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소수민족과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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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월 17일에 같은 제목으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이 토론은 기획 시리즈 ‘당신이 알아야 할 현대 중국의 모든 것 – 마르크스주의 관점’의 열 번째 시간이었다.
2019년 말 언론인 단체인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중국 측 극비 문건 일부를 폭로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문건에는 신장 지역 수용소 운영 매뉴얼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 풍문으로 떠돌던 수용소의 존재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중국 정부는 그 수용소가 직업 훈련소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중국 내 정치적 반대자들은 신장 지역 저항운동가들을 가두는 감옥이나 노동교화소라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수용소가 위구르인을 멸절시키려는 인종 청소 기관이라고도 주장합니다. 아무튼 그게 정확히 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수감자의 정보와 수치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다들 그저 추측과 추정을 할 따름입니다.
중국 정부의 위구르인과 티베트인 억압은 국제 정치의 중요한 쟁점입니다. 물론 서방 정부들이 중국의 민족 억압을 비난하는 것은 악어의 눈물일 뿐입니다. 그들은 중국을 깎아내리려고 ‘인권’ 운운하는 것일 뿐입니다. 게다가 일부 통계적 오류와 확증편향이 담겨 있어서 서방 정부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 정부가 의심쩍게도 신장 지역에 매우 억압적인 수용소를 수십에서 수백 곳이나 건설해 운영한다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과거에 서방 제국주의를 몰아낸 민족 해방 혁명을 이끌었고, 지금까지도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위구르인과 티베트인 등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이토록 억압할까요?
소수민족 지역의 경제적·지정학적 중요성
먼저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오늘날 중국에서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은 전체 인구의 8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은 중국 전체 면적의 63퍼센트에 이릅니다.
중국 정부는 중국의 인구가 한족과 그 외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소수민족들을 한족 중심의 국가로 통합하려고 전체 인구 집단을 자의적으로 분류한 것일 뿐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한족과 소수민족들이 하나로 묶여 ‘중화민족’이라는 ‘사회주의 대가정(大家庭)’을 이룬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2018년 헌법 개정 때는 아예 ‘중화민족’이라는 표현을 헌법에 삽입했습니다.
그러나 한족, 후이족, 좡족, 만주족 등이 있을 뿐이지, ‘중화민족’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중화민족’은 한족 중심의 강제적인 소수민족 통합을 정당화하는 용어일 뿐입니다.
물론 중국 정부는 티베트나 신장 지역 등 일부 소수민족 지역을 명목상 자치구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자치권을 실제로 보장한 적은 없습니다. 자치구는 중앙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아야 하고, 실권은 대부분 현지 한족 관리들 손에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처음부터 소수민족을 차별하고 억압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21년에 창당된 중국 공산당은 앞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볼셰비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을 포함한 자결권을 무조건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1925~1927년 중국 노동자 혁명이 패배한 후, 중국 공산당은 도시에서 농촌 벽지로 도망갔습니다. 이후 중국 공산당의 성격은 노동자 정당에서 농민 정당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데올로기도 혁명적 사회주의에서 한족 민족주의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1949년 혁명으로 대륙 전체를 장악할 무렵에는 기본 입장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어떤 지역도 중국에서 분리될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당시에 마오쩌둥은 마치 한족 우월주의에 반대한다는 듯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중국은 인구가 많은 한족과 자원이 풍부한 소수민족으로 이뤄져 있다. 인적 요소 없이는 물질적 요소를 활용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 위대한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한족과 소수민족 사이에 좋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진정한 속내는 신생 독립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소수민족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제적 필요는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신장과 티베트에는 석유, 천연가스, 비철금속 등 천연자원이 풍부합니다. 그리고 몽골인들이 많이 사는 네이멍구 자치구에도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이 대규모로 매장돼 있습니다.
네이멍구 자치구에는 희토류도 풍부합니다. 희토류는 최근 국제적으로 경쟁이 격화된 반도체 산업의 핵심 재료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소수민족 지역을 지배하고자 한 데에는 지정학적 이유도 있습니다. 티베트와 네이멍구는 중국이 지역 패권을 두고 갈등을 벌이던 인도나 옛 소련과의 접경 지역이고, 신장과 티베트는 중앙아시아와 인도양으로 향하는 중요한 통로 구실을 하는 지역입니다.
