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모의 의혹: 당면 가능성이 아니라 유사시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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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측의 유사시 계엄 모의 의혹 논란이 9월 정기국회와 국정감사에서도 이어질 듯하다.
대통령실과 여권은 계엄 모의 의혹이 윤석열 탄핵을 위한 “빌드업” 시도라며 민주당을 맹비난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측은 윤석열이 “반국가 세력”을 자주 언급하는 것이 유사시 “계엄령 선포 위한 논리적인 밑밥 깔기”라고 반박한다.
“계엄을 선포해 봤자 야당이 장악한 국회가 해제하면 그만이므로 민주당의 폭로에 개연성이 없다”는 여권의 해명은 그럴듯하지도 않다.
계엄은 의회 민주주의의 규칙에 따른 정치 질서를 강제로 중단시키는 것이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계엄이라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애초에 계엄을 선포한 정부나 군부가 국회에 순순히 계엄해제권을 허용할 리 없다.(“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시킨 최초의 헌법은 박정희의 유신헌법이었다!)
입법부에 계엄해제권이 있다고 해봤자, 강제력을 발휘해 그 법을 이행해야 할 행정·사법기관들이 계엄사령부의 지휘 아래에 있고, 의회가 지휘할 수 있는 강제적 국가기관은 없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계엄하에서 의회는 더더욱 무력하다.
특히, 계엄사령부가 혐의를 만들어 일부 의원들을 체포하거나 그들의 국회 집결을 막으면 그만이다.
1952년 이승만의 직선제 개헌을 위한 부산 지역 계엄 선포와 국회의원 체포 사건이 한 가지 사례다.
그밖에도 이승만의 1960년 4월 19일 시위 무력 진압,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쿠데타, 1979년 10월 부마 항쟁 진압, 전두환 신군부의 1980년 5·18 광주 항쟁 무력 진압이 모두 ‘합법’ 계엄하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사례들을 보면 계엄을 무력화시키는 힘은 1960년 4월처럼 대중이 도시에서 즉각 거리로 나서서 항쟁을 더 키우고 급진화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노동자 대중이 대규모로 파업하고 거리에서도 결연한 태도로 군에 맞서 저항하기 시작하면 군에서는 두 종류의 분열이 일어난다. 저항에 나선 대중의 친구이고 가족인 사병들이 지휘부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는 일이 생기고, 그다음엔 지휘관들이 동요한다. 군 내부에선 군이 나서는 대의명분이 없다는 불평이 나온다.
그러나 계엄 음모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당장 실현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구별해야 한다.
1987년 이후에도 1989년, 1991년, 2017년 등에 계엄 실행이 검토됐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자칫 경솔하게 나섰다가 엄청나게 거대한 저항이라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판단 때문에 음모가 음모로만 끝난 사례들이다.
계엄과 쿠데타, 군부 독재가 불과 40년 전 사건이라서 한국의 대중은 계엄 시도에 몸서리치며 반발할 공산이 크다. 지배계급이 국가 형태의 변화, 즉 권위주의 정치체제로의 회귀를 꾀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또한 아직은 정치 위기의 심도가 대중의 반발 가능성을 지배계급이 무시하는 모험을 감수할 만큼은 아니다.
윤석열의 계엄 검토
지금 윤석열의 위기, 극우화, 계엄 검토 의혹의 배경에는 모두 안보 위기의 심화라는 공통된 배경이 있다.
미·중 갈등의 심화 속에서 지정학적 불안정이 심화하고 북한이 핵전력을 고도화하면서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밀착하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윤석열은 지속적으로 군국주의를 강화해 왔다.
사실 한국에서 군사계엄 시도는 대부분 지정학적 안보 위기와 연결돼 있었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패색이 짙던 1972년 등이 대표적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기구인 군이 안보 위기 국면에서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최선진국이라는 프랑스에서도 1961년 지정학적 위기 국면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었다. 프랑스 국가는 식민지였던 베트남, 모로코에 이어 알제리에서도 민족 해방 운동에 직면했고, 군의 지지를 받던 드골 정부가 알제리를 포기하려 하자 알제리 주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식민지 경영에 주된 구실을 했던 군부가 프랑스 제국주의의 위상 약화와 식민주의 청산에 반발한 것이다.(물론 쿠데타 세력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뒤엎고 군사 독재 정권을 세우려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전쟁 위험이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모두 지금 한반도에서 실질적 군사 충돌을 벌일 계획이 없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안보 공약이 흔들리는 안보 위기 상황도 아니다.
남북 두 정권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각각 미국과 러시아에 무기(특히 포탄)를 대량 지원했다. 양측 모두 한반도에서 전쟁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또한, 비록 최근 들어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소심함과 온건함 때문에 노동자 투쟁이 덜 전투적이고 덜 급진적이지만, 노동자 계급의 조직이 건재하다.
따라서 윤석열 측이 (박근혜 퇴진 운동과 같은) 유사시를 대비한 계엄 시나리오를 검토했을 가능성은 높지만, 그것을 당장 실행하려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정치 위기의 심도가 군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모험을 해야 할 정도로 긴급하지 않고, 따라서 군 내부든 대중에게든 쿠데타의 정당성을 강변할 명분이 매우 적다.
박근혜 퇴진 운동 때 계엄 모의가 결국 실행되지 않은 것도 계엄 선포를 계기로 평화적 퇴진 시위 운동이 오히려 혁명에 근접하는 저항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배계급이 언제나 합리적 선택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위기가 깊어지고 있어서 장차 정부나 군부가 어리석은 오판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오판을 한다면, 지금의 글로벌·국내 상황을 봐서는 순식간에 혁명적 또는 준혁명적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이런 위기 심화의 시기에 헌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반동의 위험을 차단할 수 없다. 루카치가 말한 “혁명의 현실성”을 전제로 삼고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키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