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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Q&A:
신자유주의 질서가 끝나고 있는가?

[본지 편집팀]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가의 구실을 강조했다. “민간 영역만으로는 경제가 제대로 유지·발전되기 어려워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3년 동안 방치됐다.”

물론 이는 과장이다. 한국은 국가 주도 경제 성장에 성공을 거뒀고, 지금까지도 국가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신자유주의 종말’ 논의에 불을 붙였다.

이 글은 국가가 중요한 경제 주체로 ‘돌아온’ 현 시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도움을 줄 것이다.

최근의 무역 전쟁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가?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무엇을 뜻하느냐다. 저마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상이한 의미로 쓰기 때문이다.

사실 1980년대에 일부 지배계급이 채택한 일련의 정책과 전략에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외주화,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이 그런 정책이다.

최초로 그런 정책들이 실행된 뒤에는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라고 불리는 시기가 1990년대에 도래했다.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 등 일부 지배계급은 강압으로든 설득으로든 신자유주의의 ‘이로움’을 해외로 확산시키려 했다.

그들은 시장이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기업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무역하고 투자하는 세계경제를 만들려 했다. 그 시기에는 무역 관세가 해마다 낮아졌다. 그런 추세는 이제 끝나가는 듯하다.

트럼프의 관세 대폭 인상은 ‘신자유주의 종말’ 논의에 불을 붙였다 ⓒ출처 백악관

신자유주의 때문에 자본주의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더 힘들어졌나?

신자유주의 이전 시대에 대한 향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많은 좌파들이 그런 오류를 범한다. 많은 좌파 논평가들이 신자유주의를 적으로 지목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우리의 적은 이윤·착취·억압·제국주의를 중심으로 세워진 자본주의 체제이다.

“케인스주의 컨센서스”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서방에서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주된 정책들을 지칭하는데, 이것은 1970년대에 위기가 닥치면서 와해되기 시작했다.

당시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첫째, 국경을 넘어서는 자본의 통합이 증대되고 있었다. 강력한 기업들에게 국민 경제는 너무 협소했고 그들은 그 너머에서 활동하고 싶어했다.

둘째, 세계경제가 일련의 위기를 겪었고 기존 케인스주의 국가 개입 정책들로는 그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 후반부터 노동자 투쟁의 물결이 국제적으로 크게 일어나 1970년대에도 이어졌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정책과 실천에 더한층 일관성을 부여해 줄 이데올로기를 찾아 나섰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1930~1940년대에 등장한, 자유시장 메커니즘을 중시하는 이데올로기들을 되살려 냈다.

그러나 동시에 지배자들은 위기에 실용주의적으로 대응했다. 예컨대 신자유주의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경제에서 손을 떼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다. 주요 자본주의 경제들에서 국가 지출은 여전히 GDP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때문에 국가가 사라졌다는 것은 참말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바뀌기는 했다. 노동계급을 향한 거센 공격도 그중 하나다.

무엇이 신자유주의의 시기를 끝냈는가?

지배계급은 계속 부유해졌지만, 신자유주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자본주의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시기를 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따금 성장률이 치솟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경제가 지속적으로 확장하던 시절에 준하는 회복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1970년대 위기의 뿌리는 장기적 이윤율 하락에 있었는데, 약 한 세기 전에 카를 마르크스가 지적한 대로였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에게서 쥐어짜 낼 수 있는 이윤에 대한 투자의 비율이 체제 전반에서 커지기 때문에 이윤율이 하락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윤율을 회복하려면, 그런 투자의 많은 부분을 파괴하거나 가치를 떨어뜨리는 혹독한 위기를 거쳐서 새로운 호황의 길을 닦아야 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신자유주의하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자본의 단위가 커지고 국가와 긴밀하게 얽힌 결과 거대 기업들이 파산하도록 방치하면 더 커다란 침체를 일으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가 갈수록 많이 개입해 대자본들을 구제하고 경제 위기가 전면화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 결과 이윤율이 계속 낮게 유지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을 막지 못했다

금융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에 신자유주의가 망가진 것 아닌가?

증대하는 부채와 금융 혁신은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요소들로, 경제가 성장하는 데 일조했고, 경제가 활력을 띠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2008~2009년 금융 위기로 이런 신용 주도 성장의 한계가 드러났다.

