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외국인 투표권 축소 검토:
이주민 유입은 늘리면서 권리는 줄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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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무부가 외국인의 지방선거 투표권에 상호주의를 적용해 대상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출입국관리법에서 외국인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를 탄압해 왔다. 특히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주요 이주노동자 간부들을 강제 출국시키는 데 주로 이용됐다.
다만, 외국인이 영주권을 취득한 후 3년이 지난 경우에 한해서 지방선거에만 투표권을 준다. 선거에 입후보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마저 더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12월 6일자 〈중앙일보〉 보도를 보면, 법무부는 외국인 영주권자가 특정 기간 이상 해외에 체류 시 영주권을 상실하도록 해 투표권도 박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단지 투표권 축소만이 아니라 영주권 유지 자체를 더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다.
한국에 일정 기간 이상 체류해야 투표권을 줄 수 있다는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한다면 한국의 재외국민 선거권도 박탈해야 할 것이다. 뒤집어 말해, 외국인 투표권 축소 주장은 국적이나 민족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발상인 것이다.
민의
법무장관 한동훈이 “상호주의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민의를 왜곡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우선, 경찰 끄나풀 출신 김순호를 초대 경찰국장에 임명하고, 이태원 참사가 터지자 사찰과 감시로 항의를 억누르려 한 윤석열 정부가 ‘민의 왜곡’ 운운하는 것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현 집권 세력은 노동자 등 서민층과 차별받는 사람들에 맞서 지배계급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한다. 이런 자들이 말하는 민심이란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과 민주적 의사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또 외국인의 투표가 ‘민의’를 왜곡한다는 주장은 엄청난 과장이다. 전체 유권자 중 이주민 유권자 수는 약 0.3퍼센트에 불과하다. 이 숫자가 다 투표하는 것도 아니다. 2018년 지방선거 외국인 영주권자 투표율은 13.5퍼센트였다. 잘 모르기도 하고 자신들을 위한 선거라고 여기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왜 이주민의 의견은 ‘민의’에 포함되지 말아야 하는가? 영주권자는 물론이고, 단기간 머물다 귀국하는 이주민도 한국의 경제와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한다. 이런 이주민들을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
코로나 기간 이주노동자 유입이 줄자 곳곳에서 일손이 부족해 난리다. 그래서 정부는 내년도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를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이래 가장 큰 규모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들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예컨대 2020년 기준 이주노동자 만 명당 사망률은 우리 나라 전체 노동자의 2배 이상을 기록했다.
이주민은 이렇게 힘겹게 일하며 한국에 적지 않은 세금도 낸다. 이주노동자가 2018년에 낸 소득세만 1조 원이 넘었다. 2018년에 이주노동자에게 지급된 임금은 총 26조 4000억 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40퍼센트가 국내 소비에 쓰였다. 간접세도 상당히 낸 것이다.
또 이주민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의 법과 제도, 선출된 정치인들이 내리는 결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그런 정책을 결정하는 자들에게 이주민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가 확대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면 평범한 한국인들에게도 이득이다. 예컨대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아 저임금 노동자층을 이루면, 내국인 노동자의 노동조건도 끌어내리는 압력이 된다. 이주노동자의 처지가 나아진다면 이런 압력이 줄어든다.
상호주의
한편, 한동훈이 외국인 투표권 축소의 근거로 든 상호주의란 자국인이 외국에서 법률상·조약상 부여받고 있는 권리의 범위 내에서, 외국인에게도 같은 정도의 권리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일견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이주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예컨대 외국인에게 의료보험을 적용하지 않는(혹은 의료보험 제도가 없는) 나라 출신 이주민이라고 해서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 의료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게 해야 할까? 만약 그런 이유로 이주민에게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상호주의의 채택은 가장 배타적인 외국의 선례가 확산되는 경로가 될 뿐이다.
정부는 인구 감소 등에 대응해 이주민 유입을 일정하게 늘리려고 한다. 그래서 이주민 문제를 점차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최근 법무부가 이민청 설립에 속도를 내기로 한 것도 이를 보여 준다.
동시에 정부는 그렇게 늘어날 이주민들을 사용자와 국가의 필요에 맞게 통제하는 다양한 조처도 갖춰 놓으려고 한다. 인종차별도 강화하려 할 것이다. 외국인 투표권 축소도 그 일환일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고, 선거권을 비롯해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를 더 확대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중국인이라서 문제?
보수 언론들은 투표권이 있는 외국인 약 12만 명 중 80퍼센트 정도가 중국인이라는 점도 부각한다.
한동훈과 법무부가 이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 윤석열과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김은혜 등 정권의 주요 인사들은 중국인에 대한 편견과 반감을 이용하려는 주장을 여러 차례 해 왔다.
그런데 투표권이 있는 중국인의 다수는 조선족(중국 동포)일 것이다. 올해 10월 기준 영주권을 가진 중국 국적자 중 조선족은 10만 6000여 명으로 조선족이 아닌 중국인보다 3배나 많다.
게다가 이들을 대거 유입시킨 건 한국 정부다. 한국 정부는 2010년대를 지나면서 다른 나라 출신 이주민과 달리 조선족에 대한 이주 규제를 상당 부분 완화했다. 유입 즉시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노동력으로써 유용했기 때문이다.
필요할 땐 ‘우리 민족’이고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면 ‘중국인’이라는 것인가?
쇼비니즘
우파들이 이런 모순을 감추고 모두 싸잡아 ‘한국의 이익을 침해하려는 중국인’으로 매도하는 것은, 친미·반중을 기조로 하는 한·미·일 동맹 강화에 우호적인 여론 조성에 간접 이용하려는 목적 때문일 것이다. 또 국수주의 선동으로 우파층을 결집시키고 대중의 시선을 엉뚱한 쪽으로 돌리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이런 방향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그리고 한국 사회를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의 쇼비니즘 언사에 속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