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인상이 물가를 올린다는 건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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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치솟으면서 노동자·서민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7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6.3퍼센트 급등해,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11월(6.8퍼센트) 이후 2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 6월에 이어 연속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퍼센트를 넘은 것이다.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식품 물가가 8.8퍼센트, 식품 외 물가가 7.3퍼센트 상승해 1년 전보다 7.9퍼센트나 올랐다.
반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6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를 보면, 실질임금은 삭감되고 있다.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올해 1~5월 노동자 임금총액은 1년 전보다 5.9퍼센트(21만 7000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대기업인 300인 이상 사업체는 임금이 10퍼센트(56만 4000원) 올라 물가 인상을 겨우 따라잡고 있지만, 중소기업 임금은 고작 4.5퍼센트(14만 70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치솟는 물가뿐 아니라 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갚아야 하는 이자도 급증하고 있어,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시장 친화적 물가관리”를 하겠다고 밝혀 왔다. 기업 이윤을 훼손할 수 있는 물가 통제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기·가스 요금 등 공공요금을 인상하고, 대학 등록금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게다가 대기업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감면 등 부자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는 임금 인상은 한사코 안 된다고 한다. 이들이 진정 걱정하는 것은 노동자·서민의 삶이 아니라 기업 이윤인 것이다.
경제부총리 추경호는 6월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단 간담회에서 “과도한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국무총리 한덕수도 “물가가 상승하면 임금 인상 요구가 강해질 거고 그것 때문에 인플레가 다시 일어나는 악순환이 된다”며 임금 인상을 반대했다.
한국은행도 올해 들어서만 ‘임금 물가 악순환’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3차례나 발표해, 윤석열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7월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물가·임금 관계 점검’ 보고서는 물가 인상에 대응한 임금 인상 시도가 물가를 추가로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막상 보고서 내용을 보면, 임금 인상이 물가 인상을 낳을 것이라는 근거는 빈약하다. 지난 20년간의 자료를 분석해 보면, 임금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물가는 수입물가, 환율 등 대외 변수 등에 큰 영향을 받고, 기업 사이의 치열한 경쟁 탓에 임금 상승의 일부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소비자물가가 1퍼센트포인트 오르면 임금은 1년(4분기)의 시차를 두고 0.3~0.4퍼센트포인트가량 높아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한다.
다만, 이 보고서는 임금이 1퍼센트포인트 오르면 1년 후쯤에 외식을 제외한 개인서비스 가격이 0.2퍼센트포인트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설사 이 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임금 인상이 물가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한 것이다.
사실 기업 매출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2020년 기준 매출액 대비 임금 비중은 제조업이 11.71퍼센트였고, 전 산업 평균이 13.36퍼센트다. 임금이 10퍼센트 오르고, 기업들이 이를 전부 가격에 반영한다고 해도 물가는 대략 1퍼센트 오르는 것이다.
이윤 증대
정부와 한국은행, 주류 언론들은 온통 임금 인상이 물가를 상승시킨다고 하지만, 오히려 물가 인상 탓에 노동자들에게서 자본가들에게로 가치가 이전되고 있다는 증거가 많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원자재·에너지 등의 가격이 오르자, 기업들이 이윤을 늘리려고 상품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2020년 2분기부터 2021년 말까지의 물가 상승 요인 중 53.9퍼센트는 기업 이윤 증가에 따른 것이었다. 38.3퍼센트는 원자재, 에너지, 기계 등의 가격 상승 때문이었다. 임금 인상이 끼친 영향은 7.9퍼센트에 불과했다. 요컨대 이윤 주도 물가 상승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물가가 오르기 시작한 2021년에 기업들의 수익이 크게 늘었다. 2021년 코스피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183조 9668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73.6퍼센트가량 늘었고, 순이익은 156조 5693억 원으로 160.6퍼센트나 증가했다. 2021년 임금 인상률은 3~4퍼센트에 그쳤는데 말이다.
물가가 치솟은 올해 1분기에도 코스피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은 50조 5105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4퍼센트나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을 봐도, 2021년 법인기업의 매출액이 크게 증가했고,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전년도 5.1퍼센트에서 6.8퍼센트로, 매출액 세전 순이익률은 4.4퍼센트에서 7.7퍼센트로 높아졌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액이 17퍼센트나 늘었을 뿐 아니라,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6.3퍼센트로 전년 동기(6.4퍼센트)와 비슷했다.
이처럼 최근 치솟는 물가는 기업들이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이는 기회가 되고 있다. 반면, 물가도, 금리도 오르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티는 형국이다.
노동자·서민이 아니라 기업들이 물가 상승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특히 생필품 물가 상승을 억제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