동시에 다른 두 가지 일이 벌어졌다.

첫째, 중국이 극적으로 성장했다. 반면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은 장기적으로 쇠락했다. 1960년에 미국은 세계 GDP의 40퍼센트를 쥐락펴락했지만 오늘날 그 비중은 25퍼센트로 줄었다.

신자유주의가 정점을 찍은 시절, 즉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닮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많은 논평가들은 중국이 세계시장에 참여하면서 정치적으로도 자유화될 것이고, 그래서 환대 속에 서방에 편입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중국은 국가가 자본을 매우 강력하게 지도했고, 서방도 중국과 경쟁하려면 국가의 강력한 지도를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됐다.

둘째, 체제를 뒤흔든 여러 위기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커다란 반감을 낳았다. 그 전에 정치인들은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모두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수렴됐다. 그런데 이제는 더 급진적인 정치인들, 즉 급진 좌파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급진 우파 모두 그 반감을 기초로 세력을 키우고 있다.

서방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국가가 중요한 경제 주체로 돌아왔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흐름을 환영해야 하는가?

우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전 시기의 요소도 일부 남아 있겠지만 이전 시기와 커다란 차이점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헤쳐 나가려면 국가주의를 모종의 사회주의로 여기는 견해와 단절해야 한다.

국가는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다. 국가는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 왔지만 그 목적은 자본 축적을 관리하고 지키기 위한 것이다. 심지어 국유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전개된 경우일지라도, 세계적 수준에서 다른 자본 단위와 경쟁하는 경제를 갖고 있다면 여전히 사회주의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정치 전통(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또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은 소련이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었고 국가자본주의의 일종이었다고 본다.

경제 활동의 중심으로 국가가 돌아온 것은 자본주의 내의 변화이자, 권위주의의 심화와 결부될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트럼프가 도입하는 정책들이 신자유주의와는 일부 다를지언정 여전히 시장 친화적이고, 규제 완화와 감세를 추구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 상황은 신자유주의와 깨끗히 단절하고 모종의 케인스주의 정책이 전격 채택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신자유주의가 끝난 것이라면, 향후 어떤 정책들이 세계를 주도하게 될까?

각국 지배계급은 여러 실용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방식을 찾으려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여전히 여러 제약을 받을 것이다.

영국의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는 안보경제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이드노믹스’(전임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의 경제 정책)의 한 변형이다. 리브스는 안보경제를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 국가를 더 목적의식적으로 활용하자고 말한다. 그것이 중국이 하고 있는 것이고 영국은 그런 중국과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이다. 현실에서 리브스는 두 가지 제약을 받고 있다.

첫째, 체제가 잇따라 위기를 겪고 있다. 영국 자본주의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고 그 탓에 리브스의 안보경제학은 기껏해야 쥐꼬리만 한 예산으로 바이드노믹스를 모방하는 것에 그칠 것이다. 둘째, 자본의 국제화가 그 문제를 악화시킨다. 리브스는 세계적으로 통합된 채권 시장의 제약을 받는다. 그 시장은 정부 지출을 억제할 것, 기업 증세를 하지 말 것 등을 노동당 정부에 요구한다.

그 때문에 총리 키어 스타머는 토니 블레어 정부[1997~2007년] 때 활약하던 세계화론자들을 정부 요직에 앉혔으면서도, 이제는 세계화에 안녕을 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타머는 대중이 “교란”을 원하고 이민에 반대한다는 등을 주장하는 글을 썼다. [“교란”은 극우 영국개혁당이 기성 정치권에 대한 자신들의 도전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다.] 이는 영국에서 우익 권위주의와 인종차별의 위험을 키우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경제 활동의 중심으로 돌아오면서 생기는 한 가지 결과는 경제가 노동자와 좌파들에게 정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은 2008~2009년 금융 위기에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봤다. 거대 은행들이 구제받았고,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고용 유지 지원금과 자본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조처가 시행됐다. 이를 목도한 노동계급 사람들은 ‘만약 국가가 시스템을 구제할 수 있다면 왜 내 삶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개입하지 않는가?’ 하고 묻고 있다.

그런 상황은 좌파가 국가에 무언가를 요구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는 투쟁의 필요성, 그런 요구들을 관철시킬 방법에 관해 주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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