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넘게 투쟁한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
생계비 고통에 맞선 저항의 잠재력을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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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투쟁이 추석을 하루 앞둔 9월 9일 타결됐다.
노동자들은 84.2퍼센트의 지지로 잠정합의안을 가결시키고 투쟁을 마무리했다. 지난 6월 2일 전면 파업을 시작한 지 무려 100일 만이다.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은 치솟는 기름값과 물가로 인한 벼랑 끝 생계비 위기 상황에서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싸웠다. 올해 3월 화물연대에 가입해 생애 첫 투쟁을 시작했다.
사용자 측은 십수 년째 최저임금 수준의 쥐꼬리만 한 운임을 주면서 온갖 멸시와 차별 대우를 일삼아 왔다. 그러나 지난해 요소수 가격이 폭등하고 올해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노동자들은 더는 참지 않겠다고 용기 있게 나설 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봄에 시작한 투쟁이 한여름을 지나 가을이 될 때까지 정말이지 끈질기게 싸웠다.
이 투쟁은 무엇보다 고물가로 생활고에 처한 광범한 노동계급 대중의 불만을 대변했다.
물가상승률이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큰 폭의 금리 인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노동자 등 서민층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임금 빼고 안 오르는 게 없다는 심각한 인플레이션 속에서 대중의 삶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쥐꼬리만 한 수입으로 대출 이자 갚고 생활비 대기도 팍팍한데, 물가는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최근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투쟁은 수많은 노동자·청년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정부와 사용자들의 고통 전가 시도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다.
서울 강남역 도심에서 두 차례 열린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투쟁 지지 집회와 행진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며 호응을 얻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거리의 청년들, 넥타이를 맨 노동자들, 시민들이 발길을 멈춰 서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응원의 경적을 울리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생계비 위기에 맞선 대안을 노동자 투쟁은 보여 주고 있다.
협상이 타결된 9월 9일, 하이트진로 본사 앞 농성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이런 응원과 연대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청년들이 우리를 지지해 주다니,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30년 넘게 진로 소주를 운송해 온 노동자는 말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 파업이란 걸 해 봤어요. [사용자 측과 보수 언론은] 우리더러 불법이네 했지만, [우리가] 오죽했으면, 얼마나 먹고살기 힘들었으면 그랬겠습니까? 우리는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걸 다 해 봤어요. 뭣 모르고 시작한 싸움이지만, 이젠 예전의 우리가 아닙니다.”
광범한 지지
파업 노동자 132명 전원 계약 해지, 28억 원에 이르는 손배가압류, 경찰의 폭력 진압과 무더기 연행, 3명 구속. 사용자와 정부의 탄압이 거셌지만, 노동자들은 쉽게 굴복하지 않고 투지를 보여 줬다.
파업 초기엔 하이트진로 이천·청주 공장 앞에서, 8월 초에는 하이트진로 홍천 공장 앞에서 대체수송을 막아서 소주·맥주 공급에 일부 차질을 주기도 했다. 비록 경찰의 폭력 진압과 규모의 열세로 그곳에서 밀려났지만, 그 뒤로도 또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하이트진로 서울 본사를 점거해 농성을 이어 갔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며 사용자 편에 섰다.
그럼에도 정부는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 투쟁이 시작된 지 1주일 만에 비공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추석 명절을 앞두고 노동부가 타협을 압박하며 중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생활상 고통으로 인한 대중의 불만과 연이은 노동자 투쟁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투쟁이 더 장기화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이번에 노동자들은 운송료를 5퍼센트 인상하기로 하고, 파업 노동자 전원에게 통보된 계약 해지 대부분을 철회시켰다. 손배가압류와 고소고발도 취하하기로 했다.
다만, (사용자 측이 언론에 흘린 내용을 보면) 간부 몇 명에 대한 계약 해지, ‘불법 행위 재발방지 약속’이 합의문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헌신적으로 투쟁해 온 노동자들에게 이 점은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사용자들은 웬만하면 양보하지 않으려고 강경하게 나온다. 한 사업장의 투쟁 결과가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과 자신감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투쟁이 보편화되고 전 계급적인 저항으로 넓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열린 마지막 결의대회에서 노동자들은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다”며 남은 과제 해결을 위해 앞으로 또 싸워 나가자고 결의를 다졌다.
이번에 하이트진로 화물 투쟁은 많은 노동자들과 청년들에게 생계비 위기에 맞선 저항의 잠재력과 희망을 보여 줬다. “억눌리고 빼앗겼던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하는 노동자들의 말에서 볼 수 있듯, 의식과 조직의 발전이라는 소중한 성과도 남겼다.
지금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대중의 생활고가 심각하다. 금융, 건설, 공공 등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와 투쟁도 예고되고 있다. 이런 저항과 연대가 확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