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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구렁텅이에 내몰린 전세 사기 피해자들:
“정부는 피해자가 아니라 은행만 위하고 있습니다”

전세 사기 특별법이 시행된 지 4개월이 지났다. 정부는 이 법으로 피해자들이 대단한 혜택이라도 받는 양 홍보해 왔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고통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최근 한국도시연구소가 전세 사기 피해를 입은 1579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를 보면 응답자 절반 이상(52.8퍼센트)이 피해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액 회수할 수 있다고 답한 가구는 11.9퍼센트에 불과했다.

전세 사기를 당한 주택의 70퍼센트가 은행에 선순위 근저당이 잡혀 있어서 집이 경매에서 팔려도 그 돈은 대부분 은행으로 간다. 선순위 근저당이 없는 가구도 집값이 보증금보다 낮아 큰 손해를 봐야 한다.

게다가 전세 사기 피해자 중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사람이 83퍼센트에 달했다. 많은 피해자가 사기꾼들이 떼먹은 돈을 갚느라 빚에 짓눌려 있는 것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10명 중 2명은 신용불량자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

특별법을 개정하라 10월 10일 서울역 앞에서 진행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의 기자회견 ⓒ정선영

특별법의 핵심 내용은 피해자들에게 대출 지원을 해 줄 테니 경매로 집을 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의 실태조사에서 보듯 이런 방안은 피해자들이 큰 손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막대한 빚을 떠안아야 하는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정부가 말한 대출 지원 혜택을 받는 사람도 매우 소수다. 대출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10월 5일 정부 발표만 봐도 이제까지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6000여 명 중에 전세 대출을 저리 대출로 교환(대환대출)한 피해자는 391명에 불과하다.

최우선 변제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변제금만큼 무이자로 전세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를 이용한 사람은 단 2명이다.

부천에서 전세 사기를 당한 서지애 씨는 특별법으로 “아무 혜택도 받은 게 없다”고 말한다.

“저는 [전세 사기를 당한 이후] 은행에서 전세 대출 연장이 안 된다고 해서 가계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별법에 있는 전세 대출 저리 분할 상환 혜택도 못 받아요. 은행이 전세 대출 연장을 안 해 줘서 그렇게 된 건데 말이죠. 집주인이 제게 줘야 하는 돈을 제가 갚고 있습니다. 정말 열 받아요. 그것도 변동금리라 금리가 5퍼센트나 돼요.”

지난해 집단 행동에 나선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 다수도 특별법으로 별다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추홀구 피해자인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미추홀구 피해자들의 경우, 대부분 보증금이 높지 않아요. 따라서 정부가 최우선변제금 제도(소액 세입자들에게 보증금 2500만~5500만 원을 최우선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법적으로 해석만 달리 해 주면 상당 부분 현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논의는 하지 않고 선근저당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잡소리만 하고 있어요. 그게 가장 억울해요. 은행만 위하고 있는 거죠. 이 정부는 은행의 정부예요.”

많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현재 기준으로는 최우선 변제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정부는 근저당이 설정된 해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소액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추홀구에서는 현재는 보증금이 1억 4500만 원 이하이면 최우선 변제금 4800만 원을 받을 수 있지만, 2017년 기준으로는 보증금이 8000만 원 이하여야지 최우선 변제금을 받을 수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안상미 위원장은 제대로 된 특별법 개정을 위해서는 “선 구제 후 회수 등 보증금 회수 방안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 하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먼저 지급하고 추후에 경매 등으로 자금을 회수하라는 요구다. 지금처럼 많은 피해자들이 빚을 짊어지고 경매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을 바꾸려면 꼭 필요한 요구다.

또 피해자들은 최우선 변제금 적용 대상과 저리 대출 대상을 확대하고, 피해자 선별 기준을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10월 14일 12시 보신각에서 집회를 할 예정이다. 내년 2월 2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세 사기 피해자의 기일을 앞두고 2만 2800명의 서명을 받기 위한 운동도 하고 있다.

전세 사기 문제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 수원에서 피해액이 1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세 사기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확인된 피해 가구만 675곳에 달한다.

이와 같은 전세 사기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부동산 투기 붐을 조장하면서 투기꾼들에게 규제를 완화해 온 결과다. 정부에 명백한 책임이 있다. 정부가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한다.

“쓸 수 있는 게 없는 깡통 특별법” 지난 9월 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100일을 맞아 열린 ‘제대로 된 특별법 개정과 피해지원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 ⓒ출처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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