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혐오 주장과 그렇지 않은 주장:
주요 논박과 피해야 할 함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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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스라엘 세력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운동이 유대인 혐오라고 공격한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도 비슷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 자들이 펴는 대표적 주장에 대한 논박을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유대인 혐오라는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주장을 펼 수 있도록, 피해야 할 함정도 살피려 한다.
이스라엘 비판이 곧 유대인 혐오인가?
“유대인 혐오”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무고한 사람들을 겨냥한 위험한 무기가 된다. 오늘날 파시스트 사이에서 실재하는 유대인 혐오는 다음과 같은 망상이다.
‘유대인은 나머지 인류와 다르다. 그들은 인류의 적이고, 가는 곳마다 자신만의 “국가 안의 국가”를 꾸린다. 그들은 비밀리에 자기들끼리 공모하고 있으며, 여타의 인민이나 사회 구성원들을 제물로 삼으려 한다. 그들에게는 묘한 능력이 있어서 적은 인원으로도 사건을 배후 조종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운동은 오히려 그 반대임을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유대인이 인류의 적이기는커녕 오래 전부터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 왔고, 팔레스타인에서도 아랍인과 유대인은 오랫동안 공존해 왔다고 강조한다.
뒤에서 보겠지만, ‘유대인은 나머지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에 타협하는 쪽은 시온주의자들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모든 유대인의 비밀 공모를 주장하기는커녕 많은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동참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최근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주최한 집회(제30차 집회, 4월 13일)에서도 한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비판은 유대교나 유대인이 아니라, 시온주의자들과 그들의 정치 조직인 이스라엘 국가를 향한 것이다. 유대인 혐오가 아니다.
시온주의는 유대 ‘민족’의 (정당한) 자기결정권인가?
오늘날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 국가가 유대인의 오랜 독립 국가 염원이 실현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참말이 아니다.
이스라엘에 정착한 유대인의 압도 다수는 원래 유럽 등 중동 바깥에 살았고 무엇보다 홀로코스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별도의 유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여러 나라에서 유대인 차별은 있었고 특히 유럽에서 심각했지만, 기존 거주국을 떠나 새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 주장에 오히려 질색하는 유대인이 더 많았다.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은 더욱 소수였다.
예컨대, 1910년대에 영국 정부가 밸푸어 선언을 준비한다는 소식에 당시 유력한 유대인 단체들은 다음과 같이 격하게 반발했다.
“시온주의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주장은 전 세계의 모든 유대인 공동체들이 단일한 ‘고향을 잃은 민족’을 이룬다는 것,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민족 말고는 다른 어떤 민족 안에서도 사회적·정치적으로 동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향을 잃은 민족’이 정치적 중심을 필요로 하고 팔레스타인의 ‘빈 땅’에 고국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에 우리 공동위원회는 아주 강력하고 신실한 항의를 표하는 바이다.”(영국유대인대표자회의-영국유대인협회 공동위원회의 〈런던 타임스〉 기고글, 강조는 〈노동자 연대〉지의 것.)
유대인이 차별받는 인종이라는 것은, 독립 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민족이라는 것과는 별개인 것이다. 시온주의는 결코 유대인의 자연스러운 ‘민족’ 감정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단일 민족을 이룬다는 것은 시온주의자들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이스라엘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유대인 혐오인가?
이스라엘 국가라는 정치체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유대인들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과 전혀 다른 것이다. 본지는 오랫동안 역사적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서 아랍인과 유대인 등이 민주적이고 비종교적인 단일 국가 안에서 평등하게 공존하는 방안을 지지해 왔다. 이런 대안으로만 팔레스타인인 난민이 귀환할 권리도 보장할 수 있다.
‘이스라엘 거부는 유대인 혐오’라는 주장은 이런 정치적 대안이 진지하게 고려되는 것을 막으려는 입막음 전술이다.
이스라엘 국가의 진정한 실체는 식민 정착자 국가이다. 식민 정착자 국가는, 외부에서 정착자를 이주시켜 원주민을 인종청소하고 세우는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미국, 호주, 백인 치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따라서 이스라엘 국가가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원주민들이 “존재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국가는 토지 강탈과 자국 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억압과 인종청소, 그렇게 해서 쫓겨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 난민들의 귀환할 권리 박탈을 전제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식민 정착자 국가는 결코 원주민 국가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다. 식민 정착자 국가인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주장하는 ‘두 국가 방안’을 현실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미국과 호주는 결국 원주민을 말살에 가깝게 살육했고,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지금도 천대받고 있다.(반면 남아공에서는 투쟁으로 인종 분리 제도가 타도됐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팔레스타인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이런 진실을 그들도 알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스라엘의 현재 극우 정부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정착자 다수가 팔레스타인인 억압을 지지하는 것도 식민 정착자 국가가 원주민과 끊임없이 전투를 치러야 존재할 수 있다는 물질적 현실에서 비롯한 결과이다.
팔레스타인인의 독립 국가 건설과 팔레스타인인 난민의 귀환권을 일관되게 지지하려면 ‘이스라엘 국가에 존재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거부해야 한다.
