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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민족 해방 투쟁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의 구실을 고려하면서 민족 해방 요구에 대한 태도를 정해야 한다고 토마시 텡글리-에번스가 설명한다. 이 기사는 2014년에 쓰였다.

시리아 내전과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 등으로 민족 해방 문제가 또렷한 초점이 됐다.

왜 소수의 제국주의 열강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일까? 전쟁과 민족 억압은 태곳적부터 이어진 민족들의 반목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민족들이 원래부터 있었다는 생각은 상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민족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불과 수백 년 전 자본주의와 함께 생겨난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봉건 시대 영국이 그랬듯이 서로 다른 계급이나 지역의 사람들이나 서로 다른 언어나 방언을 썼다. 상이한 계급과 상이한 직업의 사람들이 상이한 세금을 내고 상이한 법정에서 재판받았다.

중앙 국가가 군대를 징집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그다지 크게 끼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16세기에 새로운 상인 계급이 봉건제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교역망은 이미 도시에서 국민국가를 발전시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장을 위한 통일된 언어와 통일된 법률이라는 사상은 새로운 상인 계급의 이해관계에 들어맞았다.

영국과 네덜란드처럼 새로운 체제가 지배적이 된 나라들은 번영을 누렸다. 그러자 다른 나라들도 같은 길을 따르려 했다.

1789년 이후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들은 시민권과 “천부 인권”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 그 이데올로기는 같은 민족에 속한 모든 사람이 계급을 불문하고 같은 시민이 됨으로써 이익을 본다는 사상을 고취했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국가를 운영하는 민족의 하나가 되는 것이 유일한 나아갈 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민족, 즉 자신들의 국민국가를 세우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은 많은 경우 기성 강대국들의 억압과 지배에 직면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아일랜드에서 베트남에 이르는 민족 해방 운동들을 지지해 왔다. 노동자들이 해방을 쟁취하려면 국제적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말이다.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영국에 독립을 요구하는 1916년 아일랜드 봉기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을 맹비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식민지 소수 민족들의 반란 없이 사회혁명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은 사회혁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순수한 사회혁명을 기대하는 자는 결코 살아생전 혁명을 보지 못할 것이다.”

레닌의 볼셰비키에게 민족 문제는 결코 허투루 다룰 수 없는 문제였다. 레닌이 활동하던 차르 치하의 러시아 제국은 “민족들의 감옥”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말이다.

1905년 러시아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혁명을 일으키자, 러시아 제국의 주변부에서도 억압받는 민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폴란드 독립 요구가 노동계급을 분열시킬 것이라며 그 요구에 반대한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판하면서 레닌은 이렇게 썼다.

“폴란드의 ‘민족주의’ 부르주아지를 돕지 않으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로자 룩셈부르크는 … 러시아의 흑색단을 돕고 있다.”

흑색단은 대(大)러시아 국수주의를 내세워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같은 ‘열등한’ 민족을 학살한 러시아 깡패 집단이었다.

계급

레닌의 주장은 노동계급이 피억압 민족의 권리를 지지해야만 오히려 분열하지 않고, 지배자들의 반동적 사상과 결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민족의 민족적 열망을 지지하는 것이 자동으로 제국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2014년 크림반도 주민의 대다수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지지했지만, 그것은 애국주의와 제국주의를 강화시켰을 뿐이다. 그것은 또한 크림반도에서 소수 인종인 타타르족에 대한 차별을 팽배하게 했다.

혁명가들은 언제나 민족 해방 문제에 정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1948년 많은 사회주의자가 이스라엘의 ‘자결권’을 지지했다. 그러나 신생 이스라엘 국가는 제국주의 열강의 영향력을 키우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강탈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었다.

영국이 인도에서,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미국이 베트남에서 겪은 패배는 정치 위기를 심화시키고 제국주의에 커다란 타격을 줬다. 그러나 상황이 언제나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 운동은 스스로 제국주의에 협조하거나 다른 민족주의 운동을 무자비하게 공격할 수 있다.

레닌이 강조했듯이 사회주의자는 “모든 민족적 요구와 분리 독립 요구를 노동자 투쟁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주의적 선동에 반대해야 할 때도 있다.