또한 중국의 중요한 강인 양쯔강, 황허강, 화이허강은 물론이고, 인도의 갠지스강, 동남아시아의 젖줄인 메콩강의 수원(水源)도 티베트 등 소수민족 거주지에 있습니다.
특히 신장 지역의 경우, 중국 정부가 미국과의 경쟁 속에서 중요하게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거점이 돼 지정학적으로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들의 분리 독립은 물론이고, 이 지역들에서 분란이 일어나 조금이라도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것을 절대 용인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태도 변화
중국의 민족 정책은 시기에 따라 그 구체적 양상이 조금씩 변해 왔습니다. 이 변화는 중국의 여러 국내 사정, 그리고 제국주의 경쟁 상황과 관계있습니다.
1949년 권력 장악 후 잠시 동안 중국 공산당은 형식적이나마 자치구를 설정하고, 독자적 문화와 언어를 보장하고, ‘한 자녀 정책’의 적용에서 면제해 주는 달래기 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나 1958~61년의 대약진운동과 1966~76년의 문화혁명 기간에는 그 알량한 자치권마저 축소되거나 사라졌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내놓은 명분인즉, 소위 “사회주의 사회에서 민족적 차이는 없어져야 할 구분이며 종교에 기반한 자치도 변화시켜야 할 계도(啓導) 대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문화혁명 기간에 티베트에서는 많은 사찰과 불상이 파괴됐습니다.
신장 지역에서는 이슬람 예배당 모스크가 파괴되거나, 심지어 무슬림들에게 모욕적이게도 돼지 사육장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네이멍구에서는 소련과 몽골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꾀한다는 혐의로 네이멍구 인민당이 박해를 받아, 적게는 1만 6000명, 많게는 5만 명이 살해되는 등 무려 35만 명이 탄압을 받았습니다.
1980년대에는 유화 조치가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로 중국의 인접국들인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이 독립하자 중국 공산당의 태도는 다시 강경해졌습니다.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의 독립이 위구르인과 티베트인 등을 자극해서 소련 해체 같은 일이 중국에서 벌어지는 것은 한사코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2000년대에는 그나마 있던 당근책들마저 거둬들이고, 표준 중국어 교육을 강요했습니다.
최근에는 대(大)중화주의 사상을 널리 퍼뜨리며 동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을 이용해 위구르인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며 조그마한 저항조차 초강경 탄압을 합니다.
소수민족의 저항을 모두 “분리주의 책동”이라고 비난하며 “준엄한 타격”이라는 기조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조처들은 중국이 미국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을 위해 내부 단속을 하려고 벌이는 일입니다.
2021년 8월 시진핑은 7년 만에 중앙민족공작회의를 열었습니다. 중앙민족공작회의는 소수민족 정책을 다루는 중국 공산당 내 최고위급 회의입니다. 그 회의 석상에서 시진핑은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수립하고 국가 통일과 민족 단결을 이루는 사상적 만리장성을 구축해야 한다.”
2017년에만 해도 시진핑은 소수민족과의 관계가 석류 씨가 서로 달라붙은 것처럼 긴밀하게 결합돼 있다고 묘사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 통일과 민족 단결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수민족의 민족주의와 저항
중국에서 한족 민족주의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억압에 반발하며 생겨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민족주의도 외세의 억압 속에서 형성됐습니다. 예를 들어, 1920년대에만 하더라도 위구르인 정체성은 신장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12~1949년 중국 군벌 정권의 지배를 받으며 민족주의 정서가 강해졌습니다.
티베트에서 불교는 티베트인들이 중국 지배에 대한 반대를 표현하는 주요한 통로가 되면서 더 강화됐습니다.
중국 내 위구르인, 티베트인, 몽골인들은 고유한 민족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티베트인들은 ‘역사적 티베트’(또는 대大티베트로 현재 칭하이성, 간쑤성, 쓰촨성, 윈난성을 아우르는 지역)를 자신들의 영토로 여깁니다.
위구르인들은 신장 지역이 원래는 동투르키스탄이며, 서쪽의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에 사는 튀르크인들과 같은 민족이라고 여깁니다.
위구르인, 티베트인,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적·문화적·종교적 전통이 중국 정부에 의해 훼손되고 침해받을 뿐 아니라 경제 발전에서도 소외돼 있다고 여깁니다. 그들이 주로 거주하는 신장위구르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 네이멍구 자치구 세 지역의 경제 수준은 중국의 32개 행정구역 가운데 최하위에 속합니다. 이 지역들로 이주한 한족을 제외한다면 1인당 소득 수준은 더 끔찍할 것입니다.
