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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건전성을 걱정해야 할까?

윤석열은 연일 “건전 재정”을 말하며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자신이 “빚만 잔뜩 물려받은 소년 가장” 같다며 지출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국가 부채 수준을 상당히 과장하는 말이다.

한국의 정부부채비율(공기업 포함)은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55퍼센트이다. 이는 G7의 126퍼센트, G20의 121퍼센트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윤석열은 민주당 정부 시절 무분별한 지출 때문에 부채 위기가 온 것처럼 말하지만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을 상당히 소극적으로 운영했다. 그래서 2018년에는 국가 부채 비율이 그 전 해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19 위기와 함께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자 정부 부채를 큰 폭으로 늘렸다. 그러나 당시 다른 국가들의 증가 폭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당시 늘어난 지출의 대부분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구제하는 데 쓰였다. 윤석열 정부하에서도 경기 침체와 함께 막대한 기업·부자 감세로 인해 재정 적자가 늘어나고 있듯이 말이다.

긴축은 경제 위기 고통을 노동계급에게 떠넘기겠다는 계급적 공격 신호이다.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 ⓒ출처 대통령실

이재명 대표는 더 적극적으로 서민 지원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도 여전히 재정건전성을 중시한다. 재정을 푸는 것이 경제를 활성화해, 다시 재정 건전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물론 긴축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만, 건전 재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개혁에 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재명의 민주당도 윤석열 정부의 긴축 예산안과 크게 다르지 않는 내용으로 합의 처리하는 등 타협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최근 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부적절한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재정건전성 유지를 받아들여야 할까?

정부 부채를 가계 부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오해는 흔하다. 즉 부채가 쌓이면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부채가 어느 수준까지 늘어나면 경제가 위험해지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일본 정부 부채는 GDP 대비 250퍼센트가 넘지만, 아무도 일본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주요국 정부들의 부채는 지금보다 훨씬 컸다. 예컨대 당시 영국의 부채 비율은 GDP의 250퍼센트에 달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 정부는 재정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복지 지출을 대거 늘렸다. 그럼에도 이후 장기 호황으로 경제가 성장하자 정부 부채 비율은 줄어들었다.

정부 부채가 문제가 될 때는 금융 자본가들이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 시작할 때이다. 정부가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국채를 팔아 치우고, 더 많은 이자를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은 ‘투자 파업’은 정부가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편다고 생각할 때 압박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복지·임금·공공서비스 등을 삭감해 노동자 착취율을 높여 이자를 제대로 지불하라는 압박인 것이다.

결국 재정건전성 압박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한 협박이다. 계급적 공격의 일환인 것이다. 이는 공공서비스와 복지를 삭감할 구실이 필요한 정치인들이 이용하기 좋다.

윤석열 정부의 긴축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윤석열 정부가 대규모 기업 감세를 추진한 것을 보면 재원이 없어서 긴축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 수익성을 높이려 한다.

따라서 이런 공격에 제대로 맞서려면 재정 안전성이라는 전제를 수용하지 말고, 기업주들에 맞서 노동자 등 서민층의 몫을 늘리는 것을 일관되게 추구해야 한다.

한국의 진보·좌파는 대부분 윤석열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해 왔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부자만이 아니라 노동자도 보험료율 인상해야 한다거나, 계급을 초월한 보편 증세를 지지하는 것이 그런 사례이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을 위해 노동자도 더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은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을 어느 계급에게서 거둘 것인지 하는 진정한 문제를 흐리게 만들어 계급투쟁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수용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모순에 봉착할 수 있다.

설사 좌파 정부가 들어서서 노동자를 위한 개혁 정책을 시행하려 해도 기업주와 부자, 국제 금융 자본들은 이런 정책에 맞서 국채를 팔아 치우고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며 경제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자본가들의 압박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의 삶을 위한 개혁을 굳건하게 추진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서구 개혁주의 정당들은 일찌감치 이런 압력에 굴복해 긴축 정책을 추진하며 대중의 환멸을 샀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좌파 개혁주의 정당 시리자는 긴축 반대를 걸고 집권했지만 국제 금융 자본의 압력에 굴복해 긴축 정책을 추진하며 지지층을 배신했다.

체제 내 개혁에 머물러야 한다고 보면 자본주의 국민경제를 일단 지켜야 한다고 여기게 돼 긴축 압력에 제대로 맞서기 어려운 것이다.

반면 다른 대안은 가능하다. 2010년대 그리스 재정 위기 때 “아래로부터의 디폴트”가 제기됐다. 국제 금융 자본에게 빚을 갚지 말고, 그 돈을 노동자의 삶을 지키는 데 써야 한다는 요구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이후 혁명 정부는 “짜르(러시아의 황제)가 진 빚을 노동자들이 갚을 이유가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닥치면 국채 가격이 폭락하고 금융 위기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러나 금융 위기가 벌어진다 해서 실제 생산을 할 자원과 노동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생산을 조직한다면 새로운 대안 사회 건설을 시작할 수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혁명적 대안을 추구할 때 체제의 압력에 일관되게 맞서며 노동자 등 서민의 삶을 올곧게 지킬 수 있다.

긴축 압박에 일관되게 맞서려면 재정건전성이 노동계급의 과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제 위기의 책임은 노동자가 아니라 은행가들과 기업주들이 져야 한다.

자본주의 발전에 필수 요소인 정부 부채

극렬 보수주의자들은 정부 부채를 무조건 악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정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되는 국채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금융 시장을 안정화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구실을 해 왔다.

세금으로 지급되는 이자는 국채의 안정성을 보증해 주고, 금융 자본가들은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금융 상품을 거래할 근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국채가 자본주의 초기에 자본을 축적(시초축적)할 때 “가장 강력한 지렛대”의 하나였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기업 성장을 도왔을 뿐 아니라, 국채는 금융 투자의 원천이 돼 “증권 투기와 근대적 은행 지배를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본질은 동일하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미국 국채는 다른 모든 금융 상품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며, 이를 토대로 여러 금융 상품들의 이자가 결정된다.(물론 국채는 금융 투기의 수단도 된다.)

게다가 이렇게 마련된 정부 부채는 대부분 기업 지원을 위해 사용된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각국 정부는 은행과 기업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