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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난민선 침몰:
유럽연합의 국경 통제가 낳은 참사

얼마 전 타이타닉호 관광 잠수정 침몰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때에 그리스 앞바다에서는 더 끔찍한 해양 사고가 벌어졌다. 6월 14일 750명이 탄 난민선이 침몰해 최소 78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구조된 인원은 100명이 간신히 넘는다. 지중해에서 벌어진 참사로는 수십 년 만에 최대 규모다.

끔찍한 비극 앞에서 참사의 책임을 둘러싼 의혹이 잇달아 제기됐다. 하지만 생존자들의 증언과 그 밖의 증거들을 통해 이것이 인재(人災)였음이 계속 폭로되고 있다.

이 참사는 어쩔 수 없었던 사고가 절대 아니다. 명백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이다.

이것은 살인이다.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라고 제대로 규정해야 한다.

이 참사의 책임은 구조 실패의 책임을 덮느라 바쁜 무자비한 그리스 해안경비대와, 유럽연합 국경 통제의 기조를 이루는 반(反)이민 정책에 있다.

6월 14일,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온 남녀노소 약 750명이 타고 있던 난민선이 그리스 남부 소도시 필로스 앞 약 80킬로미터 해상에서 침몰했다.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다 6월 14일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공개한 침몰 전 난민선의 모습 ⓒ출처 그리스 해안 경비대

그리스 사법부는 이 선박을 몰았던 밀입국 브로커 9명을 서둘러 기소했다.

하지만 이 참사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당국이 난민선의 구조 요청에 응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국경을 걸어 잠그고 밀입국 브로커들에게 뒷문을 열어 주는 국경 통제 정책 탓이기도 하다.

구조에 굼떴던 그리스 당국은 참사 책임을 부인하는 데서는 재빨랐다. 게다가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난민선을 견인하려다가 배가 뒤집혔을 가능성마저 있다.

한 생존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해안경비대가 밧줄을 당기자 배가 좌우로 기우뚱하기 시작했어요.

“해안경비선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배가 왼쪽으로 기울었고, 침몰했어요.”

유럽·영국으로 오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루트가 없는 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국경을 틀어 막는다고 해서 난민들이 더 나은 삶과 안전을 찾아 유럽과 영국으로 가려는 시도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국경을 통과하기가 힘들어질수록 브로커들의 사업만 더 번창할 것이다.

죽음을 끝낼 방법은 난민·이주민에 대한 적절한 지원과 국경 개방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 시위 현장에서 전하는 소식

참사 직후인 6월 15일 그리스 전역에서 시위가 분출했다. 그리스의 반(反)파시즘 단체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KEERFA)의 활동가 페트로스 콘스탄티누스는 이렇게 전했다. “시위 일정을 알린 지 하루도 안 됐는데 시위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실로 장관입니다.

“아테네에서는 3만 명 넘게 시위에 나왔습니다. 참사 현장 인근 항구 도시부터 그리스 북부에 걸쳐 전국 스무 곳에서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번 대규모 하루 행동은 난민에 대한 연대와 국경 봉쇄 정책에 대한 분노를 보여 줬습니다.”

시위대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그리스 해안경비대의 술책에도 분노했다고 콘스탄티누스는 전했다.

난민선 침몰 참사 후 6월 15일 그리스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 ⓒ출처 그리스 〈노동자 연대〉

야만적 조처들

콘스탄티누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신민주당 정부도 이번 참사에 책임이 있습니다.

“신민주당 정부는 지중해와 에브로스강에서 난민들을 내쫓는 데에 야만적인 방법을 동원하기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정부는 입국 난민 수를 2019년의 5퍼센트로 줄였다고 으스대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에 입국하려는 난민들을 국경 경비대가 어떻게 야만적으로 내치는지 설명했다.

“그들은 그리스의 군도(群島)로 들어오려 애쓰는 난민들을 잡아다가 구명보트에 태우고는 바람이 튀르키예 쪽으로 불 때 바다로 떠내려 보냅니다.”

콘스탄티누스와 KEERFA 활동가들인 야소나스 아포스톨로풀로스와 자베드 아슬람은 파시스트들에게서 공개적으로 살해 협박을 받았다. 콘스탄티누스는 “시위가 매우 성공적이어서, 그리고 파시스트들이 의회에서 다시 의석을 얻으려고” 이런 협박이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겁을 주려는 전술입니다. 아무도 그리스 해안경비대를 거역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죠. 그렇다고 거리에서 우리와 맞붙지도 못하는 겁니다.”

현재 KEERFA는 희생자들과 그리스에서 난민 인정 심사를 받는 중인 생존자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럽국경해안경비대와 그리스 정부의 만행

BBC가 입수해 분석한 증거에 따르면, 난민선은 침몰 전에도 최소 7시간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는 참사 당시 난민선이 이탈리아로 무사히 항행하고 있었다는 그리스 정부의 주장과 배치된다.

그러더니 정부 대변인은 사태의 위험성을 파악하려는 해안경비대의 승선을 난민들이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해안경비대 측의 사건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아 그들이 일부러 난민들을 구조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졌다.

생존자들은 난민선의 참혹한 상황을 증언했다. 식수가 모자랐고, 침몰 전에 이미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스의 사회복지사 아레티아 지에주는 이렇게 말했다. “한 남성은 두 시간이나 아이들의 시신들 틈에서 헤엄치다가 발견돼 구조됐어요.

“난민들은 물도 없이 닷새나 바다에 있었어요. 바닷물과 소변을 마시고, 선내 냉장고의 냉각수를 마시며 버텼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복통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생존자들은 이토록 끔찍한 일을 겪었지만, 다수는 강제 추방 당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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