전 시기 상대 진영에서 넘어와 체제 선전에 이용할 가치가 있는 소수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장 많은 난민을 낳는 원인이 전쟁임에도 한국에서 대다수 시리아, 예멘 출신 난민이 법적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개별적인 박해를 받은 난민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규정상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즉, 소위 “가짜 난민”을 걸러낸다며 구체적 증거를 요구하고 매우 까다롭게 심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성에 나선 이집트 난민들이 수많은 증거를 제출해도 수년째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박해 위험을 피해 비밀리에 혹은 황급히 피신하는 과정에서 증거를 챙기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증거를 모으고 심사를 받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이 과정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스트레스 등을 견디지 못해 한국을 떠나기도 한다.
결국 정부의 정책은 이들이 피난해 온 이유가 무엇이든 전체 난민 유입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1994년 이래 한국의 누적 난민 인정률은 2.8퍼센트에 불과하다.
이처럼 법무부의 주장은 어느 모로 보나 정당성이 없다. 법무부는 이집트 난민들을 즉각 인정해야 한다.
연대
현재 한국은 난민 문제가 유럽만큼 첨예한 정치 쟁점은 아니고, 난민의 수도 훨씬 적다.
그러나 난민 신청 건수는 꾸준히 늘어 2018년 한 해 1만 6000건을 넘었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급감했지만 올해부터 다시 증가 추세다.
또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입국, 올해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울산 정착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에서도 난민 문제가 때로 중요한 정치 쟁점이 될 가능성을 보여 줬다.
경제·지정학적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을 지금보다 더 이용하려 할 수 있다.
예컨대 정부는 2015년 테러방지법 제정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당시 입국한 시리아 난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도 되는 양 언론플레이를 했다. 또 지금도 난민 신청자 대부분을 경제적 목적의 “가짜 난민” 취급한다. 경제 위기가 더 심해지면 일자리 부족 등의 불만을 떠넘기는 데 난민을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정부의 난민 배척적 정책과 인종차별에 맞서 난민과의 연대를 다질 필요가 있다. 이집트 난민들이 주도적으로 투쟁에 나선 지금이 좋은 기회다.
지금 이집트 난민들의 농성은 투쟁을 이끄는 난민들의 규모와 지속성 면에서 그동안 한국에서 있었던 난민들의 투쟁보다 더 전진한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에게 적극 연대를 호소해 함께 서울 도심 집회와 행진을 벌이며 유대감도 쌓고 서로 고무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현재 본사 점거 투쟁 중인 한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는 본지에 실린 이집트 난민 소식을 보고 “우리와 처지가 다르지 않더라”며 공감을 나타냈다.
이집트 난민들이 각자 난민 심사 대응에만 머물렀다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집트 난민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국경과 이민 통제를 지지해야만 하는가?
– 일시: 9월 1일(목) 오후 8시
– 발제: 박이랑 (〈노동자 연대〉 기자, 난민 분야 전문 통번역사)
※ 특별 발언: 이집트 난민 (난민 지위 요구하며 법무부 앞 농성)
○ 참가 신청 https://bit.ly/0901-meeting
토론회 당일 오후 7시 30분에 유튜브 접속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팬데믹, 기후 재앙, 전쟁 속에서 각국 정부는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난민과 이주민들이 범죄의 온상이고 내국인의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는다며,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선 안 되고 ‘위험인물’을 솎아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흔한 오해와 달리 국경 통제는 인류사에서 근래에야 생겼습니다. 누가, 왜, 이런 통제를 할까요?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국경과 이민 통제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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