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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좌파의 총선 패배:
시리자는 왜 실패했는가

시리자가 2015년 총선에서 승리했을 때, 많은 좌파들이 이제 긴축을 끝장낼 길이 열렸다고 봤다. 하지만 집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자는 지지자들을 저버렸다. 올해 5월 21일 그리스에서 시리자가 몰락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정부가 구성되지 않아 오는 6월 25일에 2차 총선을 치른다.) 이사벨 링로즈가 시리자 몰락의 원인을 살펴본다.

시리자가 2015년 그리스 총선에서 승리했을 때, 유럽 전역의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이 환호했다.

당시 기업주들과 정부들은 2008년 금융 위기에 대응해 도처에서 혹독한 긴축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긴축을 끝장내겠다고 공약한 정당이 마침내 집권한 것이었다.

시리자는 긴축에 맞서 투쟁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대안적 전략을 제시하는 선봉이 될 듯했다.

시리자의 부상은 그리스에서 분출한 거대한 반(反)긴축 투쟁 물결의 한 표현이었다. 2009~2014년 그리스에서는 총파업이 32차례 벌어졌다.

보건·교사·지자체 공무원·이주·청소 노동자들과 학생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위대한 투쟁을 벌였다.

은행가들을 구제하는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우파 여당 신민주당은 2015년 총선에서 전체 300석 중 고작 76석을 얻었다.

전통적 좌파 정당이지만 신민주당과 정부에 참여해 긴축을 강요했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 사회당(PASOK)은 13석밖에 얻지 못했다.

“그리스사회당화(化)”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언제까지나 정계의 일부일 것처럼 보이던 정당이 궤멸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하원의원 27명(주로 노동당 좌파 의원)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결의문을 공동 발의했다. “영국 하원은, 오랜 긴축과 고통의 나날들을 끝내겠다고 약속한 시리자의 선거 승리를 축하합니다.”

독일 사회주의 정당 좌파당(디링케)은 이런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리스에서 시작해 유럽을 바꾸자.”

하지만 집권 몇 달 만에 시리자는 우파 정부였던 전임 정부보다 더 혹독한 긴축 정책을 도입했다. 그리고 최근 선거에서 현재 집권 중인 신민주당은 지지 기반을 굳힌 반면 시리자의 득표율은 20퍼센트에 불과했다.

시리자의 실패 때문에 사회당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심지어 사회당은 6월 25일 2차 총선에서 시리자보다 많이 득표하기를 기대한다.

긴축을 선택하다

시리자는 정부 임기 시작 직후 도전과 선택에 직면했다.

기업주, 금융권, 유럽연합 기구들은 긴축 완화를 쉽사리 용인할 생각이 없었다. 그랬다가는 다른 나라에서도 노동자들이 영감을 얻어 좌파 정부를 선출할까 봐 우려했다.

그래서 기업주, 금융권, 유럽연합 기구들은 그리스 유권자들의 표심에 콧방귀를 뀌고는, “본보기” 삼아 시리자를 꺾어 버리려고 마음먹었다.

당시 시리자 정부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자신이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 재무장관들을 만나 “경제 쟁점으로 논쟁”하려 했지만, 상대편은 “그저 침묵하며 쳐다만 봤다”고 했다.

바루파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들 앞에서 스웨덴 국가(國歌)를 불렀어도 똑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으로 이뤄진 ‘트로이카’는 긴축을 더 많이 실시해서 금융권을 구제하느라 발생한 국가 부채를 갚으라고 요구했다. 시리자 정부는 후퇴의 명분을 얻으려 트로이카의 긴축 요구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하지만 기층에서 벌어진 대중적 캠페인의 결과로, 그리스인들은 트로이카의 안을 61퍼센트 “오히”(OXI, 반대) 투표로 거부했다.

이 국민투표 결과는 트로이카와 결별하고 기업주·금융기관·부유층에 맞서는 신호탄이 됐어야 마땅했다.

그런 투쟁을 위해서는,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그리스 투쟁에 연대하고 자국 지배자들에 맞서 투쟁하자고 호소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투표 후 며칠 만에 시리자는 꼬리를 내리고 노동계급에 대한 긴축 공격 — 연금 지급 연령을 높이고 의료비를 인상하고 교육 재정을 삭감하는 등 — 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시리자 정부는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전투 경찰로 진압했다.

시리자는 집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지자들을 배신했다. 시리자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출처 시리자

시리자가 후퇴하고 배신하게 된 주된 원인은 시리자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나, 다른 인사들의 개인적 견해 때문이 아니었다.

시리자의 후퇴와 배신은 기업주, 금융기관, 기성 체제와의 협력만이 현실적이라고 본 전략 때문이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자매 단체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의 지도적 회원이자 그 기관지 〈노동자 연대〉의 편집자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시리자는 결코 반자본주의 세력인 적이 없었습니다.

