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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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팔레스타인은 나라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이에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I가 물었다.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I는 요르단 출신이다. 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1948년 나크바 때 팔레스타인에서 요르단으로 이주한 분들이다. 그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이란 존재는, 식민 지배를 경험한 한국인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떠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현재 자행되는 끔찍한 인종청소와 학살 전부터 무려 75년간 이스라엘의 강탈, 억압, 그리고 차별을 견뎌 왔기 때문이다.
I가 다니는 학교에서 최근 세계 여러 나라를 다루는 수업이 진행됐다. 선생님은 이스라엘을 가르치면서도 팔레스타인을 가르치지 않았고 I는 큰 상처를 받았다. “팔레스타인도 있어요!” 하며 항의했지만, 선생님은 이스라엘이 나라고 팔레스타인은 나라가 아니라고 답을 한 모양이다. I는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고 지워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어가 서툰 I의 아버지가 면담할 때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아 내가 동석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담임교사와 직접 통화해서 약속을 잡았다. 담임교사는 I가 요르단 출신이라 팔레스타인과 관련이 없는 줄로 생각했고, 그의 가족이 1948년 나크바 때 요르단으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다고 했다.
전화위복
나는 I가 겪은 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I가 학교 공간에서 자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기회를 얻으면, I의 상처 회복을 돕는 것은 물론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반 친구들과 담임교사에게 알리는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담임교사를 도울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영토 변화 지도, 1948년 이스라엘 식민 점령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 이야기, 최근 상황이 담긴 신문 기사 등을 출력해 가져갔다. 그리고 I의 아버지를 미리 만나 면담의 핵심을 2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담임교사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해하고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을 그 스스로 정정하도록 요청하는 것. 둘째, I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 앞에서 스스로 발표하도록 교사에게 요청하는 것. I의 아버지는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했다.
다행히 담임교사는 상황을 이해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면담 전날 I는 이미 친구들 앞에서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이야기를 발표할 기회를 얻었고, 덕분에 친구들과 선생님이 I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담임교사는 “저 이번에 열심히 공부했어요!”라며 면담 전부터 자신이 인터넷 검색으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본 이야기를 들려줬고, 우리가 가져간 자료를 잘 살펴보겠다며 흔쾌히 받았다. I의 아버지는 담임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안심하는 듯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는 내게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며칠 뒤인 12월 8일, 인천 구월동에서 열린 3차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서 I와 I의 아버지를 만났다. “I, 이분이 그 선생님이야. 네 학교에 왔었어!” 집회에 참가한 아버지가 아들 I를 데려와 내게 직접 소개해 줬다. I는 수줍으면서도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네가 I구나! 정말 반가워! 네가 이야기한 덕분에 담임선생님이 많이 배웠다고 하셨어. 잘했어! 친구들 앞에서 발표도 했지? 정말 멋져!” 두 사람은 진심을 담아 나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팔레스타인 연대로 맺어진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은 자녀 셋을 데리고 집회에 참가한 H와 O도 만났다. ‘엄빠’
1948년 나크바
한편, 이날 집회에서 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 난민 S를 새로 알게 됐다. 요르단 출신 I가 학교에서 겪은 일을 떠올리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바로 아는 데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있던 참이라 며칠 뒤 S를 학교로 초청해 인권동아리 학생들과 ‘팔레스타인의 눈물과 저항’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인권동아리 학생들 외에 20명 가까운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와 40명 가까운 학생들이 함께 들었다. 학생들은 아랍어로 마르하반
우리는 1948년 이스라엘의 강제 식민 점령 이후 팔레스타인이 처해 온 상황과 현재의 참상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S는 비극의 시작은 10월 7일이 아니라, 1948년 이스라엘의 강제 불법 점령이라고 강조했고, 팔레스타인 땅에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것처럼 왜곡하고 인간 이하의 짐승 취급을 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만행을 폭로했다. 오랜 기간 이어진 봉쇄로 가장 기본적인 물·전기·식량·의약품 등이 부족해 가자지구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 왔다는 사실을 듣고 많은 학생들이 놀랐다. 병원·학교·난민촌 등을 폭격한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전해 들었고, 그들 중 다수가 어린아이와 여성이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이가 이렇게까지 안 좋은지 몰랐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엄청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특별 발언자로 초대된 이집트 소녀 G는 자신이 왜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하고 있는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이 왜 정당한지를 시청각 자료를 보여 주며 소개했다. 특강 후 한 학생은 “G씨 너무 너무 대단하세요. 앞으로 계속 포기하지 말고 연대 활동을 계속 하셨음 좋겠어요” 하고 응원을 남기기도 했다.
특강 다음 날 팔레스타인 특강에 참여했던 학생과 그 친구들이 “Stand with Gaza!”, “Free Palestine!”을 외치며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가고 싶다고 했다. 12월 23일 집회에 나도 참가할 계획이고 S도 올 것이라 안내해 주니 선뜻 같이 가겠다고 했다. 학생 3명이 보호자 허락을 구해 실제 집회에 참가했다.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와 행진을 경험한 학생들은 “강렬한 여운”이 남았고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며 “다음에도 또 참가하고 싶다”고 했다. 보호자들도 자녀가 “좋은 경험”,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집회에 오고 싶었지만 참가하지 못한 한 학생은 도서관에서 팔레스타인 관련 책을 빌려 꼭 읽어보겠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특히 젊은 층에서 큰 지지를 받고 있다.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커졌고 한국의 운동도 그 일부로서 매주 토요일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끈질기게 저항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이 팔레스타인 쟁점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고 익숙하지 않다. 주류 언론은 75년 강제 점령 역사를 생략한 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이 이번 사태의 원인인 양 본질을 왜곡한다.
I의 담임교사도 역사적 맥락을 잘 몰라 실수했을 것이다. 인천은 다문화 학생이 많고, 중동 아랍 지역 출신 학생이 많다. 서울이나 경기 등 다른 지역에도 중동 출신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집회에 가 보면 아랍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참가가 눈에 띈다. 그런 아이들이 팔레스타인 억압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연대할 때 학교에서 어떠한 불이익을 당해선 안 된다. 또한, I처럼 팔레스타인 배경을 지닌 아이들이 교육 공간에서 차별적 경험을 하지 않도록 교사들이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전교조 조합원을 포함해 진보적 교사들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교육하며 연대하는 일이 필요하고 널리 확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