홀로코스트가 이스라엘 국가의 필요성을 입증했는가?
시온주의자들은 홀로코스트가 남긴 교훈이 ‘유대인 국가만이 유대인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했던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홀로코스트 당시에 유대인들을 실제로 구하는 것이나 나치에 맞서는 저항에서 전혀 일관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히틀러에게까지 기회주의적으로 접근한 것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다른 시온주의자 포함) 사이에서 경멸의 대상이 됐었다.
그래서 많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이스라엘 국가에 비판적이었고 팔레스타인인의 해방 운동에 연대를 생전에 표했거나 지금도 표하고 있다. 그중에는 나치 독일에 맞선 유대인의 위대한 저항이었던 바르샤바 게토 봉기 참가자들도 있다.
최근에도 이스라엘 국가는 미국, 프랑스, 독일 등지의 극우 또는 파시스트 세력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극우·파시스트 세력의 무슬림 혐오에 편승하는 것인데, 이는 유대인 혐오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아주 문제적이다. 서방에 사는 무슬림과 유대인은 지배자들이 “외부 세력”이라고 딱지 붙여서 속죄양 삼기 쉬운 대상이라는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영국에서는 무슬림 혐오와 동시에 유대인 혐오 범죄도 늘고 있는데, 가해자 대부분은 우익 백인 남성이다.
제2의 홀로코스트를 막을 방법은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 유대인과 무슬림 등 모든 노동계급이 단결해 파시즘에 맞서는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와 시온주의는 그에 필요한 연대 건설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함정을 피하자
① ‘유대인 로비’설은 편견에 따른 설명이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열강이 이스라엘을 확고하게 지원하는 것을 비판할 때, 그 지원이 ‘유대인 로비’ 탓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릇됐다.
우선, ‘유대인 로비’라는 표현은 전 세계 모든 유대인이 단일한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전제하고 있고 이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실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국가 문제를 포함하는 많은 문제에서 서로 상이한 이해관계와 견해를 갖고 있다.
또한 ‘유대인 로비’ 주장은 로비의 위력을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그런 과장을 뒷받침하려고 음모론에 기댄다. ‘유대인들이 정치·금융·언론 등에서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고, 비밀리에 공모한다’는 논리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 로비’는 극우와 파시스트들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유대인 로비’라는 표현을 ‘시온주의 로비’로 바꾸더라도 사정은 바뀌지 않는다.
물론 미국 등지에서는 시온주의 로비 단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그런 로비나 외압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스라엘이 서방의 중동 패권과 이익을 보존해 줄 “경비견” 구실을 한다고 보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이다.
‘유대인 로비’ 주장은 현실과도 맞지 않고 무엇보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배격돼야 한다.
②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가해자가 됐다’는 비판은 부적절하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유대인이 “거꾸로 집단학살의 법정에 가해자로 불려 나왔다”(〈한겨레〉)는 등의 주장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주장에는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대표한다’는 시온주의자들의 거짓 주장을 받아들인다는 난점이 있다.
그러나 어느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로 희생당한 것과 그가 이스라엘을 지지했는지 여부는 전혀 별개 문제다. 나치는 가스실에서 유대인을 살해할 때 그가 이스라엘 건국 프로젝트를 지지하는지 따위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또한 앞에서도 썼듯이 많은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해 왔다.
시온주의자들은 ‘홀로코스트가 팔레스타인 강점(과 강탈)을 정당화한다’와 ‘이스라엘이 세계 유대인의 대표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들은 참말이 아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가해자가 됐다’는 논리는 시온주의자들의 이 두 거짓말 중 전자를 비판하면서도 후자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억압을 비판할 때는 ‘이스라엘이 모든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대표’라는 거짓말과도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③ 유대인은 홀로코스트로 죽은 숱한 희생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이 부적절한 이유
홀로코스트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중에는 분명 유대인뿐 아니라 로마인(‘집시’는 이들을 멸시하며 부르는 표현이다), 사회주의자, 동성애자, 장애인도 많다. 그러나 유대인 사망자 수는 ‘터무니없다’ ‘놀랍다’는 말로는 제대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예컨대, 나치 점령하 폴란드에서 유대계가 아닌 폴란드인은 약 300만 명이었는데 그중 9퍼센트가 홀로코스트로 살해당했다. 그런데 약 300만 명이었던 유대계 폴란드인들의 경우에는 92퍼센트가 살해당했다. 비슷한 일이 유럽 도처에서 재연됐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집중적으로 살해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흐리면, 진짜 유대인 혐오자들인 파시스트의 입지를 의도치 않게 넓혀 줄 수 있다.
파시스트들이 홀로코스트를 정면으로 부정하기 어려울 때, 비슷한 주장을 종종 꺼내들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은 홀로코스트가 하나의 인종을 통째로 살해하려던 인종 학살이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전쟁의 숱한 비극 중 하나일 뿐이라는 식으로 치부한다. 이런 주장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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