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유전 개발 뻥튀기에 속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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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윤석열이 동해 심해에서의 가스·석유 개발 프로젝트(‘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동해 심해에 추정 매장량이 최대 140억 배럴에 이르는 유전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단순히 국내 소비량과 비교해도 천연가스는 29년치, 석유는 4년치가 넘는 양이라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유전이 개발되면, 1조 4000억 달러(1928조 5000억 원)가 넘는 수입 대체 효과와 수출 효과가 난다며 기대감을 부추긴다. 친여권 언론들은 앞장서 ‘드디어 산유국의 꿈이!’ 하는 식으로 호들갑을 떤다.
윤석열의 발표 후 관련 기업 주가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며 요동쳤다. 대형 조선소와 정유 기업들에 대한 희망 섞인 관측도 넘친다.
한국은 국내 사용 에너지의 90퍼센트를 수입하고 있고, 그중 석유·가스는 전량 수입하고 있다. 지난해 에너지 수입에만 1475억 달러(약 200조 원)가 들었다. 정부 예산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부와 재계가 동해 유전 개발로 바라는 것은 원가 절감 효과만이 아니다. 최근 고조되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대기업들에 가하는 압박을 크게 줄이는 효과도 기대한다.
세계 자본주의에 깊숙이 통합돼 성장해 온 한국 자본주의는 대외 변수에 매우 민감하다. 중동 석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온 에너지 문제는 특히 그렇다.
한국 지배계급이 미국 주도의 세계 패권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에 각별히 지원과 협력을 제공해 온 이유다. (한편, 한국 국가가 박정희 이래 중동 국가들과 꾸준히 친선 관계를 발전시켜 오고, 한반도 근해에서 석유·가스 탐사에 집착해 온 것도 이런 배경 요인이 크다.)
윤석열이 느닷없이 산유국 장밋빛 발표를 한 것은 한국 자본가들의 오랜 열망을 실현할지도 모를 개발 프로젝트로 사람들의 주의를 돌려 정치적 위기 국면을 벗어나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탄소 제로에 역행하는 윤석열
이미 재난 단계 초입에 들어선 듯한 기후 위기를 막으려면 하루빨리 화석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개발과 이용을 늘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가스를 개발하려고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것 자체가 낭비이고 역행이다. 진보당이나 노동당의 논평처럼 그 돈을 재생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복지에 쓰는 것이 옳다.
유전 유무를 확인하려고 벌이는 해저 시추 탐사부터 해양 생태계를 파괴한다. 채굴을 시작해도 해저 송유관 건설 등으로 환경을 또 파괴한다.
심각한 사고 위험도 언제나 있다. 14년 전 미국 멕시코만에서 BP시추선인 딥워터호라이즌 호가 폭발하는 사고가 나서 환경 재앙이 일어났다. BP의 안전 투자와 관리 미흡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피해는 멕시코만 생태계에 그치지 않았다.
석유·가스 개발에 만약 성공한다면 싼 에너지 공급으로 확실히 기업들은 혜택을 볼 테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와 재난 위험 때문에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대박을 맞으려면 로또 먼저 사야 한다?
