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난민의 날 20주년 특집
난민이 직접 말하는 한국에서의 삶②:
“비싼 대학 등록금, 오르는 집세…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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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올해는 난민의 날이 지정된 지 20년, 유엔 난민협약이 채택된 지 70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1992년 이 협약에 가입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초반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난민 인권을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난민들이 직접 얘기하는 그들의 한국살이는 문재인 정부가 난민을 옥죄고 있음을 생생히 드러낸다.
메리 다니엘 씨(52세)와 그녀의 딸 유스티나(21세)는 2016년 이집트의 정치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왔다. 당시 임신 중이던 메리 다니엘은 한국에 와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벌써 6살이 됐다. 그녀는 이집트에서 작가이자 독립 언론인으로 책과 칼럼을 쓰면서 무바라크 독재를 비판하는 활동을 했다.
그녀의 남동생이자 유스티나의 삼촌인 미나 다니엘은 이집트 혁명 당시 카이로 도심 시위 도중 군부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는 이집트 독재에 반대하는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이 힘을 합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릴 것을 호소했었다. 사망한 날이 체 게바라 사망일과 같아서 많은 이집트인들이 그를 ‘이집트의 체 게바라’로 불렀다고 한다.
2019년 메리 다니엘 가족은 임금체불, 학교에서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언행들에 큰 상처를 받고 독일로 떠나려 했다. 그러나 독일 메르켈 정부의 국경 통제로 항공기 탑승을 거부당해(관련 기사: ‘한국 못 견뎌 떠나려는 이집트 난민들’) 한국에 남아 삶을 이어가고 있다.
메리 다니엘은 난민으로 인정받았지만 유스티나는 인정받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유스티나: 엄마랑 동생은 난민 인정을 받았는데 저는 아직 난민 신청자입니다. 체류 연장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요. 왜 나만 인정받지 못하는지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겠어요. 매달 9만 5000원씩 내는 건강보험료, 체류 연장 때마다 출입국 사무소에 내는 수수료도 부담이에요. 너무 비싸요.
난민으로 인정받았어도 힘든 점이 있나요?
메리 다니엘: 난민 인정을 받았지만 사는 게 너무 어려워요. 딸을 대학에 보내고 싶지만 등록금이 너무 비싸 엄두가 안 납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을 내며 살고 있는데 월세가 올라서 또 이사를 가야 해요.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국적 문제예요. 한국에서 태어난 제 아들은 이집트인도 아니지만 한국인도 아니에요. 한국에서 태어나 계속 한국에 살고 있는데도 국적이 없는 것이죠. 이럴 거면 난민 인정받은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2019년] 독일 입국을 거부당해 3일을 공항에서 생활했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난민들이 공항에서 노숙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한국 정부가 난민들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생활에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렵습니까?
메리 다니엘: 아이가 어려서 그동안 외출이 힘들었던 데다가 코로나 때문에 이웃과 교류도 없어요. 영어도 유창하지 못해요. 일단 언어 문제가 가장 힘듭니다.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요. 당신밖에는요. 한국어도 많이 어려워요. 일도 하고 싶지만 일단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약이 있어요. 언어가 안 되니까 예전에 제가 하던 일을 여기서 하기도 어렵고요.
유스티나: 한국어를 못해서 따돌림당했던 예전 학교[경주]에서의 기억 때문에 저는 서울 생활이 더 좋아요. 그러나 여기서도 친구가 없어요. 이집트에 살고 있거나 이집트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또 다른 친구들과 페이스북에서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게 고작입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커요. 일단 검정고시에 붙어야 하는데 국어, 수학, 한국사가 너무 어려워요.
지금은 주말 이틀 동안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마련해요. 그런데 이전 일하는 곳에서 임금체불을 당했어요. 정말 나쁜 사람들이더라고요. 아무튼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대학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입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아랍어 통역사 같은 일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