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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유럽 재무장과 그에 맞선 저항의 전망

유럽 좌파들은 재무장에 반대하는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출처 유럽의회

유럽 국가들이 군비를 대대적으로 늘리고 있다.

지난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8000억 달러(약 1100조 원)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은 “대비태세 2030”으로 명칭을 바꿨는데 정확히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다.

3월 말 독일 연방의회는 군비 지출을 악명 높은 ‘부채 제한’에서 예외로 두는 개헌을 임기 종료 직전 통과시켰다. 곧 연정을 꾸릴 기독교민주연합(CDU)과 사회민주당(SPD)이 녹색당의 지지를 받아서 통과시킨 것이다.

영국에서도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군비 증강을 지지하는 가운데 노동당 정부가 군비를 매년 60억 파운드(약 11조 원)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기존 중기 국방 계획(2024~2030년)보다 군비를 매해 300억 유로(약 48조 원) 더 지출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미 기존 계획도 전보다 40퍼센트 증액한 것인데 말이다.

그리스,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도 군비를 늘리고 있다.

유럽의 이런 재무장 흐름은 국제 제국주의 시스템의 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 위기는 이전부터 심화돼 왔지만, 특히 트럼프의 귀환 이래 날마다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패권 위기에 대응해 트럼프는 미국을 중심으로 더 엄격하고 배타적인 경제적·지정학적 블록을 형성하려 한다.

이는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의 다른 중심들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유럽 재무장은 서방 제국주의 내의 커져 가는 균열에 대한 대응이다. 주요 유럽 국가들은 미국이 군사적 보호를 거둬들일 때 생길 공백을 메우려고 서두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그것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물론, 현재 유럽은 혼자 우크라이나를 떠받칠 수 없다. 또, 미국과 러시아가 종전을 합의하면 유럽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유럽의 재무장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한편, 그 노력은 경제 위기에 대응해 복지를 삭감하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군비 증강과 동시에 60억 파운드 복지 삭감을 발표했다.

독일 연방의회는 개헌과 함께 대규모 “인프라 투자” 기금 조성 패키지를 통과시켰지만, ‘부채 제한’ 자체는 여전히 남겨 뒀다. 이는 앞으로 복지 지출 등을 계속 제약하고 삭감하는 데 이용될 것이다.

긴축 재정으로 대중의 삶을 옥좨 온 정부가 군사력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돈을 마련하는 상황은 대중의 분노를 자아낼 수 있다.

독일 재무장을 위한 개헌이 통과된 뒤 차기 총리인 메르츠는 아직 정부를 꾸리지 않았는데도 지지율이 떨어졌다.

4월 9일 그리스에서는 “군비가 아닌 임금을 늘려라”라는 슬로건으로 하루 총파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재무장에 맞선 저항은 대체로 미약하다.

무엇보다도 그런 저항을 건설해야 할 좌파가 혼란에 빠져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서구의 많은 좌파가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

본지는 미국과 러시아의 제국주의 경쟁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국민 방위전 성격을 압도했다고 지적해 왔다. 그리고 진정한 대안은 제국주의 경쟁 시스템 자체에 맞서는 데 있으며, 특히 자국 정부의(또는 자국 정부가 협조하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서구의 많은 좌파들은 두 형태의 진영론에 빠졌다. 하나는 러시아 제국주의를 미국을 견제할 균형추로 보는 전통적 진영론이고, 다른 하나는 서방을 권위주의에 맞선 민주주의의 보루로 여기고 서방의 제국주의를 눈 감아 주는 새로운 진영론이다.

특히 후자는 중도좌파는 물론, 더 왼쪽에 있는 좌파들(혁명적 좌파 포함)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푸틴에 맞서(또, 트럼프에도 맞서) 유럽의 재무장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좌파당은 재무장 문제를 두고 마비됐다. 좌파당은 연방의회에서 개헌에 반대해 놓고는 자신이 참여하는 주정부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주정부들이 파견한 대표로 이뤄진 연방참의원회에서 개헌이 통과되는 것은 묵과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극우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평화 세력을 자처하며 CDU와 지지율 격차를 2퍼센트포인트로 좁혔다.(ARD 여론 조사)

저항이 비교적 발전한 그리스에서도 많은 좌파 정당들은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임금과 복지를 삭감해서는 안 되지만, 이웃한 튀르키예를 견제하기 위해 군비는 늘려야 한다는 식이다.

유럽 각국의 반전 운동들도 좌파의 혼란에 영향을 받아 대체로 미약하다.

물론, 제국주의와 군비 증강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혁명적 좌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유럽 전체로 보아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입장과 분석을 분명히 하는 것은 그들이 사태에 영향을 미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게다가 군비 증강이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과 결합된 상황에서는 투쟁이 서로 연결될 수 있다. “전쟁 말고 복지”라는 반전 운동의 오랜 구호가 상당한 구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연결은 거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영국의 반전 운동은 현재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꽤 활동적인데, 이는 그곳의 반전 운동이 거대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일으키는 데서 능동적인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혁명적 좌파가 거기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제 영국의 혁명적 좌파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에너지를 이용해 긴축 재정이나 전쟁에 맞선 투쟁 등 다른 여러 투쟁에 활력을 불어 넣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3월 29일 영국의 혁명적 좌파인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등이 조직한 ‘변화를 요구한다’ 회의에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반전 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 등의 활동가 2000명이 모인 것은 그 가능성을 보여 준다.

한편,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당장 시위가 크게 벌어지지 않더라도, 저항은 다른 형태로 표출될 수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을 때 서구에서 나토에 맞서는 큰 시위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쟁이 낳은 물가 급등은 영국과 독일, 포르투갈 등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투쟁 물결을 자극했다.

물론, 그런 투쟁들의 연결은 자동적이지 않다. 이를 제국주의 시스템에 맞선 투쟁으로 모아내기 위한 혁명적 조직의 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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