심해 유전은 해저로 수 킬로미터를 내려가서 또 땅을 수 킬로미터 뚫어야 하는 만큼 탐사 시추에만 1조 원이 넘는 돈과 수년의 기간이 걸린다. 석유·가스가 발견돼도 상업성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 채굴을 결정해도 유전을 짓는 데 또 수년이 걸리고, 심해 유전 폐쇄에는 막대한 비용도 지출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채굴 가능성이 20퍼센트나 된다며, 이는 심해 유전 개발 확률로는 높은 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80퍼센트의 확률로 막대한 시추 탐사 비용을 날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과 낮은 확률 때문에 거대 석유 기업들은, 원유가 나올 법한 여러 곳에서 다수의 시추 계약을 따낸다. 예컨대, 5곳에 투자해 그중 한 곳만 성공하면 그것으로 나머지에서의 손해를 벌충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동해 유전 개발은 실패했을 때 손실을 만회할 방법이 없다. 경제는 장기 침체 상태인 데다가 윤석열은 긴축을 내세워 예산을 마구잡이로 깎아 왔다. 그런데도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은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거액을 투자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게다가 지지난해 호주의 거대 석유 탐사 기업인 우드사이드는 윤석열이 발표한 바로 그 광구에서 발을 뺐다. 16년간 조사를 맡았던 기업이지만 경제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와 친정부 언론들은 이런 진정한 우려와 반대에 도박의 논리로 답한다. 대박을 맞으려면 돈을 들여 로또를 먼저 사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빨리 추진하려는 윤석열 정부는 이미 4월에 노르웨이 시드랄 사와 수백억 원대의 시추 탐사 계약을 맺었다. 이런 전광석화 같은 추진 자체도 의혹의 대상이지만 무엇보다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된 액트지오가 곧바로 의혹의 초점이 됐다.
우드사이드와는 달리 액트지오는 훨씬 영세한 업체이고, 한국 정부와의 자문 용역 계약 시점에서 탈세로 법인 자격을 일시 박탈당했던 사실이 드러났다(〈시사인〉).
정부가 직접 해명에 나서고, 액트지오의 대표 격인 비토르 아브레우가 방한을 한 배경이다. 아브레우의 발표도 설득력이 적었다. 그런데 우드사이드가 철수하기 전 작성한 최신 탐사 자료는 막상 액트지오가 검토하지 않은 것도 드러났다(〈뉴스버스〉).
그러나 산자부는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중대 발표를 앞두고 정부는 6월 7일 임기가 만료된 석유공사 사장의 교체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석유공사 사장 김동섭은 6월 5일 직원들도 몰랐던 대통령 발표에 양해를 구한다는 사내 공지문을 올렸다. 그 공지에서 김동섭은 “숫자보다는 가능성”을 보고 추진해 나가자고 했다.
로또성 사업을 졸속으로 보일 정도로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 자체가 (실제 매장 여부와 무관하게) 많은 이들에게 ‘게이트’ 의심을 품게 만들고 있다. 사업 리베이트, 주가 조작 의혹 등등. 브라질 노동당 정권을 날렸던 부패 스캔들이 바로 국영석유회사(페트로브라스)의 리베이트 스캔들이었다.
제국주의와 거대 석유 기업의 콜라보, 심해 유전 개발
세계적으로 해상 유전 개발은 석유가 점차 고갈된다는 점(피크 오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국주의와 거대 석유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개발에 관련돼 있다.
미국 등 강대국들과 석유 다국적 기업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이란, 이라크 등 매장량이 풍부한 산유국들을 관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OPEC) 주요 산유국들은 유전 대부분을 국영 석유회사가 통제하고 있다.
그래서 거대 석유 기업들은 수익을 확보하고 기존 산유국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새로운 유전을 찾아 심해로 나아갔다. 미국의 멕시코만과 영국의 북해 유전 개발도 그런 사례다.(이후 미국은 셰일 개발에 공을 더 들였다.)
이후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들도 엑손모빌, BP, 쉘 등 석유 다국적 기업들과 손잡고 저마다 해상 유전 개발에 나서 왔다. 남미 가이아나가 엑손모빌에게 시추를 맡겨 110억 배럴 규모의 심해 유전을 개발한 것이 최근 사례다.
미·중 간 경쟁 심화, 그리고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공급 교란이 에너지 안보 경쟁을 격화시키면서 최근 심해 유전 개발 붐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동시에, 해상 유전은 또한 영해 분쟁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지정학적 갈등이 크게 고조되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베트남, 필리핀 등과 중국은 심해 가스 유전 개발 문제로도 다투고 있다. 동지중해 인접국들간 지역 패권 갈등에도 심해 유전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