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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서평 《이윤보다 생명을: 실천하는 의사 우석균 저작선》:
불의한 체제에 대한 분노로 끓어오르는 책

실천하는 의사 우석균의 여러 글을 선별해 묶은 저작선이 나왔다.

우석균은 24년간 “갈 곳 없고 돈 안 되는” 환자를 품은 서울 성동구 성수의원 원장이었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병들고 죽어 가던 노동자들뿐 아니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차가운 시선에 지친 장애아동과 그 부모들, 으리으리한 병원들의 비급여 주사 권유에 지친 할머니들, 호르몬 치료를 거부받은 성소수자 등이 병원으로 모여들었다.”(“‘갈 곳 없고 돈 안 되는’ 환자 품었던 동네병원의 마지막 ··· 안녕, 성수의원”, 〈경향신문〉 2025년 9월 11일 자).

《이윤보다 생명을: 실천하는 의사 우석균 저작선》 우석균 지음, 책갈피, 648쪽, 29,000원

TV 토론에 나와 정부 관료들의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이나 영리병원 도입 논리를 통쾌하게 반박한 논객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석균은 사회 변화를 위해 집회를 조직하고 유인물을 쓰며 저항 운동을 건설한 활동가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고 함께 농성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건강권과 보건의료 분야는 물론이고 한미FTA, 광우병 위험 쇠고기, 신종 감염병, 핵 발전소 사고와 같은 사회적으로 뜨거운 쟁점이 터질 때마다 뛰어난 통찰력과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고 그 쟁점 한복판에서 운동을 건설하고자 했다.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아파야 한다”는 구호 아래 건설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공동대표였고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우석균의 최대 장점은 뛰어난 연설가라는 점이다. 그는 수많은 강연회와 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명연설가였는데, 그의 주된 연설 방식은 정부 관료 등 지배자들의 거짓말과 위선을 쉽사리 반박할 수 없는 사실들을 들어 들춰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노를 애써 억누르는 듯한 그 특유의 말투와 어우러져 매우 효과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연설을 들으면 누구나 불의한 체제에 대한 분노로 끓어오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뛰어난 연설가, 선동가

즉, 우석균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뛰어난 선동가였다. “선동가는 …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이용해 다수의 사람에게 단 하나의 의견(가령 부의 증대와 빈곤의 증대 사이의 모순)을 전달하려 노력한다”(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만약 그가 이런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 체제의 불의를 고발하는 책을 썼다면, 세상이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입문서가 됐을 것이다.

우석균은 늘 체제의 불의에 맞서 싸워 온 의사다 ⓒ〈노동자 연대〉

그러나 그는 그럴 여유를 누리지 못했다. 지은이가 토로했듯이 “글을 써야 할 때 … 집회를 조직하느라 바빴고 유인물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고 날아온 경찰 출두서에 시간이 없었다.” 지은이의 글들은 “아무도 글쓴이를 묻지 않는 거리의 유인물과 누군가에게는 잡문인 운동가들의 토론회 발제문과 토론문으로밖에 …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우석균의 첫 단독 저서인 이 책은 지은이가 운동을 조직하며 각종 매체에 쓴 칼럼과 여러 강연회·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을 묶은 저작선 형태로 나오게 됐다.

책 곳곳에서 그의 장점을 흠뻑 느낄 수 있다. 가령 경찰 물대포에 맞아 2016년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써 놓고 이른바 ‘전문가 자율성’을 내세워 이를 옹호한 서울대병원 측의 논리를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한국에서 지식인들이나 대학의 자율성이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확립돼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착각이라는 것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 대학은 자본과 권력에 ‘자율적으로’ 봉사하는 곳이 되고 있다. … 오늘 한국 사회의 학문과 지식의 자율성과 진리는 고고한 상아탑 속에서 지켜지고 있지 않다. 대학의 자율성은 학생들이 본부를 점거해야만 지켜진다. 우리 사회의 진리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노숙했던 시민 지킴이들의 고단한 잠자리에서 지켜진다.”

야속하게도 지난해 말 지은이에게 암이 찾아오면서, 엮은이 이정구를 비롯한 지은이의 동료들이 이 책의 출간을 위해 노력했다. 엮은이가 썼듯이 “이 저작선에 담긴 글 말고도 그 몇 배에 해당하는 많은 글이 있었다. … 저작선에 포함돼 있는 일부 글들은 우석균 씨가 자신의 활동 경험에 비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직접 뽑은 것이다. 그리고 본문의 구성과 차례도 저자와 엮은이가 상의해 정한 것이다.” 각각의 글이 언제, 어떤 배경에서 쓰였고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 있도록 모든 글의 첫머리에 편집자 주가 달려 있는 것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체제의 불의에 맞서 싸우고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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