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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쳐가는 미국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대리전을 벌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바보나 거짓말쟁이뿐이다. 최근 사례를 두 가지 들어 보겠다. 지난달 〈워싱턴 포스트〉는 이렇게 보도했다. “2015년 이래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옛 소련이 만든 우크라이나의 [정보 ─ 캘리니코스] 기관들을 굳건한 대(對)러시아 동맹으로 탈바꿈시키려고 수천만 달러를 썼다.”

토사구팽 신세가 될 위기에 빠진 젤렌스키 ⓒ출처 백악관

심지어 CIA는 우크라이나 보안국 내에 자신과의 연락 업무를 담당할 특수 부서 제5부를 창설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에는 영국 비밀정보부와 협력하는 제6부도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로 우크라이나 보안국과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은 공격적인 암살·파괴 공작을 수행해 왔으며 지난해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폭파도 그런 공작의 하나였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더 최근에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전직 CIA 고위 관료”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 “우리는 1970년대 [이스라엘 대외 정보 기관] 모사드와 유사한 정보 기관들의 집합체가 탄생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1970년대는 모사드가 전 세계에서 암살 공작을 벌이던 때였다.

강대국들이 안보·정보 기구에 그토록 깊이 침투해 있는 국가는 온전한 주권을 행사한다고 보기 어렵다. 바로 그 강대국들에 의해 외교가 좌지우지되는 국가도 온전한 독립국으로 볼 수 없긴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정당 ‘국민의 종복’의 원내대표 다비트 아라카미아는 매우 화제가 된 인터뷰에서 세간에 널리 떠돌던 아래 루머가 사실임을 확인해 줬다.

아라카미아는 이렇게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튀르키예 도시 이스탄불에서 있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협상은 평화협정 체결에 거의 근접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주요 요구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국으로 남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젤렌스키 정부가 이 요구에 응할지를 두고 망설이던 2022년 3월 말, 당시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키예프(키이우)로 날아가 “우리는 저들과의 어떤 협정에도 서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전쟁을 벌이자!” 하고 말했다.

핵전쟁에 의한 멸절을 위협하는 전쟁, 수만 명의 목숨을 계속 앗아가는 전쟁을 지속하는 것보다 더 사악한 일은 떠올리기 어렵다. 이런 정책의 동기를 그 옹호자 중 한 명인 신보수주의자 맥스 부트가 최근 간단명료하게 표현했다. “미국에게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판돈이 걸려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무장력에 대규모 손실을 안기고 있고, 그 덕에 러시아는 향후 몇 년 동안 이웃한 나토 국가들에 전보다 덜 위협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점점 더 지쳐가는 것은 분명하다. 세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은 제한적 성과만을 냈다. 영토의 5분의 1을 점령하고 단단히 방비를 갖춘 러시아군을 결정적으로 돌파하기에는 우크라이나의 공군력과 병사 수가 부족하다. 젤렌스키는 최근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 장군을 질책했는데, 잘루즈니가 이 전쟁이 “교착 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이제 전황이 러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본다.

둘째, 우크라이나에 군사·재정 지원을 계속 쏟아붓는 데 대한 정치적 지지가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시들해지고 있다. 현재 미국 하원을 좌지우지하는 공화당 우파는 추가 지원에 대개 반대하고, 이는 유럽 극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유럽연합은 재정을 둘러싼 이례적인 갈등에 빠졌는데, 헝가리 총리 오르반 빅토르는 이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과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가로막고 있다.

셋째, 중동에서 또 하나의 위험하고 유혈낭자한 전쟁이 벌어져, 우크라이나의 가장 중요한 두 지지자들인 미국과 독일의 신경을 분산시키고 있다. 양국 모두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가자지구 공격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대화에 나서도록 미국과 독일이 압박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독일의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는 이렇게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의 최대 무기 지원국인 양국은 지원하는 무기의 양과 질을 제한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정부가 푸틴 정권과 대화에 나서게끔 압박하기로 마음 먹었다. ‘젤렌스키는 상황을 이대로 계속 끌고 갈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독일 정부 소식통이 본지에 한 말이다. ‘젤렌스키는 평화 협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

이 보도가 참말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젤렌스키는, 후견인이 큰 비용을 떠안으면서까지 지원할 가치가 더는 없다고 판단했을 때 그 대리인이 얼마나 쉽게 버려질 수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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