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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정의당의 평화주의는 정의 없는 평화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한다면서, 팔레스타인인 다수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하마스의 저항은 지지하지 않는 정의당 ⓒ신정환

12월 8일 국회에서 정의당 의원들은 국민의힘·민주당과 함께 사실상 하마스 규탄을 앞세우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에는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을 규탄하는 내용이 없다.(관련 기사: ‘국회, 하마스 규탄 포함 초당적 결의’)

정의당이 전쟁 초기인 10월 11일 하마스의 폭력과 이스라엘의 식민지 점령 폭력을 대등하게 비판하는 양비론적 입장의 대변인 논평을 내놨던 것과 연관 있을 것이다. 그 논평에서 정의당은 이스라엘 국가의 폭력(강탈과 살인)에 맞선 하마스의 불가피한 무장 저항을 ‘모든 폭력은 나쁘다’라는(평화주의) 이유로 지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상전을 개시하고 학살이 극심해짐에 따라 정의당은 이스라엘 규탄으로 강조점을 옮겨 왔다.

가령 11월 17일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시민사회 긴급행동’ 기자회견에서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렇게 발언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침략은 아무런 명분이 없고 즉각 중단돼야 한다. … 글로벌 중추 국가를 외치고 자유를 외치는 윤석열 정부가 메이드 인 코리아 군수 물자를 이스라엘로 팔아 치우는 것을 더 이상 방관만 할 것인가.”

그래서 정의당은 이스라엘 규탄을 회피해 온 민주당보다 나았었다.

그럼에도 정의당은 하마스 규탄 입장을 거둬 들이지도 않았다. 한국 국가의 위상을 고려하는 소위 ‘책임 있는’ 정당으로 행동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국회의 ‘하마스 규탄’ 결의안에서 주류 양당과 입장을 같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평화주의의 모순

평화주의는 흔히 유엔 같은 국제기구로 대표되는 ‘국제 사회’의 합의를 통한 해결을 대안으로 여긴다. 정의당의 평화주의로 말하자면, 정의당은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뿐 아니라 2014년, 2021년 등 이스라엘의 대규모 팔레스타인 공격이 벌어질 때 한국 정부·국회가 유엔의 적극적인 평화 선언과 개입을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유엔이 제국주의 열강의 이해득실에 힘쓰는 기구라는 점과 연관되는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이스라엘을 무장시키고 지원해서 자신의 중동 패권을 지킬 경비견으로 삼아 온 미국 제국주의의 핵심적 구실을 봐야 한다.

바로 미국과 서방의 동맹국들이 유엔에서 거부권 같은 결정적 권력을 행사한다. 유엔은 거의 모든 경우에 쓸모없음으로써 미국의 이해관계에 기여해 왔다.

유엔의 결의안은 강대국들에 대한 구속력이 없고, 미국은 가볍게 무시해 왔다. 가령 2013년 이래 유엔은 이스라엘 국가의 행위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45차례나 채택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속 원하는 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했고 미국은 그것을 지원했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주름잡는 ‘국제 사회’에 기대를 거는 것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정의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평화주의의 난점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정의당의 공식 입장은 러시아가 침략했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 서방 강대국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정의당은 미국과 나토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에 대해 침묵했다.

제국주의 문제를 놓고 못 믿을

그동안 정의당은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학살·탄압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그때 이스라엘 규탄 입장을 내 왔지만, 자신의 주요 과제로 삼지는 않았다.

정의당은 한국 국가·경제의 안정과 사회 개혁을 동시에 추구하며 “국익”이라는 가치 아래 둘을 조화시키려는 (민주당 다음으로 가장 온건한) 개혁주의 정당이다.

그러나 계급으로 분열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체 국민의 이익’으로서의 ‘국익’은 실체가 없거나, 자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포장하는 말이다.

그래서 정의당은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한미동맹을 반대하지 않는다. 미국이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최강 강대국이고 한미동맹은 제국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부차적인 한국 국가의 위상을 올려 주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반대하고 우려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친미·친서방 일변도 외교로 섣불리 중국과의 관계를 해치는 것이다. 미·중 두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국익’에 이롭다고 보는 듯하다.

아마도 이것이 정의당이 미국과 보조 맞추는 주류 양당과 함께 국회의 하마스 규탄 포함 결의안을 통과시킨 원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 경쟁이 본격화되는 첨예한 시기에 살고 있다.

한국은 제국주의 질서의 양상을 좌우할 만한 강대국 대열에 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국의 계급투쟁이 반제국주의 성격을 띠며 강력히 부상한다면 국제적인 반제국주의 운동이 소생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정치 문제들이 제국주의 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가령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해법, 후쿠시마 핵 폐수 투기 용인, 우크라이나 지원, 친이스라엘 행보 등 많은 문제적 행보들이 미·중 갈등 격화와 관련돼 있다.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은 오늘날 좌파의 가장 중요한 시험대이다. 그러나 정의당의 성적표는 거듭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