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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SPC) 노동자 산재 사망:
탐욕 외에도 냉혹한 이윤 시스템 탓이다

동료가 죽은 사고 현장을 흰 천으로 덮은 채 계속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했던 노동자들 ⓒ출처 화섬식품노조SPL지회

또 한 명의 23세 청년이 일하던 중 끔찍한 사고로 숨졌다. 제빵 공장에서 300킬로그램의 재료를 부어 샌드위치 소스를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회전하는 기계 입구에 상반신이 빨려 들어갔다.

고인은 사회 초년생인 여성으로,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홀로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한 가장이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번 사망 사고는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등 40여 개 브랜드와 5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대형 식품기업 SPC그룹(의 한 계열사 SPL)에서 벌어졌다. 지난해 매출이 3조 원 가까이 되는 이 대기업에서 노동자들은 안전장치도 없이 홀로 위험 작업에 투입됐다. 사람보다 기업의 수익성을 우선하는 냉혈한 이윤 논리가 소중한 목숨을 앗아 간 것이다.

고인이 사고를 당한 소스 혼합기(회전기)에는 안전장치가 꼭 필요하지만, 해당 기계에는 그것이 없었다. 안전장치를 설치하면 생산 속도가 낮아져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용자 측이 꺼린 탓이다.

동료 노동자들에 따르면, 2인 1조 근무 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비용 부담을 걱정한 사용자 측이 인력 충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SPL 평택 공장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제빵 공장이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무조건과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노동자들은 1일 2교대로 하루 12시간씩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남자친구와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에는 고된 노동에 대한 한숨이 깊이 묻어난다.

반복되는 비극

게다가 비슷한 사고가 고인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에도 있었다. 같은 공장에서 한 계약직 노동자가 기계에 손이 끼이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사측 관리자는 안전 조처를 취하기는커녕, 병원에 보내 달라는 당연한 요청마저 매몰차게 거부했다고 한다.

심지어 사용자 측은 이번 사망 사고 바로 다음 날 동료의 죽음을 지켜본 노동자들을 바로 그 현장 옆에서 일하게 했다. 사고 현장을 흰 천막으로 가려 둔 채 말이다.

사용자 측의 이런 천인공노할 조처들을 보면, ‘우리에겐 일하는 손이 필요하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어느 자본가의 말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SPC 사용자 측에 분노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피 묻는 빵은 먹지 않겠다”며 대학가와 온라인상에선 불매 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비판이 확대되자 SPC그룹 측은 “안전 경영”을 위해 1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런데 SPC 사용자 측은 지난해 던킨도너츠의 위생 관리 문제, 계열사 곳곳에서 연이은 노조 탄압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위생·안전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ESG 경영(친환경 사회적 공헌)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이번에 또다시 비극을 낳았다.

무엇보다 이번 사고는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여 생을 달리한 고 김용균 씨(당시 24세)를 떠올리게 한다. 그 뒤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됐지만 산재 사망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관련 기사: 본지 437호 기업주 부담 덜어 주려 알량한 중대재해처벌법마저 후퇴 시도)

SPC에서 고인이 사망한 날, 거제 대우조선에서도 한 하청 노동자가 지게차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그 전날에는 한국화이바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추락사했고, 또 그 전날에는 김해의 한 사업장에서 산소 절단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숨졌다.

자본주의 이윤(경쟁) 논리 앞에서 노동자들의 목숨은 하찮게 여겨지고 있다. 돈보다 생명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쳐버린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