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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급제 근로기준법 개정안 발의:
‘동일임금’ 명분 저임금 고착화 추진을 막자

국민의힘 국회의원 김형동(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 간사)이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는 이 개정안을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한 것이라고 하며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개정안 발의의 핵심 목적은 연공급제를 무력화해 임금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법안 발의 취지에 최근 대법원의 임금피크제(일정 연령 이상에 도달하면 정년까지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 무효 판결이 언급되며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정부는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직무급제를 추진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무급제 폐지”를 요구한다 ⓒ출처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최근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직무성과급제 도입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며 압박하고 있다. 개정안이 법제화된다면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기업에도 직무급제 도입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직무성과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일부이다. 정부는 이를 경사노위나 고용노동부 산하 ‘상생임금위원회’를 통해 추진하려 했는데 지지부진하다. 정부가 모델로 부각하려 한 “조선업 상생협약”은 주목을 끌지 못했고 효과도 없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아예 직무급을 법으로 강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 추진에 속도를 내지 못해 온 상황을 타개하려는 다급함의 발로이다.

근로시간 개악안(이른바 “주69시간 근무제”)과 달리 이 법안은 야당의 협조를 얻기 쉬울 것이라고 보고 법안을 발의했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직무급제를 도입했고 이번 개정안에 대해 국회 환경노동위 야당 간사도 긍정적인 입장(〈조선비즈〉)을 표명했다.

직무급제: 동일노동 동일임금?

국민의힘은 개정안이 기간제‍·‍파견 노동자 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속임수에 불과하다.

이미 기간제법이나 파견법에서 임금 등 근로조건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서도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지급을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법 규정이 현실에서는 공문구라는 것이다.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면 비정규직‍·‍여성 등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면 될 것이다.

직무급제는 임금 차별 해소책이 아니라 임금 억제책일 뿐이다. 현재의 임금체계에서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증가하는 연공성을 제거하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내세워 직무급제를 추진했지만, 당시 도입한 공공기관 무기계약직과 광주형 일자리 직무급제는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것일 뿐이었다(하향평준화).

고용 형태와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오로지 투쟁을 통해서 좁혀져 왔다.

게다가 직무 평가와 가치 부여는 온전히 사용자의 권한(이번 개정안도 이를 명시하고 있음)으로, 사용자들은 이를 이용해 노동자들을 줄 세우고 분열시킬 수 있다.

노동운동 일각의 주장처럼 설사 노조가 직무 평가에 참여한다고 해도, 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보다는 노동자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직무급제에 대해 노조가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혼란

그런데 진보적 지식인과 좌파의 일부는 이번 법안에 혼란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 인터뷰를 보면 “국민의 힘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이병훈 중앙대 교수)고 환영하거나 “동일가치노동 기준에 대해 노사가 합의하는 방향으로 수정돼야 한다”(조돈문 카톨릭대 교수)는 주문을 덧붙이는 수준의 입장이 나오고 있다.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 이은주 의원은 우려스럽게도 “국힘의 동일노동-동일임금 입법 환영”의 입장을 냈다. 정의당은 지난 대선에서 “직무급형 임금체계로 전환”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임금 격차가 기업별 연공서열 때문이라는 잘못된 시각의 발로다.

그러나 연공급제에서 직무급제로의 임금 개편은 임금 비용을 줄이려고 사용자들이 2000년대부터 집요하게 추진해 온 것이다. 이 사용자들이야말로 진정한 기득권 세력 아닌가?

아울러 이은주 의원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해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정부의 탄압에 항의해 한국노총 지도부도 사회적 대화 중단을 선언한 마당에 투쟁보다 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임금체계를 개악하는 것이 만만한 문제는 아니다. 생계비 위기 속에서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도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실질임금은 삭감돼 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공공기관 노조가 직무성과급제 개편 등에 반대해 공동투쟁을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위기도 계속되고 있다. 투쟁에 나서기 좋은 상황이다. 이런 기회를 이용해 임금체계 개악 시도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혁명적 좌파는 정부의 위선과 이간질을 폭로하며 기층의 투쟁이 강화되는 것을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