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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위기는 단지 미국 연준 탓일까?

고금리·고환율 탓에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리가 인상돼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며 건설 기업과 금융권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윤율은 낮은 상황에서 금리가 인상되니, 이자도 벌지 못하는 좀비 기업들의 부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 중 58.3퍼센트가 1년 이내에 금융 위기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거나 매우 높다고 답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상황은 흔히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는 한국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위기가 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윤을 최우선하는 정부 자신의 선택은 서민 생계비 위기뿐 아니라 금융 위기의 가능성도 키우고 있다. GS칼텍스 본사 앞에서 농성 중인 화물 노동자들 ⓒ유병규

물론 미국의 금리 인상이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달러 가치를 높여 달러를 빌린 나라와 기업들의 부채 부담이 커지게 한다. 이는 신흥국과 빈국들의 외환위기를 낳을 수 있다. 달러 가치 상승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물가 상승 압력도 높이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주들도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외화가 유출돼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때문에 금리 인상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의 삶은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대출 금리가 7퍼센트로 오르면 무려 190만 명이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들은 대출 원리금 상환에 소득의 70퍼센트 이상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이미 7퍼센트를 넘어섰다.

외환위기를 막겠다며 추진하는 금리 인상 탓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이미 외환위기 수준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금리 인상 탓에 금융권의 자금 부족이 심해져 심각한 금융 위기가 닥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외환·부채 위기를 막으려는 정부의 시도는 훨씬 더 심각한 고통전가 정책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0년대 그리스에서는 부채 위기를 이유로 극심한 긴축이 강요됐고, 이 때문에 임금은 40퍼센트가량 줄고 연금과 복지는 무려 70퍼센트가 삭감됐다.

그러나 이와 다른 선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기업과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둬 임금과 복지를 늘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정부가 기업과 부자들에게 막대한 감세를 추진하는 것을 보면 재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기업들의 이윤을 공격하면 외화 등 자본 유출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럴 때 기업과 외국 자본들이 이윤을 위해 돈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정부가 나서 자본을 통제하는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자본 통제 그 자체가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을 개선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극심한 위기가 벌어지면 몇몇 정부들은 자국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본 통제를 실시할 수 있다. 이런 자본 통제는 극심한 긴축 정책과 함께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위해 자본 통제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기업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돈을 쓰라고 요구하고, 이를 위해 자본을 통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물가 억제?

또 정부는 물가 인상을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을 낳아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윤이 타격받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행도 “성장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고물가 고착 방지를 위해 금리 인상을 지속”한다고 밝혀 왔다. 특히 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임금-물가 악순환’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여러 차례 발표하며 윤석열 정부의 임금 공격에 힘을 실어 왔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라는 파괴적인 방법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며 물가를 통제하는 방법도 있다. 정부가 생필품 가격 인상을 규제하고,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생필품과 공공서비스 가격 안정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런 조처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원리에 따라야 한다며 공공요금을 대폭 인상해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올해 10월 전기·가스·수도 요금 인상률은 전년 대비 23.1퍼센트나 올랐다. 기업들은 늘어난 생산비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며 이윤을 지켰고, 그만큼 물가도 올랐다.

이런 기업들의 이윤 추구를 규제하는 방식으로도 물가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런 정책을 쓰지 않는 것은 그들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금리 인상은 기업 이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경제를 안정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자칫하면 심각한 금융 위기를 부를 위험한 도박인데도 말이다.

거품 키워 온 건 누구?

이제까지 정부들이 경기 부양을 우선하며 부동산 거품을 키워 온 것이 현재 금융 위기 우려를 심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난 수년간 집값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오른 나라 중 하나이고, 이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관련 부채들이 부실화될 위험도 커졌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더욱 노골적으로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종부세 등 세금 감면, 민간 임대주택에 아파트를 다시 포함시키는 등 임대 사업 제도 활성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통해 거품을 어떻게든 떠받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이 더 큰 위기의 싹을 키우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여 준다. 이런 체제를 수호하며 기업주들의 이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려는 정부의 의식적인 정책이 노동자 등 서민층을 심각한 생계비 위기로 내몰고, 금융 위기의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경제 위기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 상황은 한국의 기업주들과 정부 권력자들의 이윤을 우선하는 정책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득을 보던 자들이 그 책임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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