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크라이나, 제국주의에 관한 핵심 물음들에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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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적 분할을 받아들이라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강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의 근원, 좌파의 대응에 관한 핵심 물음들에 답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째서 대리전인가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가 벌인 침공의 피해자다. 러시아는 1990년대 이래 우크라이나와 그 밖의 주변국들을 줄곧 지배하려 해 왔다.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지방과 루한스크 지방에서 극우 폭력배의 분리주의 반란을 부추겼다. 2022년 러시아가 침공했을 때 우크라이나인들은 자기 방어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주의가 한 일은 전체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제국주의는 군사적·경제적 지배력을 다투는 복수 자본주의 국가의 국제 경쟁 시스템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 그 외 역내 강대국들이 제국주의적 경쟁을 벌이는 충돌 지대 한복판에 있다. 북유럽의 발트 3국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그 충돌 지대의 긴장은 2000년대 동안 줄곧 고조됐다.
서방과 러시아의 그러한 경쟁이 우크라이나를 갈가리 찢어 놓고 유혈 낭자한 전장으로 만든 것이다. 그 경쟁은 2014년의 군사적 충돌로 발전했고, 2022년 러시아의 침공을 통해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방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당시 미국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동에서 겪은 패배를 만회할 기회로 여겼다. 바이든은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더 중요하게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에 미국의 힘을 각인시키려 했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 바이든은 이렇게 선언했다. “새로운 세계 질서가 올 것이고 미국이 그 질서를 주도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지원은 미국 대외 정책 기획자들의 장기적 야심과 부합했다. 그중 한 명인 군 장성 알렉산더 빈드먼은 2018~2020년 트럼프 1기 정부하에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주요 관리를 지낸 인물이다. 빈드먼은 2021년 11월에 이렇게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갖는 전략적 가치는 러시아·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과 대서양 연안국, 유럽의 염원을 실현할 조건을 마련해 줄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확전 수위를 관리하며 러시아의 힘을 소진시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의 발을 묶고 러시아의 자원을 소진시킬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되, 두 핵무장 국가[미국과 러시아 — 역자]가 직접 충돌할 위험은 피하는 것이다.
전쟁의 완급을 결정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아닌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였다.
2월 말 백악관을 방문한 젤렌스키가 트럼프에게 당한 수모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 제국주의를 상대로 한 미국 제국주의의 대리전임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트럼프는 두 제국주의 열강이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트럼프는 왜 우크라이나에서 후퇴하는가?
2018년 이래로 미국은 “강대국 간 경쟁”을 당면 핵심 도전으로 봤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외 정책 사이에는 연속성이 크다. 둘 다 미국이 직면한 도전에 맞서 미국의 패권을 지키려는 것이다.
이제 트럼프는 가장 중대한 위협인 중국에 집중하려 하고,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더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한다.
미국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교착 상태, 즉 질질 끄는 충돌에 돈을 대 왔다.”
나토가 지원하는 무기는 우크라이나 정부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전선에 배치될 병력도 중요하다. 이제 그 전선은 제1차세계대전 때 서부 전선의 참호들보다 더 길게 뻗어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거기에 배치할 병력이 부족하다.
1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병사가 탈영했다. 거기에 더해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장기 징역 위험을 무릅쓰고 징집관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고 있다.
러시아는 수적 우위에 있는데다 징집병이 아닌 “계약직 군인”에 더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는 제재로부터 자국 경제를 지켜 냈고(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더 좁혔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지는 전쟁을 지원하고 있고 그 전쟁이 미국에 이롭지 않다고 판단했다.
루비오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러시아를 중국으로부터 떼어 낸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21세기의 중대 쟁점은 미중 관계일 것이다. 러시아가 중국의 하위 파트너로 계속 남는 것”은 “미국에 이로운 결과가 아니다.”
유럽연합이 전면에 나설 것인가?
유럽 지도자들은 자국 노동계급을 쥐어짜서 대대적인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는 미국 제국주의의 하위 파트너 지위를 한사코 고수하려 한다. 한편,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전쟁 노력을 지속시키거나 세계적 열강으로 부상하기에는 결속력이 약하고 회원국 사이에 갈등이 심하다.
회원국들의 자본주의적 경쟁은 언제나 유럽연합의 구조에 반영돼 있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위기는 유럽연합의 처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군사력이 부족하고, 회원국들의 분열 때문에 단결된 대응이 어려운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유럽연합에서 가장 중요한 두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는 현재 정치 위기와 경제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제적 통합은 처음부터 미국 제국주의와 나토에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 나토를 통해 영국과 그 외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지휘 계통 아래에 있다.
지난주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정보 제공을 중단하면서, 영국의 정보 제공까지 중단시킨 것이 이를 잘 보여 준다.
2014년 왜 우크라이나에서 충돌이 벌어졌는가?
1990년대 이래 서방과 러시아는 옛 소련 가맹국들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2000년대에 러시아는 국제 유가 상승에 힘입어 전보다 국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미국은 나토를 동유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냉전 종식 때 한 약속을 뒤집고 2008년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에 나토 가입을 제안했다. 러시아는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막으려고 조지아를 침공했다. 이는 여러 면에서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충돌의 예행연습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2014년에 우크라이나는 구제 금융이 절실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유럽연합과 러시아 중 어디에 구제 금융을 요청할지를 놓고 망설였다.
