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교육개혁’:
가르치지 않고 스펙이나 쌓게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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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교육개혁’을 노동·연금 ‘개혁’과 함께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해야 할 3대 과제로 꼽는다.
윤석열이 신년사에서 ‘교육개혁’을 다시금 강조한 직후 교육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업무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말에는 대학 설립·운영규정 4대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도 입법예고했다.
정부는 “지역 균형”, “다양화”, “공정”이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수익성과 경쟁 논리에 교육을 더한층 종속시키는 것이다.
교육부는 ‘교육개혁’의 첫 목표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교육[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도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교육부의 첫번째 임무는 ‘산업 인재 공급’”이라며 “교육부가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고 말했다. 윤석열은 “반도체 인재 양성”을 거듭 강조해 왔다.
교육이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주문인 것이다.
이런 강조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래 역대 정부들의 강조점이었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연구와 교육을 기업의 필요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재편하게 하고, 산업과의 연계(산학협력)를 강조했다. 또 대학 자신이 기업처럼 수익 창출에 나서도록 부추겼다.
여기에 저출산으로 대학 정원 축소라는 양적 구조조정의 필요성까지 더해저 ‘경쟁력’ 없는 대학들은 적극 퇴출시키는 정책도 추진됐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방향을 더한층 밀어붙이려 한다.
경기 침체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도체처럼 세계적으로 중요하고 한국 경제가 강점을 보이는 산업에서 확실히 우위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규제 완화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그나마 있던 대학 규제들도 대폭 완화하려고 한다.
대학의 정원 규제, 학사 규제, 재정운영 등과 관련한 규제를 없애서, 자유롭게 학과 신설·통폐합, 대학 간 통폐합을 할 수 있게 하려 한다. 특히 반도체 같은 첨단 분야에 대해서는 다른 학과 정원을 줄이지 않고도 학과를 신설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교육부 장관 이주호는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해 위기에 처한 대학들도 학과를 신설하거나 통폐합을 해서 경쟁력을 확보라고 주문했다.
동시에 학교법인이 잔여재산을 처분할 수 있게 보장해 줌으로써 부실 위험이 높거나 회생이 어려운 대학의 퇴출도 쉽게 하려고 한다.
경쟁력 있는 곳은 살리고 아닌 곳은 과감히 퇴출시키자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경쟁의 논리다. 윤석열도 “경쟁 중심의 자유 시장 구도가 교육 분야에도 형성돼야 한다”면서 이 점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조처들이 도입되면, 이른바 ‘경쟁력 없는’ 학과와 교수 퇴출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동안에도 인문·사회·자연·예술 계열의 학과들이 그 표적이 돼 왔다. 대학이 ‘취업 학원’이 되는 경향도 강화될 것이다.
이런 구조조정은 특히 지방 대학들에서 훨씬 심해질 것이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학생과 교직원들의 고통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동안 ‘등록금 장사’를 해 온 재단의 재산은 보호해 주려 한다.
그러나 왜 아무 책임이 없는 학생과 교직원들이 위기의 대가를 떠안아야 하는가. 오히려 대학을 부실하게 운영한 책임이 있는 재단의 재산은 몰수해 국고로 환수하고 국공립화해서 학생과 교직원들이 제대로된 교육과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대학 당국의 돈벌이도 부추기고 있다. 그동안에는 사학법인이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창출한 수익을 대학의 교육에 쓰도록 해 왔는데 이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또 그동안 해 오던 ‘대학기본역량평가’를 중단하고 이를 아예 기업식 재무 평가 방식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채무가 많은 곳은 지원을 끊겠다고 한다.
재정 위기에 처한 대학들더러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 살아남으라고 한 것이다. 캠퍼스 내 상업 시설 확대, 학문의 상업화, 자산 매각 등이 더 날개를 달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육 여건과 교직원들의 처우도 더 공격받을 것이다. 이미 지난 20여 년 동안 친기업적 대학 구조조정이 벌어져, 대학 당국들은 학생들에게 높은 등록금, 교육 여건 후퇴 등을 강요하고, 교직원의 노동 조건도 공격해 왔다.
또, 정부는 겸임·초빙교원 비중을 전체 교원의 5분의 1에서 3분의 1로 대폭 늘려 주려 한다. 비정규 교원을 대폭 늘리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이런 조처들은 기업들에게는 값싸게 양질의 노동력 공급과 기술 개발을 할 기회를, 대학 당국들에게는 더 많은 돈벌이 기회를 제공하겠지만, 평범한 학생과 교직원에게는 불안정과 경쟁 강화를 의미할 뿐이다. 대학 서열화와 지역 불평등, 교육 계급 격차도 더욱 심해질 것이다.
양질의 대학 교육을 위해 정부 지원을 대대적으로 늘려야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대학 지원에 대한 권한을 예산이 훨씬 적은 지자체로 이양하겠다고 한다.
특목고 유지
한편, 정부는 자사고와 특목고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학교 설립부터 운영까지 각종 규제에 특례를 주는 지역을 선정해 운영하는 ‘교육자유특구’도 운영키로 해, 새로운 ‘귀족학교’가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다양성”을 명분으로 고교 서열화와 특권 교육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는 입시 경쟁을 강화할 것이고, 사교육에 대한 의존을 키울 것이다. 윤석열이 “교육개혁”을 강조하고 나서자 민간 교육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
교육 경쟁 강화는 부유한 부모를 둔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즉 계급 불평등이 더 심화할 것이다.
윤석열의 교육 정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그리고 경제 위기 하에서 기업주들의 이윤을 보호하려고 노동자 등 서민층에게 고통을 전가하려는 시도의 일부다.
민주당은 윤석열의 ‘교육개혁’을 비판하지만, 귀족학교 만들기, 일제고사 부활로 경쟁을 강화한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 관련 정책들에 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큰 틀에서 이런 방향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집권했을 때 대학의 기업화와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정의당과 진보당은 정부의 ‘교육개혁’을 비판하는 대체로 올바른 입장을 냈다.
다만 정의당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부실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은 필요하다’고 여지를 남긴 것은 아쉽다(이재랑 대변인 브리핑).
이것이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현재로선 모호하지만, 정부 정책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부실 사학들은 문제이지만, 구조조정은 그 대학의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일이다. 이런 대학들은 정부가 국공립화해서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직원들의 고용을 유지토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