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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파면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극우 후보들의 핵발전 거짓말
이재명 후보의 현상 유지론도 그릇됐다

21대 대선 TV토론회에서 김문수, 이준석 두 극우 후보는 뻔뻔한 거짓말과 차별을 조장하는 역겨운 주장을 쏟아 냈다.

그 중 하나가 핵발전에 관한 것이다.

김문수는 “원자폭탄이 떨어져도 [핵발전소가] 파괴되거나 원자력 자체의 고장이 없다” 하고 주장했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자포리자 핵발전소를 두고 벌어진 공방을 보라.

현재 한국 핵발전소의 안전 기준은 “(지진·태풍·홍수·해일 등) 자연현상”과 “항공기 충돌, 폭발 등”의 외부적 사건에 견디도록 하는 정도다. ‘항공기 충돌’은 2001년 9·11 사건 때문에 미국 등 각국의 핵발전소 건설 기준에 추가된 것인데, 현재로서는 가장 강력한 외부 사건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9·11 당시 항공기 충돌로 생긴 에너지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의 2퍼센트밖에 안 된다.

설사 엄청나게 희박한 확률로 격납 건물이 충격을 버텨도 핵폭발의 여파로 냉각 장치들이 모조리 쓸모없게 될 것이다. 대형 쓰나미가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덮쳤을 때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풍력 발전이 태풍에 취약하다는 이준석의 호들갑도 진실의 절반만 얘기하는 교활한 거짓말이다. 강한 태풍이 찾아오면 풍력 발전기가 가동을 멈춰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강한 태풍이 4~5일이나 지속되면 핵발전도 제대로 가동되기 어렵다. 반응로만 무사하다고 발전소가 가동되는 게 아니다.

2020년 9월 초 태풍 마이삭·하이선이 왔을 때 신고리 1·2호기와 고리 3·4호기, 월성 2·3호기가 모두 멈춰 섰다. 강풍에 실려 온 소금기가 전력 설비에 붙어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년 뒤인 2022년에는 강풍으로 터빈발전기가 멈춰 신고리 1호기를 수동으로 멈춰 세워야 했다.

풍력과 달리 핵발전소의 가동을 멈출 위험 요소는 태풍만이 아니다.

2022년 울진 산불 당시 핵발전소 8기가 모여 있는 울진(한울) 핵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선로 4개 중 3개가 마비됐다. 발전소 측은 사고를 막기 위해 출력을 절반으로 낮춰야 했다.

윤석열이 신규 핵발전소(천지 1·2호기)를 짓기로 한 영덕도 올해 대형 산불로 초토화됐다.

활성단층 위에 지어진 고리 핵발전소 등은 지진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교활한 거짓말

풍력·태양광 같은 재생 에너지로는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다는 이준석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유엔 산하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와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은 모든 전력을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에너지 공급의 간헐성은 충분히 많은 재생 에너지 시설을 짓고 에너지 저장 시설을 늘리면 대부분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제성도 치명적 문제는 아니다.

이준석이 언급한 ‘LCOE’는 ‘균등화발전비용’을 뜻하는 영어의 약자로 발전소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드는 총비용을 총 발전량으로 나눈 값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풍력과 태양광의 LCOE는 핵발전에 비해 저렴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천박하게 전문 용어로 허세를 부린 이준석보다는 이재명의 지적이 더 사실에 가깝다.

가끔 일부 전문가들이 이견이나 토론을 차단하려고 전문 용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준석이 바로 그런 꼴이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자기 지식 자랑하러 나왔느냐”고 꼬집은 이유다.

다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핵발전소의 비용이 재생에너지의 비용에 비해 적은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핵발전소 안전 규제가 느슨하고, 재생 에너지 투자가 적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수준의 규제만 핵발전소에 적용해도 당장 그 경제성은 크게 하락한다. 수십만 년 동안 처리할 방법이 없는 핵폐기물을 계산에 넣으면 핵발전의 비용은 무한대에 가까워진다.

당장에 기업주들에게 값싼 전기를 공급하는 것 외에 극우가 이토록 핵발전에 매달리는 이유는 더 있다. 다름 아닌 핵무기 보유 야망 때문이다. 핵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설비는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이다. 미국 등 서방이 북한·이란 등의 ‘경수로’ 가동을 두고 핵 개발이라고 열을 낸 이유다.

김문수와 이준석 모두 “핵 추진 잠수함 개발”과 “핵잠재력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최근 대안으로 거론되는 SMR 발전소는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출처 미 해군

핵무장

한편,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핵발전이 위험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우리 현실”을 고려해 현재 가동되는 핵발전소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필요하면 수명 연장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이런 태도는 분명히 김문수, 이준석의 핵 찬양과는 다른 것이지만, 핵발전이 근본에서 위험하다는 그 자신의 주장을 모순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 후보는 핵발전소 수출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이준석의 비판에 “우리 원전이 더 위험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며 슬쩍 물러섰다.

무엇보다 이런 태도는 불과 2년 전 일본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에 반대하며 수만 명을 거리로 동원한 이재명 후보의 일관성을 의심스럽게 할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RE100’을 거론하며 핵발전이 무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RE100은 의무도 아니고 언제든 거꾸로 돌릴 수 있는 기업들의 자발적 ‘선언’일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열강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크게 둔화되거나 심지어 역행하는 사례를 보라.

시장 논리에 순응하는 식으로는 기후 위기 대응은 물론이고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렵다. 핵심 자본가들의 이윤이 화석연료와 핵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이 제로 수준으로 하락하고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친기업, 친시장, 한미동맹 강화라는 우파의 어젠다에 갈수록 타협해 가는 이재명 후보가 핵(무장)잠재력 개발 유혹에도 얼마나 저항할지는 회의적이다. 이미 그는 지난 대선 때 핵추진 잠수함을 공약으로 내놨던 바가 있다.

안전한 핵은 없다. 저렴한 핵에너지도 없다. 핵발전은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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