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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침체에 “수출 피크아웃” 위험까지 겹친 한국 경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9월 18일 기준금리를 기존 5.25~5.50퍼센트에서 한 번에 0.5퍼센트포인트 내리는 ‘빅컷’을 단행했다. 2020년 3월 이후 약 4년 6개월여 만의 기준금리 인하로, 한국은행 기준금리 3.5퍼센트와의 금리차는 1.5퍼센트포인트로 좁혀졌다.

연준이 급작스레 빅컷을 단행하자 미국의 경기침체가 이미 시작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취업자 증가가 둔화하는 등 고용과 투자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이 뒤늦게 침체를 막아 보려고 빅컷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노동 시장은 실제로 양호하며, 미국 경제도 견실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며 경기침체를 부정했지만 말이다.

중국 경제도 ‘40여 년 전 개혁개방 이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소비 증가세가 둔화하고 기업들도 고용을 줄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부동산 개발 투자 감소 폭은 10.1퍼센트로 전년 동기의 감소폭(-7.9퍼센트)보다도 커졌다. 이에 따라 중국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마저 커지며 올해 5퍼센트 안팎의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이 불투명한 상태다.

세계경제의 두 축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침체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은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2021년 말 이후 처음으로 70달러를 밑돌았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사용되는 구리의 가격도 최근 급락하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3개월물 구리 선물 종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기준 톤(t)당 8935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최고가를 찍은 5월보다 17퍼센트나 떨어진 가격이다.

수출 ‘피크아웃’

미국, 중국의 경기 악화는 한국의 수출 감소, 수요 둔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올 8월까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3퍼센트가 이 두 나라로 향했다. 중국이 24.5퍼센트(홍콩 포함), 미국 18.8퍼센트다.

물론 올해 내내 한국 경제 성장은 수출이 이끌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9월 1일 발표한 ‘2024년 8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지난달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4퍼센트 증가한 579억 달러로 8월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수출이 11개월 연속으로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8개월간 수출 총액은 재작년인 2022년과 비교하면 4.5퍼센트 감소한 규모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보다 50퍼센트 가까이 증가했으나, 2022년 대비로는 3.5퍼센트 감소했다.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도 2022년보다 4.7퍼센트 감소했다. 최근의 수출 증가는 지난해에 수출 감소분을 만회한 정도에 그치며, 그조차도 반도체가 사실상 이끌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위기감이 커지면서 한국의 수출 증가율이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씨티, HSBC 등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은 “한국 수출 증가율은 ‘피크아웃’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D램 업황이 올해 4분기 정점을 찍고 2026년까지 과잉 공급 상태에 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인공지능(AI)에서 핵심으로 사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도 곧 공급 과잉에 처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동안 한국 수출을 이끈 반도체 산업의 업황이 나빠질 수 있다고 예측한 것이다.

한국도 빨리 기준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지만, 금리 인하가 가계부채 증가를 부채질해 오히려 전반적인 금융 불안정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도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내수 경기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급증한 가계부채와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에 소매 판매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자영업 폐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430만 6000명으로 1년 전 437만 명과 비교하면 6만 4000명이나 감소했다.

여전히 해결이 안 된 부동산 PF 대출 부실 문제도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 최근 나이스신용평가는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관련 최종 손실이 최대 3조 9000억 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저축은행들이 지금까지 쌓아 둔 충당금이 2조 2000억 원인 걸 감안하면, 최대 1조 7000억 원의 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형 증권사들도 부동산 PF 부실이 커지면서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신세계건설·롯데건설 같은 대기업 건설사들조차 계열사들의 도움을 받아 빚을 내 빚을 막고 있지만 이자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도 빨리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의 이자 부담을 조금이라도 낮춰줘야 연쇄 부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급격히 늘어난 가계부채가 한국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행 3.5퍼센트의 기준금리하에서도 가계부채의 급증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가계부채가 더욱 증가해 오히려 전반적인 금융 불안정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세계경제 전반에 침체의 위기가 드리워지면서 한국 경제도 수출 증가 둔화, 내수 침체, 부동산 PF와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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