발칸반도처럼 자본주의가 늦게 발달한 지역에서 분리 독립 요구는 수많은 민족주의 집단들의 다툼으로 귀결될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발칸반도에서는 공산당이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유고슬라비아를 건국했다. 유고슬라비아는 1980년대 후반 경제 침체 전까지는 비교적 조화롭게 유지됐다.

1980년대에 경기가 침체하자 유고슬라비아 노동자들은 자신의 조건을 방어하려고 대중 파업을 벌였다. 그러자 상이한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특정한 민족적 요구에 대한 지지로 돌리려고 애썼고, 결국 그렇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유고슬라비아는 분쟁과 인종청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차별받는 집단인 코소보 알바니아인들 사이에서 코소보해방군(KLA)이 성장했다.

그러나 코소보해방군은 발칸 지역에서 영향력을 획득하려 애쓰던 서방 제국주의 세력들과 동맹을 맺었다.

제국주의 세력들

코소보해방군은 서방 제국주의 세력의 도구가 됐다. 즉각적인 코소보 독립 요구는 전적으로 반동적인 것이 됐다.

미국 해병대에 무기를 넘겨주는 코소보해방군 ⓒ출처 미 국방부

세계화된 세계에서는 어떠한 투쟁도 제국주의와의 관계를 살펴보지 않고는 그 성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제국주의는 단지 미국과 같은 힘센 국가가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제국주의는 경쟁하는 여러 자본주의 국가들의 세계적 체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이 소수의 거대한 기업들로 집중됐다. 그 기업들은 국제적으로 활동하면서 그들 사이의 상호의존성과 국가와의 상호의존성이 커졌다.

제국주의의 핵심은 가장 강력한 국가들이 저마다 세계를 지배하려고 다투면서 세계를 분할하고 또다시 분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민족자결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 후 여러 민족 해방 운동이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 이는 노쇠한 유럽 제국들이 쇠퇴하면서 세력 균형이 바뀐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식민 지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투쟁 때문이었다.

제국주의 국가와 피억압 민족의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결국 제국주의를 편드는 것이다. 실천에서 이는 사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 싸우는 민족 해방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때때로 이런 투쟁들은 제국주의 본국 내의 위기를 초래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에 맞서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에서 일어난 해방 투쟁은 포르투갈의 정치혁명을 자극했다.

식민지 해방 투쟁으로 인해 20만 명에 달하는 포르투갈 군대가 국가 예산의 절반을 빨아들였고 군 내부에서 불만이 커졌다.

1974년 일단의 군 장교들이 포르투갈 독재 정권을 타도했고, 이는 훨씬 큰 사회적 격변을 촉발했다.

그 투쟁은 한동안 포르투갈 자본주의를 위협했다. 그러나 전후 민족 해방 운동 중 어느 것도 진정한 사회주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제국주의하에서 고통받던 여러 가난한 나라에서는 중간계급이 자신들의 국민국가를 수립하려고 분투했다.

서방과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이 “냉전”을 벌이던 시기에, 대부분의 억압받는 민족들은 소련 ‘공산주의’ 모델에 주목했다.

그 모델은 국가자본주의의 한 형태를 통해 현대화를 성취해서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민족 해방 운동들이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사실 국가자본주의였던 것이다.

붕괴

1990년대 초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하자 많은 해방 운동들이 서둘러 제국주의와 타협했다.

민족 해방 투쟁의 황금기는 지나간 지 오래다. 예컨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민족주의적 지도부는 이스라엘과의 ‘평화 프로세스’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이라크의 상이한 쿠르드족 분파들은 미국 제국주의와 협력하고 있다.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처럼 집권한 민족 해방 운동들도 제국주의와 화해했다.

그러나 민족 해방 운동은 여전히 제국주의에 타격을 줄 수 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이라크에서 민족적 투쟁을 촉발했고 미국은 지정학적 패배를 겪었다.

튀르키예령 쿠르디스탄에 쿠르드인들의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것도 제국주의를 약화시킬 것이다.

제국주의는 전쟁과 억압을 낳는다. 민족 해방 투쟁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지지는 그것이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제국주의 편에서 싸우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아랍 혁명은 광범한 사회 운동들과 노동자 반란이 어떻게 중동 전역에 해방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힐끗 보여 줬다.

이 글에서 설명하는 분석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적용한 것을 보려면 본지 490호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해방 운동: 특히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과 관련해’(최일붕)를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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