어느 쪽의 구제 금융이든 조건이 따라붙었다. 러시아의 구제 금융을 받으려면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관세 동맹에 가입해야 했다. 그러나 서방의 구제 금융을 받으려면 유럽연합과 나토에 협조해야 했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푸틴을 선택했다. 이는 ‘마이단’ 운동을 촉발했다. 그 운동은 유럽연합과 협정을 체결하라고 요구하는 작은 시위로 시작됐다. 그러나 경찰이 시위를 폭력 진압하자 그에 대한 반발로 그 운동은 거대한 항쟁으로 발전했다.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광범한 분노와 만나 커다란 동력을 얻은 것이다.
올리가르히(우크라이나 정치를 지배하는 대부호들)의 일부는 그 운동을 러시아가 아닌 서방의 시장으로 우크라이나를 편입시킬 기회로 삼으려 했다. 우크라이나 극우와 민족주의자들도 그 운동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야누코비치는 항쟁에 밀려 러시아로 도망쳤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친서방 정부로 교체됐다.
서방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각자 우크라이나 내 자신들의 대리 세력을 전폭 지원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분리주의 반란을 부추겼다. 이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테러리스트 진압 작전”을 펴고 그 과정에서 극우 자원군의 조력을 받았다.
오바마 재임기(2009~2017년)에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그 지원은 트럼프 1기 정부(2017~2021년) 때도 계속 이어졌다.
2022년 왜 푸틴은 왜 침공을 감행했는가?
2014년의 충돌은 일련의 ‘평화 협상’과 ‘민스크 협정’으로 알려진 합의들로 2015년에 일시 중지됐다. 그러나 서방과 러시아의 경쟁은 계속됐다.
2021년에 이르러 러시아는 경제적 우위에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을 상대로 영향력 줄다리기에서 이기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유럽연합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4퍼센트를 차지하지만 러시아의 비중은 1.9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래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해 무지막지한 군사력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벨라루스와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에서 잇따라 항쟁이 일어나 러시아 주변 지역을 뒤흔든 것도 침공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 그 항쟁들은 부패한 통치자들에 맞선 대중 저항이었지만, 서방이 그 항쟁들을 이용해 영향력을 키우려 했기 때문이다.
푸틴은 단지 우크라이나에서만 러시아의 지배력을 관철시키려 한 것이 아니다. 침공을 통해 다른 러시아 주변국들에게도 누가 그 지역의 지배자인지를 각인시키려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자위권을 지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 해방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
첫째, 미국, 영국, 러시아와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자들은 애국주의와 인종차별적 사상으로 자신들의 전쟁과 점령을 정당화한다. “애국주의”를 이용해 그들은 기업주들과 노동자들이 “국익”을 공유한다고 강조한다.
제국주의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이 자국 지배자들에 맞서는 피억압 민족의 민족 해방 투쟁을 지지하도록 자국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노동자들에 대한 반동적 사상의 영향력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서구에서 이슬람 혐오적 사상에 타격을 준 것이 그런 사례다.
둘째, 민족 해방 투쟁의 승리는 제국주의에 타격을 주고 그 지배자들을 약화시킬 수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은 이스라엘에 맞선 민족 해방 투쟁이다. 식민 정착자 국가인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경비견 구실을 한다. 이스라엘의 패배는 미국과 그 밖의 서방 지배자들에게 큰 타격을 줄 것이다.
따라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사회주의 지도부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거나 사회주의 강령을 채택해야 한다는 따위의 조건을 달지 않으면서 그 저항을 서슴없이 지지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항할 권리를 지지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중동의 더 광범한 반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입장에 따라 본지는 2023년 10월부터 하마스의 저항을 온전히 지지했다.
앞서 언급했듯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가 벌인 침공의 피해자들이다. 그런데 본지는 왜 “우크라이나에 승리를”이 아니라 “러시아 철군, 나토 반대”라고 외치는가?
제국주의 경쟁과 민족 해방 전쟁(또는 국민 방위전)은 서로 얽힐 때가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두 요소가 모두 있다.
그러나 핵심 물음은 전쟁의 우세한 성격이 무엇이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미국과 러시아의 제국주의 경쟁이 국민 방위전 성격을 압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 정부는 독립적인 반제국주의 세력이 아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서방에 종속시켰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거대한 이스라엘”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미국 제국주의의 전초 기지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어느 강대국의 편도 들어서는 안 되고, 특히 자국 정부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평화를 위한 대안은?
서방 지도자들과 미디어, 그리고 일부 좌파들은 나토의 군사력으로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달성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그러한 승리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그것은 우크라이나와 더 광범한 지역에서의 충돌을 끝내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더 큰 충돌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승리는 미국 제국주의를 강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동유럽에서만이 아니라 중동에서도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에, 해결책은 러시아와 서방에서 각각 자국 정부에 맞서는 대중 운동이 일어나는 데 있다.
그래서 본지는 전쟁 초기에 진정한 희망이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에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의 침공과 나토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에 희망이 있고, 서방과 친서방 국가에서는 나토의 확장과 확전에 제동을 거는 반전 운동을 건설하는 데 희망이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 병사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전쟁에 반대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나토로부터 독립적인 저항이 일어나는 데에 희망이 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궁극적으로는 두 제국주의 진영에서 자유로운 우크라이나라는 전망이 필요하다.
이것은 결코 저절로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이런 해법만이 참상을 막을 유일한 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지난 3년이 이를 여실히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