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은 국가 경제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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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에게 양보와 희생을 요구할 때 정부와 기업주들은 흔히 ‘국가 경제’나 ‘경제 위기’를 들먹인다. 윤석열도 12월 2일 화물연대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중단하라고 협박하며 “경제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금 등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억누르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연금 개악이나 각종 공공서비스 예산을 삭감할 때도 그들은 같은 명분을 들이댄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2017~2021년 5년 동안 경제성장율은 평균 2.34퍼센트였고,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팬데믹 첫해인 2020년 한 해뿐이다. 2021년에는 4.1퍼센트 성장해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그런데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성장의 혜택이 돌아오지 않았다. 적지 않은 노동자들은 오히려 여러 해 동안 실질임금 삭감을 감내해야 했다. 특히 올해 들어 물가 폭등과 금리 인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하락했다.
이처럼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데도 노동자 소득이 줄어든 것은 결국 기업주와 부유층의 몫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 위기
많은 사람들이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998년 IMF 위기나 2007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 때 한국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나 기업주와 부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고통을 분담하거나 희생을 감내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그들은 경제가 더한층의 위기로 빠질 것을 예상하면서 투자를 줄여 자신의 손해를 최소화한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는 결코 불가피하거나 자동적인 것이 아니다. 실질 임금과 복지 삭감, 외주화, 금리 인상, 심지어 물가 인상조차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기업주들과 그들의 정부의 의도적인 선택이다.
이를 위해, 기업주들과 그들의 정부는 경제 위기로 노동자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길 원한다.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훗날 보답과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우리가 믿기를 그들은 바란다.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이런 생각을 받아들여,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 참말이 아니다.
1997년 IMF를 불러들인 경제 위기 직후, 다수 노동자들은 생활고를 감수해서라도 일자리를 지키길 바라는 심정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런 ‘희생’은 더 큰 공격을 막지 못했다.
곧이어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비정규직 채용 등이 이어졌다. 공공부문에서만 무려 13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IMF 위기’에서 회복됐다고 하지만 그 뒤로 대기업은 더 비대해지고, 비정규직과 빈곤층은 늘어났다.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공황 이후 조선업 노동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일부 노조 지도자들은 ‘회사를 살려야 고용도 지킬 수 있다’며 양보 교섭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그것은 더한층의 희생 강요와 해고로 이어졌다. 조선업 노동자 전반이 양보에 양보를 거듭 요구받는 악순환을 겪어야 했다.
이런 사례들을 봐도,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경제를 회복시키면 노동자들의 삶이 자동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말은 참말이 아니다. 불황은 노동자들을 고통에 빠뜨리지만 회복과 호황기에도 노동자들이 그 혜택을 자동으로 누리지는 못한다.
노동자 희생론은 경제 위기 고통 전가를 위한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이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업주를 위한 양보가 아니라 오히려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것에 맞서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