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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유연화 추진 주체가 법원이 아니라 정부임을 분명히 해야

489호 ‘노동시간 유연화에 힘을 실어 준 대법원 판결 ― 이를 호재로 이용하는 윤석열 정부’(김광일) 기사는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 시간을 규제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의 모순과 해당 판결이 노동자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잘 짚어 줬다.

또한 노동운동 주요 조직들이 해당 판결을 보완 입법 중심으로 대응하(려)는 것의 한계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비판했다.

그런데 기사 제목과 서술 방식에서 대법원 판결로 윤석열 정부가 어부지리를 얻은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윤석열은 정권 초부터 노동시간 유연화에 사활을 걸어 왔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윤석열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그리고 정부 출범 전과 직후부터 내놓은 핵심 ‘노동개혁’ 목표였다.( 〈노동자 연대〉는 윤석열의 집권 전부터 이를 폭로·비판해 왔다.)

즉, 이번 판결은 자본가들의 염원을 등에 업고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간 유연화 노력을 줄기차게 해 온 맥락에서 그에 호응하는 판결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기사에선 이 점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보니, 해당 판결이 돌출적으로 나온 것으로 비춰지고, 노동시간 유연화 개악 주체가 법원인 양 주객이 전도된 인상을 준다. 이는 노동시간 유연화 공격의 심각성과 이에 맞선 대응 성격을 분명히 하는 데 중요하다.

기사에서 지적했듯, 정부와 사용자들이 노동시간 유연화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목적은 경쟁과 이윤의 필요에 노동자들을 종속시키는 것이다. 윤석열이 대선 후보 시절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쉴 수 있어야 한다”고 한 발언도 이를 솔직하게 내뱉은 것이었다.

윤석열의 노동시간 유연화가 더딘 것은 정권의 의지가 적어서가 아니라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정권 초 노동 개악을 위한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 삼으려던 ‘MZ노조’마저 69시간 노동시간 연장안에 반발했다. 지지율도 추락했다.

이번에 한국노총 지도부를 달래고 압박해 경사노위로 복귀시킨 핵심 이유 중 하나도 노동시간 유연화를 (‘사회적 합의’라는 모양새를 취하며) 신속히 밀어붙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배계급의 일원인 사법부가 정부의 개악 노력에 발맞춰 어느 정도 노동시간 유연화 효과를 내게 하려고 한 판결이다. 3권 분립이라지만 정부, 국회, 법원 모두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로서 노동자를 착취(자본주의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 뽑아내기)하는 데 한통속이다.

기사에서 지적했듯 고용노동부가 대법원 판결 직후 재빨리 주간 연장근로 시간 계산법(행정해석)을 변경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정부가 가려는 방향에 안성맞춤으로 부합한 것임을 짐작케 한다.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여전히 입법 보완(개혁주의), 총선에서 심판(의회주의) 위주로 이 문제를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이 노동시간 유연화를 위해 사법 판결까지 동원하는 상황에서, 의회를 통해 개악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일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