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위원회 공식 발표에 따르면, 등록자수가 5만 명이었다. 그러나 케냐 자체가 사회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규모는 아니다. 소말리아와 수단 등 아프리카 곳곳에서 사람들이 왔고, 남아공에서도 1백40여 명이 참가했다.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 각 단체들의 시위와 행진 때문에 워크숍이 방해될 만큼 활기가 넘쳤다.
반전 총회는 그 동안 내가 참가했던 WSF의 그 어떤 총회보다 역동적이었다. 아마도 지난해 레바논 전쟁에서의 승리, 부시의 중간선거 패배가 영향을 끼친 듯했다. 내용들도 좋아서 “이슬람 혐오 반대, 시민적 자유 옹호” 슬로건이 큰 박수로 채택됐다.
행사장에서 벌어진 반전 시위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22일부터 시위를 시작했는데 22일과 23일은 소말리아 사회포럼과 함께 행진했다. 마지막 날인 24일에는 팔레스타인 시위와 합쳐져서 2백여 명이 넘는 시위대가 형성됐다. 행사장에서 벌어진 시위 중에서 최대 규모였다.
다만, WSF 기간 중에 전체 행사가 없었던 것은 아쉽다. 마지막날 사회운동 총회가 유일한 전체 회의였다. 각 의제별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행동을 호소하는 회의였는데, 8백여 명이나 모였고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 이런 전체 행사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무료 입장
한편, 이번 행사 기간 중에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의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는 터에 WSF 등록비 7달러는 너무 비싸다는 항의가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행사장 한복판의 현 케냐 내무부장관 ― 식민지 시절 고문 기술자로 활동했고, 억압 정책을 추진했던 ― 이 운영하는 식당을 폐쇄하자는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그 식당은 마지막 날 폐쇄됐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전체 행사에 무료 입장이 결정됐다. 사회운동 총회 결의문에도 “세계사회포럼의 상품화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폐막 행진은 규모가 작았다. 키베라 다음으로 규모가 큰 카리오방기라는 빈민가를 가로질러 행진했다. 행진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특히, 한 초등학교를 지날 때 아이들이 모두 울타리로 몰려나와 시위대열을 환호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우리 대열을 울타리 앞으로 이끌고 가서, Free Education, Free Children 등을 외쳤다. 아이들도 함께 외치더니 우리 팻말을 보고 “No More Bush”를 스스로 외치기 시작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케냐 세계사회포럼은 아프리카에서도 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