신장의 위구르인들은 “금사발을 들고 있는 굶주린 사람들”로 흔히 묘사됩니다. 신장 지역에 지하 자원이 많지만 자원 개발 이득을 한족이 다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장은 중국의 최대 면화 생산지이고,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석유 생산 지역입니다.
2000년도 이래로 중국 정부는 서부대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신장과 티베트에 매장돼 있는 광물 자원을 개발하고 육상 실크로드 건설을 위한 교두보 건설에 매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족 인구의 이주가 증가하고 그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위구르인과 티베트인들의 삶은 거의 개선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중국 정부의 민족 억압에 반대해 저항을 벌여 왔습니다.
1959년 티베트 라싸에서 일어난 봉기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원래 1951년 중국 공산당 정부는 티베트의 최고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17개 조항을 놓고 합의를 했었습니다. 골자는 중국 측이 티베트 지배계급을 인정하며 자치 정부를 약속하는 대가로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통치를 받아들인다는 합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강제적인 토지 집산화와 유목민 정착 강요, 티베트 내 중국 공산당 관료들의 차별적 행태 등에 반발하며 1955년 말부터는 티베트인들의 투쟁이 빈번하게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59년 대규모 항쟁이 분출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항쟁이 실패하자 달라이 라마는 지지자들을 이끌고 인도로 가서 망명 정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도 티베트에서는 저항이 끊이지 않습니다. 2008년에는 티베트 자치구를 넘어, ‘역사적 티베트’로 불리는 지역들로 시위가 번져 나갔습니다.
최근에는 신장 지역에서 빈번하게 저항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9년 우루무치에서 일어난 위구르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중국 정부의 강경 탄압에 절망한 일부 위구르인들이 그 후 자살 폭탄 공격 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2020년 5월 네이멍구에서는 몽골어 교육을 폐지하고 표준 중국어로 교육하도록 강요하는 조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저항들에 대해 시진핑 정부는 강경 탄압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구르인들의 저항을 모두 ‘테러’로 규정하고, 많은 위구르인들을 제가 앞서 언급한 수용소로 몰아넣었습니다. 또 신장 지역에 많은 검문소를 세우고, 첨단 장비를 이용해 위구르인들의 신원과 동선을 확인하며, 휴대폰 앱을 감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내리누르고 차별이 강화될수록 위구르인들의 해방 염원은 더 커질 뿐입니다.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과 티베트인 등의 자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는 문제는 결국 제국주의 문제입니다. 중국 국가도 서방 국가들처럼 자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위해 소수민족을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과, 특히 한족에 속하는 중국 좌파는 중국 공산당 당국의 소수민족 억압에 반대하고 분리 독립을 포함한 소수민족 자결권을 무조건 옹호해야 합니다.
일부 좌파는 중국 당국의 소수민족 억압을 애써 못 본 척하거나 서방 정부와 언론의 의도적 왜곡으로 치부합니다. 대개 그들은 중국을 사회주의 사회이거나 적어도 서방보다 진보적인 사회라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사회는 본질이 서방과 똑같은 자본주의 사회이며, 중국 국가는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제국주의 국가입니다.
비록 티베트 민족 운동을 전근대적인 정교일치 사회를 지향하는 겔룩파 불교가 주도하고, 위구르인 저항의 중심에 이슬람주의자들이 있더라도, 억압받는 민족의 저항은 제국주의 지배자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은 중국 제국주의에 맞선 소수민족의 해방을 지지해야 합니다.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서방 제국주의에 기대어서는 해방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가령 미국은 중국의 소수민족 인권 탄압을 명분으로 대중국 경제 제재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제재는 소수민족이든 한족이든 평범한 중국 인민들을 훨씬 더 큰 고통에 빠뜨릴 뿐입니다.
중국의 한족 노동자들이 소수민족 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지배에서 벗어나서 민족에 따른 분열 시도에 맞서 싸우는 데에 결정적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한족과 비한족 대중의 연대와 단결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신장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 사고에 분노한 한족과 소수민족이 함께 ‘백지 시위’를 벌인 것이 그런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1989년 톈안먼 항쟁(‘천안문 항쟁’이라고도 불림) 때에도 위구르 청년이 운동의 핵심 지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한족 대중과 소수민족의 이런 연대와 단결 투쟁은 중국에서 기존 체제를 전복하고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를 성취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는 데에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