“시리자의 강령은 체제 개혁이었습니다. 국가, 지배계급, 경제 전반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이 [시리자의] 한계선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시리자는 중대한 분열을 겪었다. 치프라스는 사임을 선언하고 새로 선거를 치러 승리한 후 트로이카와 연금 최대 30퍼센트 삭감안에 합의했다.

시리자는 “자본과 타협”해 개혁을 이루겠다는 도박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자본이 시리자에게서 거듭 양보를 얻어냈고, 그러고도 더 많은 양보를 요구했다.

난민 막는 국경 장벽 강화

시리자는 난민 문제에서도 방향을 크게 틀었다. 2015년에 수많은 난민들이 그리스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려 시도했다. 시리자의 태세는, 난민 환영 입장을 내던 것에서 국경 장벽을 더 높일 방안을 앞다퉈 주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시리자는 난민을 억류하는 수용소를 세웠고 튀르키예·유럽연합과 이주민 배척에 합의했다. 최근 선거들에서 시리자가 신민주당을 상대로 다툰 쟁점은 [난민 환영이 아니라] 국경 장벽 건설 비용을 어디서 끌어올지였다.

시리자는 노동조합의 단체 협상을 제약하는 반(反)노조법도 도입했고, 민영화도 추진했다. 시리자의 민영화 정책 중 하나인 철도 민영화는 결국 57명의 목숨을 앗아간 2023년 2월 열차 사고를 낳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2019년 총선에서 시리자의 득표는 고작 31.53퍼센트에 그쳤고 정권을 잃었다.

그 후 시리자는 집권 여당 신민주당의 팬데믹 대응은 비판하지 않으면서 노동자 대중에게는 파업·시위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시리자는 노동자 운동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도 비난했다.

그리고 열차 사고 후인 2023년 3월 8일에 노동자 300만 명이 민영화, 임금 삭감, 긴축에 반대해 파업을 벌였을 때도 시리자는 침묵했다.

시리자 정부가 추진한 철도 민영화는 올해 초 57명의 목숨을 앗아간 열차 사고의 한 원인이었다. 그리스 열차 사고에 항의하는 2023년 3월 8일 파업 시위대의 모습 ⓒ출처 그리스 〈노동자 연대〉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회원 페트로스 콘스탄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시리자는, 노동계급 투쟁을 끌어올리는 전략으로는 변화를 실현하지도 정부를 타도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리자가 2012년에 최대로 부상했던 것은 시리자가 노동계급 투쟁을 지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리자가 노동계급 투쟁이라는 전략에서 멀어진 이유는 국가 운영의 연속성을 더 중요하게 봤기 때문입니다. 시리자는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을 팽개친 것입니다.”

사회주의 단체들 사이에서는 시리자에 대한 대응을 두고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그리스의 많은 다른 좌파들과 달리 시리자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줄곧 시리자에 맞서 선거에 출마한 반자본주의적 선거 연합 ‘안타르시아’에 속해 있었다.

가르가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이견은 투표로 변화를 이룰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우리는 시리자가 언사는 급진적이지만 여전히 의회 정치에 매몰된 정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의회 정치란 막다른 길이죠.

“시리자로의 입당은 의회주의적 활동 방식을 수용하고 그 규율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그것도 예상보다 빨리 말이죠.”

시리자가 우경화하면서, [시리자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바루파키스 등 몇몇 사회주의자들은 시리자보다 “더 나은” 버전의 의회 정당을 만들거나 “시리자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법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시리자 2호기는 그 자신의 기준으로 봐도 실패했다. 바루파키스의 정당 “유럽현실불복종전선”(MeRA25)은 5월 총선에서 의석을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거리와 일터에서의 저항

시리자의 교훈은 투쟁으로 정치적 전환을 이룰 수 없다거나 투쟁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의회를 우선시하면 함정에 빠진다는 것이다. 어떤 선거 개입이든 거리와 일터에서의 저항에 종속돼야지 그 반대가 돼서는 안 된다.

콘스탄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계급의 의식은 급진화하는데 시리자는 우경화하면서 거대한 단절이 생겼습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무슬림 혐오에 맞서는 과제는 극좌파가 맡게 됐습니다. 국가 경영에 치중하는 시리자의 전략이 낳은 일입니다.

“현재 시리자는 급격히 와해되고 있습니다. 혁명적 좌파가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는 것, 시리자에 대한 실망감이 운동·투쟁·저항 건설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의 그리스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 그리스 총리이자 신민주당 대표인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는 6월 25일 2차 총선을 선포했는데, 자신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길 기대하고 있다. 반면 시리자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리고 시리자 지도부는, 특별한 시기에는 시리자가 지금보다 급진적이었다고 말합니다. 지금 바뀐 것은 시리자가 아니라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신민주당에 맞서 투쟁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반격이 승리할 수 있다는 기류를 노동계급 내에서 일으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