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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난민이 자녀 양육의 고충을 말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방과후 활동도, 병원도 못 보내요”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이집트인들의 법무부 앞 농성이 세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현재는 생계 등의 문제로 소수 인원이 농성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집트 난민들은 지난 8월 서울 도심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두 차례 집회와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인터뷰에 응한 아부 씨는 부인과 함께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1학년 딸을 키우고 있다. 아부 씨 가족은 2018년 한국에 와 난민 신청을 했으나, 불인정 결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현재 소송 중이다.

이집트인 난민 아부 씨 ⓒ임준형

한국에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알고 있나요?

2013년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다가 경찰의 표적이 됐습니다. 경찰이 저의 형을 고문해 제 은신처를 알아냈고, 저는 수단으로 도주했습니다. 생이별했던 아내와 아이들은 2016년 아랍에미리트를 거쳐 수단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2018년 수단 정부가 이집트인 망명자를 송환하기로 이집트 정부와 협약을 맺는 바람에 다시 한국으로 피신했습니다. 당시에는 이집트인이 한국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었거든요.

두 아이는 모두 이집트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딸은 이집트에 있을 때 너무 어려서 한국에서의 기억밖에 없어요.

아들은 이집트에서 경찰이 저에게 두건을 씌워 끌고 가는 것을 목격해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동안 이를 떠올리기 힘들어 했어요. 아들은 독재자 엘시시가 물러나, 이집트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직 어려서 군부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지만요.

한국에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학교에 직접 찾아가 요청했는데 잘 받아 줬어요. 교사들이 영어가 조금 가능하고, 저도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어서 소통이 가능했어요. 서로 부족한 부분은 번역기 돌려 가며 대화했죠.

이주민 자녀가 꽤 있는 학교이고, 교과 수업 이후 오후에 이주민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도 따로 합니다. 어려움이 없진 않지만 아이들이 한국어를 빠르게 배우고 있고 친구들과 의사소통도 가능해요.

자녀 양육에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저 같은 난민 신청자에게 가장 힘든 것 두 가지가 일자리와 건강보험 문제입니다.

인력사무소에 가면 제일 먼저 “비자가 뭐야?” 하고 물어요. 그리고는 “[난민 신청자에게 부여되는] G-1 비자는 불법체류자랑 똑같아”라고 합니다. 갈 수 있는 일자리는 육체적으로 힘든 곳뿐이에요.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 필수적인 것 외에는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돈을 내야 하는 특별활동이나 방과후 활동에 아이들을 참가시키지 못해요. 한국인 친구들과 달리 참여를 못 하니 아이들이 슬퍼하기도 합니다.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것도 큰 고통이에요.

한 번은 아내가 임신 중에 구토를 하고 아파서 대형 병원에 갔어요. 그런데 응급실에 들어가는 데만 30만 원을 내야 한다는 거예요. 저렴한 다른 병원을 찾아갔죠. 이 병원도 입원하기엔 너무 비싸서 18일 동안 통원 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었어요. 그래서 큰 대학 병원으로 옮겼는데, 시간을 허비한 탓에 유산하고 말았어요. 20일 넘게 두 병원을 오가며 무려 500만 원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들도 아픈 데가 있어요. 수단에 있을 때 자다가 이불이 흥건할 정도로 코피를 쏟은 적이 있었어요. 병원에 데려가니 의사가 50도가 넘는 날씨 때문에 아픈 것이라고 했어요.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니까 괜찮아졌어요.

한국에 와서도 날씨가 덥고 습할 때 매우 힘들어 해요. 그래서 여름에는 학교에서 야외 활동을 하기 힘들고, 집에서는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야 해서 전기료가 많이 나와요. 아이가 아플 때마다 동네 작은 의원에서 약을 타와요. 하지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큰 병원에 데려가서 종합적인 검사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은데,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 두려워 엄두가 안나요.

그림처럼 행복하기를 아부 씨의 딸이 그린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왼쪽부터 아빠, 오빠, 나, 엄마라고 한다 ⓒ임준형

난민 인정 심사와 소송 과정에서 힘든 일은 없었나요?

재판을 받을 때 판결에 조금이라도 유리할까 싶어 가족이 모두 참석했었어요. 이곳 청주에서 서울까지 14번이나 왕복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학교를 결석했어요.

지난해 2심에서 패소했는데 그 이유가 황당했어요. 저희 가족이 인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을 때, 출입국 당국은 우리 가족을 일주일간 붙잡아 두고 조사한 후 입국을 허가했어요. 그런데 당시 우리 아이들에 대한 면접 조사를 하지 않아 절차상 하자가 있었기 때문에 난민 불인정 결정이 정당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출입국 당국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게다가 당시 우리 아이들이 겨우 6살, 3살이었는데 이 아이들을 면접 조사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언제까지 한국에 머물지 불확실한데,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 고민될 것 같습니다.

[이집트의 정치 상황이 좋아져]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현실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이 현실이란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키고, 적응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혼자였다면 비교적 쉽게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으니 그러기 쉽지 않아요. 살 집도 필요하고,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게끔 일자리도 구해야 하니까요.

지금은 제가 아이들이 먹고 입을 것부터 모든 것에 신경을 쓰고 책임을 지고 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함께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 막바지에 아부 씨의 딸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다. 아이를 보자마자 아부 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두 아이가 함께 쓰는 좁은 방을 살펴보니 커다란 침대 매트리스가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놓을 공간이 부족해서인지 공부할 책상이 없었다.

아부 씨는 자신이 말한 한국살이의 모든 어려움이 난민 인정을 받아야 할 이유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는 투쟁하고 있는 이집트인들을 하루빨리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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