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행진:
라파흐 지상전 위협하는 이스라엘과 이를 지지하는 미국을 규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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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토요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 인근인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주최로 31차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행진이 열렸다.
이번 집회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라파흐 지상전 개시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열렸다.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전쟁 위기를 이용해 라파흐 공격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라파흐 지상전에 반대한다고 말하던 미국 바이든 정부는 최근 이를 승인했다. (관련 기사: ‘이란의 응징을 라파흐 공격의 빌미 삼으려는 이스라엘’)
이날 집회에 모인 팔레스타인인, 아랍인, 한국인 등 다양한 국적의 참가자들은 인종 학살을 지속하고 확전 위험까지 키우는 이스라엘과 공범 미국 정부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많은 참가자가 모였다. 비를 맞으면서도 집회·행진의 집중도와 활력이 높았다.
첫 발언자로 나선 팔레스타인인 나리만 씨는 “파괴와 살인, 죽음이 계속 퍼져나가는” 가자지구의 참혹한 현실을 전하며,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갈등 또한 중동 불안정을 더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바이든 정부가 중동 위기의 해결사를 자처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자신들이 마치 평화의 수호자인 양 행세하지만, 진실은 바로 미국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연단에 선 김인식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은 발언을 시작하며 이렇게 물었다. “이스라엘은 학살자입니까? 아니면 피해자입니까?”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학살자!“라고 답했다.
이란의 공습을 빌미로, 인종 학살 전범 꼬리표를 슬쩍 떼고 피해자가 된 척하는 이스라엘의 노림수를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자 전쟁을 시작한 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레바논을 폭격하고 있고, 어제는 이란 본토를 공격”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중동 확전 위험에 책임이 있다.
김인식 운영위원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라파흐를 희생시킨” 미국 정부와, 이에 보조를 맞추는 유럽 정부들과 윤석열 정부도 규탄했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 군의 라파흐 지상 작전을 수용했습니다. 미국은 결코 중재자가 아닙니다.
“유럽 정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일요일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과 함께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을 격추시켜 이스라엘을 방어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바이든 정부와 코드를 맞추고 있습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윤석열 정부는 이를 규탄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을 때 윤석열 정부는 침묵했습니다.”
독일과 한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꾸준히 참가해 온 독일인 유학생 헨리케 씨의 연설도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최근 독일 정부가 자행하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탄압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과 표현의 자유(집회·시위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자고 감동적으로 호소했다.
지난 12일 독일 정부는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팔레스타인 연대 컨퍼런스를 경찰력을 동원해서 강제 해산시킨 바 있다. 독일 경찰은 이 컨퍼런스에 반유대주의 혐의를 씌우면서 유대인 활동가까지 체포했다.
헨리케 씨는 독일 정부가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고 활동가들에게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미국에 이어서 이스라엘에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현재 독일 정부는 가자에서 벌어지는 인종 학살을 돕고 방조한 죄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7일 이후 독일 언론, 경찰, 정부는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가들을 모두 범죄자 취급했고, 반유대주의자, 이슬람주의자 혹은 테러리스트로 몰았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목격한 사람들의 독일 입국이 막히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구호와 여러 상징물도 모두 금지당하고 있습니다.”
헨리케 씨는 이처럼 이스라엘 동맹들이 탄압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들이 정치적으로 패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 보여 주는 것은 우리의 활동이 사람들에게 보이고 우리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그 동맹들은 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침묵시키려는 이 시도에 맞서 싸우고, 정치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에 맞서 싸웁시다. 가자를 위해 싸웁시다. 팔레스타인을 위해 싸웁시다!”
발언 중간중간 참가자들의 환호와 박수가 계속 쏟아졌다.
헨리케 씨는 발언을 마치며, 독일에서 부당하게 금지당하고 있는 구호를 함께 외치고 싶다며 힘차게 선창했다. “지중해에서 요르단강까지, 팔레스타인이여 독립하라!(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
끝으로 이집트인 압둘 무흐신 씨는 이스라엘과 협력하고 있는 아랍 정권들을 비판했다.
“아랍에 있는 정권들은 자국에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목소리를 체포하고 억압하고 있습니다.”
무흐신 씨는 특히 이집트 정부가 “라파흐 국경 인근에 거주하는 이집트인들을 쫓아내면서 라파흐 국경 봉쇄를 더 강화하는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이집트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봉쇄와 점령을 지속하는 이스라엘의 동맹”이라고 규탄했다.
집회를 마친 뒤 참가자들은 행진을 시작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지만 행진 분위기는 활기찼고 갈수록 뜨거워졌다.
우비에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수박 그림과 구호를 적은 참가자, 올리브 나뭇가지를 들고 행진하는 참가자 등이 눈에 띄었다.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거리 곳곳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이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촬영을 하고, 손가락으로 브이(V)를 만들어 흔들고,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행진 대열이 명동에 진입할 때 북소리와 “가자(Gaza)!” 구호가 길거리를 가득 채웠다.
대열 양옆의 시민들은 연신 카메라를 꺼내 들고 행진 모습을 담았다. 거리 곳곳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궂은 날씨에도 즉석에서 행진에 합류하는 시민들도 여럿 있었다.
한국을 여행 중이던 한 팔레스타인인 여성은 명동에서 식사를 하다가 행진을 보고 뛰쳐나와 합류했다. 그는 “여행을 왔는데, 고향에 온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품에 아이를 안고 있던 또 다른 아랍인도 행진 대열을 보자마자 손팻말을 받아 들고 대열로 들어와 아이와 함께 구호를 외쳤다.
집회와 행진이 끝난 뒤 참가자들이 식사할 때, 옆 테이블의 시민들이 “수고가 많다”며 음식을 사 주는 일도 있었다.
팔레스타인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 운동을 지지하는 대중의 정서는 집회 규모보다 훨씬 광범하다.
주최 측은 다음 주 토요일 집회에도 많이 모이자고 호소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라파흐 지상전이 개시된다면 즉각 항의 행동을 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